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 9일자 한겨레 1면 기사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자신의 구상과 흡사하다고 발언했다. 양국 정상의 합의는 대화하기 위해선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원칙도 고수되었다. 전반적으로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양 진영이 이 회담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오바마-박근혜의 합의는 대북 강경책을 지지하고 있고, 이 정책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한미동맹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진보언론은 새로운 대북정책이 나오지 않았다고 실망한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양 진영의 대북정책의 차이를 도출하는 국제정세 인식에는 화해의 지점이 없는 것일까. 사실 대북 강경책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는 당위론과 현실론을 묘하게 뒤섞어서 오가는 몇 가지의 논점들이 있다. 그 차이를 가져오는 논점들을 정리해보며 대북 강경책의 미래를 예측해본다.
첫째, 비핵화는 현실적인 목표인가
낙관론: 그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비관론: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북 강경책의 낙관론자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당위론으로 남겨둔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북한이 경제발전과 핵무력 건설을 병행하겠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이제 비핵화는 어렵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북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비관론자들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성과가 없다고 비판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이 ‘버마 모델’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참조하기 쉬웠던 카다피의 리비아가 민중항쟁으로 붕괴된 이상 북한은 결코 핵무력을 포기하고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따라서 만일 미국이 이란으로의 핵확산을 두려워하여 북한을 관리하려 한다면 현실적인 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라 (이란으로의) ‘확산금지’나 ‘동결’일 수밖에 없는데, 낙관론자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주장이다.
둘째, 미국의 대북정책은 변동 가능한가
낙관론: 그래서는 안 된다.
비관론: 그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 9일자 한겨레 사설. 남한 정부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조언이다.
대북 강경책의 낙관론자들은 비핵화라는 정책목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같은 대북정책을 변동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한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고 남한이 적극적으로 그러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여긴다.
비관론자들의 판단의 근거는 미국이 북한보다는 중동문제에 훨씬 중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는 남한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정책을 당장은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한반도 위기는 미국보다는 남한에 훨씬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남한 정부는 미국 행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비관론자들의 판단이다.
비관론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경우 남한이 미국으로부터 비주체적인 대북정책을 강제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북한의 최근 ‘도발’의 패턴을 보면 처음부터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즉 북한은 ‘막나가는’ 도발을 했다기 보다는 미국이 이란으로의 핵확산을 용납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치밀하게 계산된 플레이를 했으므로, 만일 미국이 북한의 ‘카드’가 실현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남한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북한과 전격적인 협상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남한 정부는 1994년 제네바합의 때처럼 협상에서는 배제되고 미국이 북한에게 제공하는 유인의 비용은 감당할 가능성이 크기에, 그렇게 되기 이전에 남한 스스로 대북정책을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 일부 비관론자들의 생각이다.
셋째, 중국의 대북한 정책은 본질적으로 변할 것인가.
낙관론: 그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비관론: 현실적으로 어렵다.
▲ 9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중국의 변화된 태도를 담고 있는 기사다.
한편 대북 강경책의 낙관론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본다. 북한 체제의 명줄을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중국의 대북한 정책이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중국이 북한 체제의 붕괴를 통한 남북통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그런 태도를 취할 경우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거나 적어도 붕괴의 위협을 느끼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낙관론자들 역시 현재의 흐름이 벌써부터 중국 정부의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낙관론자들에게도 판단의 근거는 있다. 그들은 북한이 핵과 발사체를 모두 갖게 되는 상황은 중국 정부에게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북한이 자신들의 핵무기가 미국을 겨냥한다고 명시한 상황은 미국에 대한 도발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기도 하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과거보다 북한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체를 취하는 상황은 낙관론자들의 판단의 근거를 지탱해주는 부분이라 볼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란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모종의 합의를 이루었으리라는 추정도 제기된다.
하지만 비관론자들은 이러한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중국의 대북한 정책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들은 낙관론자들이 남한 중심의 흡수통일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중국 정부 일각의 발언을 과대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관론자들은 현재의 남한의 외교기조가 이어질 때 중국은 한반도에 친미성향의 통일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또한 남한이 북한땅을 당연히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중국 역시 북한 지역에 연고를 주장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상황에선 중국을 포섭하여 북한을 압박한다는 시도 자체가 매우 어렵거나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9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역시 아직까지 중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본질적으로 변화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넷째,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해 지금 수준의 군사적 개입을 지속할 것인가.
낙관론: 당연히 그럴 것이다.
비관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대북 강경책의 낙관론자들은 이 점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이 계속 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며, 따라서 일본의 극우화와 군사대국화의 문제도 미국에 의해 일정 수준 통제될 것이라 기대한다. 사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극우 발언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높지만, 미국은 일본이 평화헌법을 포기하고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만큼은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합리적이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발을 빼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방치하여 국방비 부담을 줄일 가능성을 우려한다. 비관론자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아무리 중동 문제를 중시한다 하더라도 북한 문제를 이토록 방치하는 데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우려하는 편이다. 즉 그들은 미국 정부가 북핵 위기를 방치하여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수월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관론자들은 이 경우 일본의 군사력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축이 되는 상황을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견딜 수 있을 것인지, 그렇게 재편되는 새로운 종류의 한미일동맹에 남한이 끼어들 경우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한다. 그들은 그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가 기존의 한미동맹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각도의 외교적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섯째, 한미동맹의 강조는 중국을 자극할 것인가
낙관론: 그렇지 않게 만들어야만 한다.
비관론: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 9일자 한겨레 사설. 남한이 MD의 질서에 포함되어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대북 강경책의 비관론자들은 한미동맹에 대한 맹목적인 강조가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을 자극하게 되는 나쁜 결과를 낳게 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낙관론자들은 이러한 우려가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낙관론자들은 ‘G2시대’의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한 협력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질적으로 강화하면서 한중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본다. 미국으로부터도 중국으로부터도 용인될 수 있는 통일의 길이 가능할 것이며 그러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통일한국이 동북아평화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한국이 한미동맹 일변도의 외교관계를 벗어나지 않을 경우 중국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없으며 통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 9일자 한겨레 4면 기사. 박근혜 대통령이 MD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은 잘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MD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청와대 관계자들도 이미 알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상의 논점들에 대한 대북 강경책의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태도는 어느 한쪽이 전적인 오류라거나 날조라고 비난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양쪽 다 어떤 지점에서는 당위를 들이밀고, 다른 지점에서는 현실을 들이밀며, 복잡한 국제정치관계를 해석하기 위한 추측을 단행한다. 이중에서 어떤 추측들은 현실적 역학관계를 심하게 넘어서기도 하지만, 국가의 중대사에 대한 고민이란 점에서 고려될 가치가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미묘한 인식의 결들에 ‘종북반미’나 ‘친미사대’와 같은 악마의 이름을 붙이고 그 틈새를 사유하지 못하게 하는 교조주의다. 비록 시민들이 이러한 교조주의에 의해 두 패로 갈려 다툴지라도 정부와 관료의 판단은 냉철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조차 양대 교조의 한편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한국의 담론환경은 정부와 관료들의 냉철한 판단을 힘들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교조의 이름만을 부르지 말고 논점별로 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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