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 달을 갓 넘긴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꼽은 3대 국가 경영 키워드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이다. 이 중 ‘문화융성’은 취임사 전문을 통틀어 19번이나 언급되었다. 한류의 위상이 급부상하는 현재를 ‘문화가 국력인 시대’로 규정하고, 문화 발전을 통해 ‘창조경제’를 견인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를 놓고 박 대통령의 ‘문화융성’이 “국가주의와 개발주의적 담론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줄을 잇고 있으나, 갑작스럽게 대두된 ‘문화융성’ 개념을 어떤 식으로 섬세하게 규정할지에 대한 논의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실정이다.

▲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는 지난 27일 오후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연습실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안적 문화정책의 구상’ 포럼을 개최했다.ⓒ미디어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는 지난 27일 오후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연습실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안적 문화정책의 구상’ 포럼을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시혜적 문화 정책을 경계하고, 개인과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제고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문화융성’의 사회적 가치 확산 개념에 주목해야”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이동연 한예종 교수는 박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새 정부에서는 우리 정신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모든 국민이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이동연 교수는 이를 토대로 볼 때 박 대통령이 말하는 ‘문화융성’은 “단어의 외형적 의미로만 볼 수 없는 만만찮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은 문화융성 개념을 폭넓게 사용하고 있고 단지 경제발전의 도구로 쓰겠다는 개념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며 “국민이 행복해지고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는 쪽으로 문화정책을 사용하겠다는 개념이 들어 있어 과거 60년대 근대화 시절 개발주의 담론으로만 바라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뉴스1

이 교수는 “문화융성이라는 개념을 시민사회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의 확산이라는) 개념으로 문화정책이 적극 사용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즉 수직적 상승과 수평적 스며들기 중 후자가 발현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문화를 통한 사회적 가치의 확산을 위해서는 △잠재성을 이끌어내는 문화 역량 △차이를 봉합하기보다는 인정하는 문화 다양성 △단순 수용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표현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문화 권리 △중앙정부가 독점한 문화적 권리의 지역 분권 △국가가 아닌 시민사회가 자립적으로 확보한 창작자들의 물적 토대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문화정책, 선심성 공약에 집중”

그러나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문화융성의 사회적 가치 실현 측면을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공약이 뒷받침할 수 없다는 점을 짚고 나섰다.

이원재 처장은 “공약의 각론을 보면 연구자와 시민사회가 이야기했던 정책을 잘 모은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관계성이 있거나 통합적이지는 않다”며 “대부분의 선거 공약이 그렇듯 시혜적인 선심성 공약을 나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 처장은 “문화와 관련된 지역 공약 상당수가 문화의 옷을 입었지만 인천 아시안게임, 평창 올림픽처럼 실패가 확인된 ‘메가 이벤트’”라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공약을 박 정부가 모두 이행할 경우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개소식에서 이주영 이사장(왼쪽에서 다섯번째) 등 내빈들과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같은 달 18일 시행에 들어간 예술인복지법 제8조에 따라 설립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의 사회보장 확대 지원, 예술인의 직업안정·고용창출, 직업전환 지원, 취약계층 예술인 지원, 예술인복지금고 관리·운영 등 법에서 규정한 복지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뉴스1

이 처장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사라졌다는 것을 언론이 주로 비판했는데 문화 관련 구상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장애인문화권,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역에 나누어줘야 하는 지역 분권, 예술인의 노동권이나 안전망, 문화콘텐츠의 공정거래, 남북문화 관련 공약이 모두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처장은 “예술가들의 생존 문제에 개입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만드는 정책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국가를 예쁘게 디자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문화정책을 만든다고 주장한다면 멋있는 비전이 아닌 생존의 문제를 직접 다루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처장은 또한 “대학로, 홍대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높은 수준의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대다수는 바쁘고 삶이 힘들어서 보지 못한다”며 “자율시간을 확장하는 정책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공급해도 삶의 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