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다시 맞는 노동절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기존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은 쇠퇴한 반면 역설적으로 시민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급증했다. 희망버스 등의 새로운 현상에 대해 평자들은 ‘노동없는 노동운동’이란 말로 우려하기도 하고 ‘노둥운동의 새로운 진화’란 말로 희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래도 적어도 진보진영에서는 한국 정치의 큰 문제 중 하나가 ‘노동없는 민주주의’(최장집)라는 것이 ‘상식’이 된 시점이다. 진보언론의 노동보도 역시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몇 년전과는 사뭇 달라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만으로 충분한 걸까. 진보언론은 이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면 되고 방송과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 ‘언론 속 노동문제’, 그 지금까지의 성과를 반성적으로 고찰해보기 위해 미디어스는 특집을 시작한다. 특히 한국 언론이 기업 광고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와 기자 개인의 대응의 한계를 축으로 현재 상황을 파악해 보고, 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 내에 ‘노동전문 기자’와 같은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를 널리 고민해볼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모 기업 홍보실에서 미디어스를 찾아왔다. 그 기업의 광고집행이 새정부에 대한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해석 기사에 항의·대처하기 위해 온 것이다. 기자 한명이 직원과 마주앉자 직원은 “몇 살이냐”라고 물었고 그 기자는 “그런 말 하실 거면 일어나자”고 답했다.
한 인터넷 매체 편집국의 풍경
미디어스는 해석이 아니라 사실의 차원에서 오보로 판명되지 않는 이상 기사를 내리는 일은 없었고 항의한 이들의 입장이 반영할 만하다 여길 경우 수정을 보는 경우는 있었다. 그걸 알았다면 찾아올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체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여기에도 사람이 찾아올 정도면 그 관리라는 건 생각 외로 촘촘할 것이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해당 기업으로 웹을 검색하다 한시간 전만 해도 십수건 씩 검색되던 기사 중 미디어스 기사 밖에 남지 않았다며 웃었다.
삼성 백혈병피해자들을 후원하며 시작한 산재인권단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처음부터) 팔아먹으려고 인터뷰하려고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처음에는 ‘팔아먹는다‘란 말이 ’조회수 팔이‘를 의미하나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온라인 매체들이 주로 많지 붙지 않았겠나. 여기저기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실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데스크의 판단에 의한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참 인터뷰를 하다 보니 사안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인터뷰를 하는 이들이 보이더라. 그럴 땐 이 인터뷰 기사가 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서는 거다. 그래서 ’팔아먹으려고 쓰시는 건 아니죠? 인터뷰 나갈 거죠?‘라고 묻기도 한다”
언론사 '엿 바꿔먹기' 권장하는 광고 종속의 실태
한국 언론의 ‘광고 종속’ 문제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문의 광고수입 의존도는 1950년대까지 20∼30%에 불과했으나 1960년대에 40%, 1970년대에 50%를 넘어서고, 1990년대 이후에는 80% 이상으로 높아진다. 더구나 2000년 이후 신문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2008년 경제개혁연대의 자료에 의하면, 신문광고 시장은 2002년에서 2006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15.8%나 줄어들었다. TV, 유선방송, 인터넷 등 뉴미디어 시장의 확대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다. 주간지의 경우 구독을 하게 되면 그래도 언론사에 이윤이 남지만, 일간지의 경우 단지 구독자만 늘어서는 늘면 늘수록 손해만 누적된다는 말이 나온지 오래다.
독자들의 구독료가 신문사의 손익분기를 맞추기에 충분치 않고 더더욱이나 인터넷으로 대부분의 콘텐츠가 소비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수익모델을 만들어 나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언론은 (진보언론 포함) 포털에서 ‘낚시성 기사’를 배치해 트래픽을 끌어오기도 하고 새로운 유료 매체를 창간해 활로를 모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낚시성 기사’에는 도덕적인 비난을 하면서도 신간 매체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것이 현실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게 삼성은 무엇인가
2010년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및 소개를 둘러싼 진보언론들의 평지풍파는 진보언론 역시 그러한 취악한 구조에 속박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겨레는 출판사에게 통상적인 도서광고비에 적용되는 할인가의 세배에 해당하는 정상가격을 요구했다. 물론 출판사 역시 애초 삼성이 소송을 걸 가능성을 대비해 책값을 높게 책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겨레 역시 비슷한 우려를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출판사는 한겨레에 세배의 광고료를 지불하는 대신 ‘진보언론에서도 거절당한 책’이란 컨셉으로 트위터에서 홍보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한겨레는 삼성 광고 없이도 정도 걸었다"(미디어오늘 2010년 3월 3일, 안재승 한겨레 전략기획실장)는 당시 한겨레 측의 단호한 해명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찝찔한 상황이 펼쳐졌던 것은 분명하다.
경향신문에서는 2월 17일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쓴 기명칼럼이 신문에 게재되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편집국은 칼럼을 다소 수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김교수는 받아들이지 않고 프레시안과 레디앙에 칼럼을 보냈다. 이에 당시 막내기수인 47기 기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명박은 조질 수 있고 삼성은 조질 수 없습니까”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2월 24일 지면에 1면의 “알림”과 사회면의 “경향신문, 삼성 비판 ‘김상봉 칼럼’ 미게재 전말”이란 기사로 반영되었다.
▲ 2010년 2월 24일자 경향신문 1면 '알림'
경향신문은 “알림”에서 이번 사태가 “김 교수의 이번 칼럼이 삼성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게재할 경우 자칫 광고 수주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한 때문”에 일어났음을 진솔하게 고백했다. 또한 “이 일이 있은 뒤 치열한 내부 토론을 벌”인 결과 “진실보도와 공정논평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는 언론의 원칙을 재확인”하였음을 천명했다.
경향신문 전 노조위원장이었던 강진구 노무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당시 회사 전체가 생존을 최우선 순위로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면서 “그렇기에 어떤 기본적인 기준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의 광고가 크게 줄어들어 2009년 이후 전체 신문광고 시장에서 대기업 광고 비중이 크게 늘어났던 상황과 연관이 있다. 특히 당시 삼성그룹은 2008년 비자금 특검 이후 줄인 광고를 2009년에 크게 늘리는 등 ‘큰 손’으로 군림했다. 김상봉의 문제제기에 대해, 그 취지엔 동감하면서도 “(삼성으로부터) 하필 수습들 노트북도 협찬 받지 못하게 그때 일이 터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제부 선임기자가 노동문제에 관여했을 때
즉 불안정한 물적 조건 속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 진보언론의 특성상 종종 광고주의 이해관계를 반하는 주장을 펼쳐야 하기 떄문에 그들의 보도는 일종의 ‘외줄타기’가 된다. 그리고 이 외줄타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도, 진보언론 중에서 기업 쪽 전문가가 노동 쪽 전문가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12년 10월에는 과거 한겨레 내부에서 대기업 전문기자로 활약했던 곽정수 선임기자의 기사를 두고 ‘반올림’ 측과 갈등이 있었다. 곽정수 선임기자의 기사는 삼성이 백혈병 피해가족 측과 만나자는 대화제의를 했다는 것인데 ‘반올림’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것이었다.
▲ 2012년 10월 17일자 한겨레 1면 기사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기자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일텐데 한쪽이 만나기로 한 사실이 없다고 했는데도 ‘내가 들은 어떤 소스가 있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아 실망이었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해내는 격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반올림’의 변호인 측이 ‘반올림’ 자체거나 그 입장일 수는 없는 것이고 삼성 변호인과 삼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텐데 변호인들끼리의 어떠한 논의를 캐내어 삼성그룹 측의 의지로 ‘포장’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곽정수 선임기자의 경우 대기업 전문기자로 활약할 때에도 친재벌적이기는커녕 삼성그룹의 소유구조 문제를 오랫동안 비판해온 이다. 입사 후 사회부와 경제부를 거쳤고 경제부에서 활동할 때에 대기업 전문기자의 타이틀을 달고 재벌 그룹들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썼었다. 그는 대기업 전문기자라는 칭호를 반납하는 과정에서도 다소 순치되는 한겨레 내부에서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를 가장 활발히 쓰는 인사로 꼽혔다.
▲ 2012년 10월 17일자 한겨레 10면 기사
하지만 그런 이라도 기업 측에서 들은 정보로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피해노동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은 개인의 역량을 넘어 노동문제를 다루는 현행 언론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반올림’에 대한 삼성의 태도는 어떤 식으로 도와줄 수는 있으되 산업재해만큼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곽정수 기자의 보도는 삼성의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데 도움을 준 것일 수도 있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왜 그간 우리 문제를 다뤄준 사회부에서가 아니라 경제부에서 그런 기사를 썼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방의학'이 될 수 없는 노동 보도의 문제
현장의 불만은 대체로 언론들이 노동 문제를 사건 중심으로, 그리고 공판결과 중심으로 보도한다는 것이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피해 관련) 제보자 숫자가 언론보도에 따라 달라졌다. KBS 추적60분에서 3번 정도 다뤘을 때는 숫자가 팍팍 늘었다. 하지만 작은 매체가 다루면서 조금씩 늘어나는 효과도 있었다. 한겨레 하니TV의 기획보도, 프레시안의 피해자 열전 시리즈 같이 많은 도움을 준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논점이나 반박사안들은 거의 기사화되지 못한다. 1심 재판에서 산재를 인정받거나 사람이 죽는 다거나 하는 식의 사건이 터져야 주목을 받는다. ‘반올림’은 황유미라는 젊은 여성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박지연이라는 또 한명의 젊은 여성이 사망하면서(2010년) 비로소 이만큼이나 유명해졌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전 노조위원장 강진구 노무사도 “산재 문제에 관련해 ‘하인리히 법칙’이란게 있다. 현장에서 사고가 터질 정도면 수백 수천가지 징조와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그런 부분을 거의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산재예방이나 산업 안전보호를 말하지 못하고 터져난 사고에 대한 사건 중심 보도, 발생한 노조파업에 대한 보도, 법원 선고 보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이 우리의 삶의 문제라면 진보언론들이 일상적인 노동의 문제를 지면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사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환경 관련 보도에서 더 이상 지구 온난화와 이산화탄소의 연관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노동 관련 보도에서는 이와는 달리 분명한 연관성을 갖는 게 자꾸 일상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기업과 법원이 부인하고 있는 연관성을 추적하는 것이 언론의 소임일 수 있는데 이런 문제는 활동가들이 보도자료를 아무리 만들어내도 외면받기 십상이다.
물론 진전된 바가 없지는 않다. 이명박 시대 노동 관련 보도는 한겨레21의 ‘노동OTL’로 대변되는 새로운 형태의 ‘체험보도’로 발전하기도 했다. 사건이 터지기 전의 노동, 삶과 생활로서의 노동에 대한 관점이 보도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노동 문제에 관한 보도가 언론의 존재론적 보수성과 취재하는 기자 개인의 비전문성의 문제를 돌파하려면 새로운 시도와 고민이 필요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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