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보수 성향을 지닌 (사) 미디어 공공성과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대표 박종보, 이하 공발연)가 주최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이제는 바꾸자’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각기 다른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일부 토론자는 ‘공영방송 위기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KBS 여당 추천 이사를 맡은 바 있는 최선규 명지대 교수가 1부 ‘KBS 지배구조’ 발제를 맡았다. 최선규 교수는 “민주적 여론 형성, 양질의 서비스 제공 등 방송의 공적 가치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공영방송 KBS는 아주 중요한 임무를 지닌 매체”라며 “제대로 작동하는 지배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미디어스
최선규 교수는 현 KBS 이사회를 독립시켜 각각 ‘한국방송 위원회’와 ‘경영이사회’를 각각 외부, 내부에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장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 일상 경영을 관리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다. 최선규 교수는 ‘정치적 중립성 제고’, ‘시청자에 대한 책무성 제고’, ‘프로그램의 공영적 성격 강화’ 등의 목표를 고려해 설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독자적 예산권과 인사권을 쥐고 있는 ‘한국방송 위원회’를 감독할 만한 기구가 없다는 점, 늘 문제가 되어 온 여야 비율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못한 점 등에서 한계를 보였다. 매번 무산된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해 최선규 교수는 “광고 축소, 경영효율화를 전제로 4,000원으로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1부 토론자들은 현재 KBS의 지배구조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을 개선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더 강화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각자의 의견을 밝혔다.
KBS 여당 추천 이사 출신인 정윤식 강원대 교수는 “거버넌스에서 정치적 독립을 논할 때에는 보수와 진보가 페어플레이할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 제도화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이사회는 현재보다 자격요건을 강화해 전문성을 높이고 국민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야 하며, 방송법을 개정해 이사회의 설명 책임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항제 부산대 교수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실현하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사장 임면에 관해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 하나만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는 “이사를 뽑을 때 사회 저변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게 하자”며 “서울 수도권뿐 아니라 광역자치단체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어떨까”라고 전했다.
▲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연합뉴스
지배구조 개선 논의보다는 ‘노조’ 이야기 더 많아
방송문화진흥회 여당 이사 출신인 문재완 교수가 2부 ‘MBC 지배구조’의 발제를 맡았다. 문재완 교수는 “MBC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과연 MBC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한다”며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및 공정성, 채널 경쟁력, 경영수지, 노사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주식회사로서의 본성을 살려 민영화 단행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 △방송 독립성 및 경영 독립성 동시 추진 △방문진 공적 책무 담보기관으로 기능 재조정 등을 지배구조 개선방안으로 내 놓았다. 문재완 교수는 또한 MBC의 공영성 감독기능 강화를 위해 ‘방문진 기능 강화’, ‘방문진 구성의 전문성·정치적 중립성·민주적 다양성 확보’, ‘중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중다수결 방식 채택’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부는 본래 ‘MBC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토론자들은 지난해 170일 파업 등 노조의 활동에 대해 논박하면서 열띤 토론을 진행해 분위기가 한층 더 뜨거웠다.
MBC 노조는 강성이며, 특정 정치세력 집권 시기에 주로 파업을 했다는 발언을 두고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오랜 파업을 하면서도 해고, 징계 당한 노조의 어디가 무서운지를 잘 모르겠다”며 “기본적으로 공영방송 노조는 공공부문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진보적인 측면이 있는데 ‘진보적이어선 안 된다’고 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장 역시 지배구조 개선안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김재철 사장 시기의 경영성과가 나쁘지 않다고 했는데 장기 파업으로 인해 인건비가 절감된 부분이 있다. 또 광고 판매를 맡은 코바코가 경영성과에 기여한 바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성노조라고 하지만 파업도 제한적이며, 사측은 언제든지 손배가압류를 걸 수 있다. ‘불공정 보도’ 때문에 파업이 시작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수 강릉원주대 교수는 MBC 노조의 파업에 대해 “방송은 편집, 경영, 제작자의 권리가 혼재하기 때문에 일반기업처럼 꼭 근로조건만을 가지고 파업해야 한다고 볼 순 없다”며 “근로조건 향상의 의미를 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요 방송사 노조들이 ‘공정 보도 수호’를 내걸고 진행한 파업을 두고서도 갑론을박이 오갔다. 발제 이후 질문 시간에 최선규 교수는 “KBS, MBC의 장기 파업에도 시청자들은 파업 후유증을 체감하지 못했는데, 지배구조 논의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라며 의문을 표했다.
이에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파업은 88년부터 있었지만 그때에도 대다수가 파업에 관심을 덜 두었다. 또 시청이 파편화되면서 대안 매체가 많아진 점도 있다”며 “이런 점들을 노조 파업 자체를 폄하하는 논리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채수현 정책위원장도 “이미 외주제작이 많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간부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파업 효과는 없어 보일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습관성 시청자들을 위해 바른 정보를 주어야 한다”고 ‘공정 보도’ 관련 파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MBC 지배구조 개선 방안 중 하나로 꼽힌 ‘민영화’에 대한 의견도 두 편으로 나뉘었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MBC는 공적 콘텐츠가 거의 없으며 상업화를 주도하고 있다”며 “주식회사라는 특성에 맞게 민영화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항제 교수는 “MBC의 구조를 기형적으로 보는 분들이 많지만, 광고로 운영되지만 공적 책임이 강한 형태의 방송들이 90년대 이후에도 늘어나고 있다”며 “호주, 캐나다를 보면 나라 돈을 받으면서도 정부 비판이 가능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민영화로 달성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는 국회 내에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위원장 전병헌, 이하 방송공정성특위)를 운영하고 있다. 9월 30일까지 활동하는 한시적 조직인 방송공정성특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 △SO·PP의 공정한 시장 점유를 위한 장치 마련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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