편집자주=이 썩어빠진 ‘갑’들의 세상. 최근 잇따르고 있는 사건들을 요약하면 이쯤 될 것이다. 비분강개한 여론에 힘입어 언론 역시 ‘이때다’ 싶은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게 몇몇 특정 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분노한 언론의 행태를 보며 어쩌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 전부터 언론계에서도 ‘갑’의 횡포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하지만 다른 언론 사안이 중하고, 언론계에 워낙 급한 이슈가 많다보니 성찰과 반성 없이 지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어느새 갑들의 횡포는 구조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이에 <미디어스>는 미디어계 내부 ‘갑’들의 횡포에 대한 연속 기획을 준비했다. 한국 사회의 슈퍼 ‘갑’으로 불리는 언론 기업들의 민낯이 어떠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충격’과 ‘공포’에 가까웠다.

“갑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이나 아침 교양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으면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그들이 보도하는 상황의 최소 10배 이상의 갑 질이 방송사 내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한 외주제작사 독립PD의 말이다. ‘라면 상무’ ‘폭행 빵회장’에 이어 남양유업의 강매 파문으로 사회 전체가 ‘갑’의 ‘을’에 대한 횡포를 규탄하는 열기로 뜨겁다. 남양유업의 강매 문제는 한국 사회 모든 갑들의 공통된 문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뜨겁다. 잇따른 갑들의 횡포를 보고 있노라면,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담론이 횡행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갑의 횡포는 기본적으로 전근대적인 지배-종속에 기반을 둔 권력 관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서 사정을 두지 않고 최대치의 비판을 가하고 있는 상황 역시 이러한 문제가 현재의 사회적 인식과 합의 수준에 현격하게 위배되는 선정적인 ‘스캔들’이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언론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슈퍼 갑’의 지위에 있다. 특히, 방송사의 경우 그 중에서도 ‘슈퍼 갑’에 해당한다. 흔히 방송사에서 하는 모든 프로그램들이 방송사가 제작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현행 방송법 상 40%는 외주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콘텐츠들이다. 방송사와 외주사의 관계에서 가장 적나라한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언론계에 공공연한 비밀이다.

‘밀어내기’보다 더한 ‘제작 단가 후려치기’

외주사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방송사 갑 질의 가장 대표적 횡포는 ‘제작 단가 후려치기’에 있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주를 상대로 ‘밀어내기’를 했다면 방송사들은 아예 제작 단가를 낮춰 착취를 고착화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한 외주사 관계자는 “똑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방송사가 자체 제작할 때 예산이 100이라면 외주사에 할당되는 금액은 70정도 밖에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방송사의 제작비 100에는 PD등 정규직 제작진의 인건비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지만 외주사에 할당되는 70에는 제작진 인건비까지 포함되어 있는 금액이라 실제 차이는 더 크다는 지적이다.

한 독립PD는 이런 상황에 대해 “한 지상파 방송과 일할 때, 자체 제작 기준으로 표준 제작 편성 금액이 4천만 원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순수한 제작비로 장비 사용료, 경상비 이런 건 다 뺀 금액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외주 제작으로 결정되면서 2천 5백만 원에 만들라고 했다. 물론, 외주사 PD 인건비 포함해 제작 일체의 모든 비용이었다”고 말했다.

제작 단가 후려치기는 외주제작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거의 100%에 해당되는 횡포라고 한다. 한 외주사 관계자는 “이런 제작 조건에 대해 항의하면 여지없이 그냥 잘린다. ‘까다롭게 군다’고 소문이 나면 더 이상 일을 맡을 수 없는 것이 방송가의 구조다. 울며 겨자라도 먹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횡포는 공영방송인 KBS가 가장 심하고 그 다음이 MBC 그리고 민영방송인 SBS가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시간대별로 보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어 프로그램 질에 대해 방송사가 책임질 여지가 적은 아침 시간대의 프로그램들이 더 심하게 단가를 후려친다고 한다.

여전한 ‘뒷거래’ 의혹과 새롭게 부상한 ‘협찬금 떼어먹기’

외주사들이 공히 꼽는 또 다른 갑 질은 은밀한 ‘뒷거래’와 ‘협찬금 떼어먹기’다. 외주사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 중에 상당 부분이 이른바 VJ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만드는 교양물이다. 이 프로그램 가운데 ‘음식’과 ‘식당’을 소개하는 콘텐츠들이 많다. 이 식당들이 어떻게 선정되는지는 2011년 제작된 영화 <트루맛쇼>에서도 자세하게 고발된 바 있다. 하지만 식당 선정에서 뒷돈을 받는 행태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단 것이 방송계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이에 대해 한 프리랜서 방송작가는 “외주사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할 때, 한 방송사 CP가 ‘뒷돈’을 받고 특정 식당을 홍보 할 것을 명령했던 적이 있다. 이미 다른 곳을 찍어 놓은 분량이 있었는데, 막무가내였다. 무조건 거기 가서 찍으라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돈이 오고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는 식당뿐만 아니라 여행, 축제 등 경합적 소재들이 있는 영역에 대한 촬영에서는 “갑자기 아이템이 바뀌고 엎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외주제작을 관장하는 방송사 내부가 일종의 ‘커넥션’으로 움직인단 주장은 이 밖에도 많았다. 또 다른 외주사 관계자는 “외주 제작 프로그램 아이템에 일관성이 없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방송사 내부에서 이미 설계도를 갖고 촬영 등의 기능적 일만 외주사에 맡기는 식인데 문제는 이 설계도가 자주 바뀐다는 점”이라며 “이 오락가락이 결국 뭐에 근거하는 것인지는 방송사 내부 관계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제작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린 ‘협찬금’에 있어서도 방송사의 횡포는 대단하다. 외주사가 섭외한 협찬금 가운데 공식적으로 30%가 ‘전파 송신료’라는 명목으로 방송사에게 입금된다. 한 프로그램에 1억 원의 협찬금이 생기면, 3천만 원을 방송사가 ‘수수료’처럼 떼고 지급하는 형식이다. 그나마 30%는 상황이 나아진 것이라고 한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50%를 떼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주사는 더 많은 협찬을 받아야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 입장에선 방송을 보다보면 왜 저렇게 많은 광고성 장면과 PPL이 삽입되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외주사 입장에선 애초 계획의 최소 140% 이상을 협찬금으로 받아와야 겨우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외주 제작이란 이유로 제작비가 후려쳐지고, 또 협찬금마저 뜯기니 이중의 ‘착취’가 발생하지만 이에 대한 방송사 내부의 문제의식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차라리 죽어라”라는 협박은 ‘애교’

이러한 구조적 ‘착취’보다 외주사 관계자들이 더 참기 힘들어 하는 상황은 인격적인 모독이다. 남양유업 파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차라리 죽어라”라는 협박은 방송사 내부에선 ‘애교’에 가깝다는 것이 외주사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나이가 지긋한 한 독립PD는 “10살 이상 어린 방송사 정규직 PD에게 ‘이 따위로 밖에 못 하냐’는 말과 함께 발길질을 당한 적도 있다”며 “개XX 같은 욕은 기본이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식 이하의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어 “MBC의 한 외주 제작 프로그램 담당 PD는 정말 악명이 높아 외주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정신병자’로 통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네 집 똥강아지 보듯이 화풀이를 해댔다. 택시 타고 오다가 길이 막혀 짜증이 나도 그걸 외주사에 화풀이 할 정도”라고 한다. 이 PD는 “다 때려 치고 ‘이 정신병자야 치료나 받으러 다녀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아직도 울분을 참지 못했다.

외주사 관계자들은 갑 질의 횡포는 오히려 공영방송이 더 심하고, 방송사 내부 투쟁에 적극적이었던 노조 출신들도 다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을이 갑이 마련한 계약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아는 상황에서 그들의 태도는 언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 외주사 관계자는 “방송사 갑 질의 횡포가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방송사 내부는 덮는 데만 급급하다. 그들 자체가 언론인데 얼마나 덮기가 쉽겠느냐”며 “한때는 노조 활동을 했던 이들에게 기대를 걸기도 했지만, 이젠 그런 기대도 접었다. 방송사 내부에 있는 이들은 다 마찬가지로 슈퍼 갑일뿐이다”라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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