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문제가 전국적 사안으로 떠오른 지도 일정한 시간이 흘렀다. 박근혜정부의 공공의료정책과 홍준표 경남지사의 소신이 충돌하고 있다는 분석이 언론에서는 많이 제기되고 있다.

분명 전국적인 정치 지형에서는 그런 구도가 보인다. 하지만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슨 의도로 진주의료원 폐쇄를 밀어붙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제2청사 건립 문제를 해결하기 것이라는 추측부터 보수의 아이콘이 돼 대선후보가 되기 위한 것이라는 전망까지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오전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해 경남도청을 방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제2청사 건립으로 도지사 재선?

사태 초기 제기된 문제는 홍준표 지사가 진주의료원 자리에 제2청사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홍준표 지사는 자신이 당선된 보궐선거에서 ‘경남도청의 마산 이전과 진주에 제2도청사 건립’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제2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지를 매입하고 새롭게 청사를 건축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재정도 재정이거니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제2청사를 건립한다면 재정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서 시간도 단축할 수 있어 도지사 재선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조금 확대해보면 재정과 시간의 문제를 넘어선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홍준표 지사는 자신이 당선된 보궐선거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유달리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의지는 지난해 12월 취임식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홍준표 지사는 당시 취임사에서 경남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지역 간 성장 불균형을 해소하고, 진주에 도청 제2청사를 세워 지역 간 행정서비스 불균형을 해소하며, 재정자립도 15% 이하의 군 지역을 특별 재정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도 재정지원 확대하고, 농·어·축산업 지원 대책 확대와 낙후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 추진하겠다는 등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쇄 결정 및 휴업 조치에 대해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남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문제는 이러한 지역균형발전 논리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도심지역의 여론에 있어서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지역 중 하나는 창원시일 것이다. 현재 창원시는 옛 마산·창원·진해가 통합한 상태다. 이 중 가장 힘이 강했던 지자체는 옛 창원시다. 현재 창원시청과 경남도청은 둘 다 옛 창원시 자리에 있다. 옛 마산시 측 인사들은 통합 당시 통합시청사나 시의 명칭 둘 중 하나는 옛 마산시에 배려하기로 합의했었다는 점을 들며 현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통합창원시의회에서는 옛 마산시 의원들을 중심으로 마산시를 다시 분리하는 건의안 상정이 추진되고 있기까지 하다.

홍준표 지사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한 가지 사실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은 지난해 홍준표 지사와 새누리당 경남도지사 후보 자리를 놓고 일합을 겨뤘던 박완수 창원시장의 존재다. 박완수 시장 측이 2014년 경남도지사 출마를 준비하고 있으며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홍준표 지사의 입장에서는 도지사 재선을 위해 박완수 시장을 ‘눌러놔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완수 시장의 존재에 홍준표 지사가 주장한 마산으로 청사 이전, 진주에 제2청사 설치, 지역균형발전론 등을 종합해보면 이게 경상남도 내에서 창원을 고립시키는 전략일 수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어차피 창원에서는 박완수 시장에게 이기기 힘들기 때문에 창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모조리 지지를 획득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는 얘기다.

대권을 향한 야망?

홍준표 지사의 과격한 언행을 통해 보수층의 지지 획득을 통한 차기 대권주자 입지 확보라는 목표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놓는 목소리도 있다. 홍준표 지사는 “진주의료원은 강성노조의 해방구”라며 진주의료원 문제가 공공의료정책의 문제가 아닌 이념적인 문제라는 견해를 나타낸 바 있다.

홍준표 지사의 이런 발언은 다른 지점에서도 불거졌다. 홍준표 지사는 15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실·국장 회의에서 “공공의료는 박정희 대통령 때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출발한 좌파정책”이라며 “앞으로 가난하고 불쌍하고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한 서민의료 대책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발언했는데 그의 이런 발언은 진주의료원 문제에 박근혜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민감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 지난 대선 기간 박근혜 당시 후보와 함께 한 자리에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뉴스1
현재 위기 국면에서 박근혜정부의 이념적 성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한반도신뢰프로세스, 경제민주화, 복지정책 확대 등의 슬로건에 대해 일부 보수층에서 반발한 바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홍준표 지사의 이런 발언에 상당한 정치적 고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홍준표 지사가 공공의료정책에 대한 소신을 밝힌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공격하기도 했다는 점에서도 이런 징후가 발견된다. 지난 7일 CBS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홍준표 지사는 김문수 지사가 “경기도립병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1%라도 나오면 병원은 없애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관련 “김문수 지사에게 언젠가 그런 식으로 하면 희망이 없다는 말을 했다”며 “차라리 '나는 좌파다' 본색대로 얘기하고 우파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다른 광역지자체장에게 한 말 치고는 정도가 심한 얘긴데 이 역시도 앞서 언급한 이념적 구도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PK대전(大戰)의 신호탄일 수도

물론 좀 더 복잡한 정황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홍준표 지사의 김문수 지사에 대한 발언을 잘 뜯어보면 김문수 지사에 대한 일종의 ‘견제’를 의도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홍준표 지사는 “경기지사를 두 번 했으면 대선 나오는데 20~30%는 호응해야지 5%도 안 나오는 그게 뭐냐?”라고 발언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념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같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김문수 지사의 고향은 경북 영천이다. 소위 TK인맥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새누리당 내에서 TK출신과 PK출신들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TK는 군부독재정권 등으로 구축된 보수세력의 본산이며 PK는 과거 김영삼 통민당 총재의 영향을 받은 인사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이들 갈등의 오랜 요소이다.

당장 분수령은 5월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친박 실세이며 TK출신인 최경환 의원과 상대적 온건파이며 PK출신인 이주영 의원의 양강구도가 형성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다른 보도를 보면 원내대표는 TK출신으로 합의추대를 하고 정책위의장을 PK출신 인사에게 맡기자는 여론이 대세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이런 지역 안배가 새누리당 내에서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 4.24 재보궐선거 공식적 선거운동 첫날인 11일 오전 부산 영도 인제병원 앞 사거리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후보가 출정식을 가지고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PK출신의 유력 인사로는 부산 영도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김무성 전 원내대표가 꼽힌다. 김무성 전 원내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 출신으로 한때 친박 좌장으로 불리다 축출된 경력을 갖고 있다. 대선 기간 동안 분전하며 다시 친박의 핵심인사로 복귀했다.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입하면 차기 당대표에 도전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또 다른 유력 인사들로는 유일호, 서병수, 현기환 의원 등도 꼽힌다. 비주류 인사 중에는 정의화, 안경률 의원 등이 꼽힌다. 물론 이들이 홍준표 지사의 무게감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문제는 이런 인사들이 중앙무대에서 움직이는 동안 홍준표 지사는 경상남도에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홍준표 지사가 차기 대권을 목표로 한다면 이슈의 선점과 경남도지사 재선, 이를 통한 PK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유력 대권주자 중 1인이 되는 정도의 로드맵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돼야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PK 출신의 또 다른 잠룡 안철수 전 교수와 겨룰 수 있다. 진주의료원 폐쇄는 이런 계획의 첫 걸음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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