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의 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전 정부 금융기관장들의 거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등에 대한 언급을 되풀이 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신제윤 신임 금융위원장은 후보자 시절부터 청문회 등의 발언을 통해 “새 정부 국정철학에 맞지 않는 금융기관장들은 교체될 수 있다”는 등의 입장을 밝혀왔다. 22일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금융지주사 제도가 도입된 지 12년이 훌쩍 지났지만 현재 지배구조는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 금융계, 학계,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지배구조 정상화 TF를 구성할 방침”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또, 이 자리에서 그는 금융전산시스템 사고 등과 관련해서도 “전산시스템의 안정성은 해당 회사의 생명과 동의어”라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이러한 문제의식은 결국 27일 금융감독원이 농협과 신한은행 특별검사를 시행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일보가 25일 강만수 회장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중요한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강만수 회장은 전망 좋은 집무실에서 노타이 차림의 셔츠에 편안해 보이긴 했지만 거취 등 민감한 질문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세계일보 측이 기사화 한 강만수 회장의 발언이라고는 “옛날엔 그게 통했지만…” 이라는 세 단어다. 평소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소신을 쏟아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강만수 회장의 태도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사면초가 모피아

결국 강만수 회장의 거취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강만수 회장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명백한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친박계 모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모피아를 손 한 번 볼 것이다”라고 얘기했다는 뒷말이 있을 정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하던 때 금융부문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당시 모피아들이 금융정책을 독점한 것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었다는 것이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하던 시기 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정책을 추진하려 했지만 모피아들이 반발해 무위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새 정부에서 경제기획원 출신들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상황도 박근혜 대통령이 재무부 출신 모피아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포함해 금융위원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경제부처 요직을 경제기획원 출신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경제정책을 총괄하게 될 기획재정부의 경우 1차관이 세제, 2차권은 예산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던 것을 1차관은 거시, 2차관은 재정을 담당하도록 개편했는데 이 역시 경제기획원 출신들의 입맛에 맞춘 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과 세제는 재무부 출신이, 예산과 기획은 경제기획원 출신이 맡아 균형을 이뤄오던 체제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 19일 오전 서울 중구 힐튼 호텔에서 열린 2013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대상 시상식에서 강만수 KDB 회장(오른쪽)이 중앙일보 송필호 부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1997년 외환위기 사태의 책임 소재 문제도 박근혜 대통령의 모피아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줬다는 얘기가 있다. 한 시사평론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신이 정계에 입문한 이유를 아버지가 건설한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사실 때문이라고 설명한 일이 있다”고 말했는데 당시 강만수 회장은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이 사태에 대한 주요한 책임자 중 하나로 언론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결국 강만수 회장이 임기를 다 채우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역시 모피아 출신이므로 모피아의 대부인 강만수 회장을 쉽게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발언의 행간을 짚어보면 이런 고충을 알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래도 모피아는 모피아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발언에서 묘하게 강만수 회장은 비껴가있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평을 내놓았다.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앞서 설명한대로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문제와 금융회사의 전산망 안정성에 대해 발언했는데 이 두 가지 문제 모두 강만수 회장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가 문제가 된 회사는 NH농협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이다. NH농협금융지주의 경우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상황이 문제가 돼 낙하산 등의 논란이 벌어진 바 있고,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신상훈 전 사장의 배임‧횡령 혐의를 둘러싼 사건이 스캔들화 된 소위 ‘신한사태’를 겪은 바 있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김승유 회장이 자진사퇴 하는 등의 결단을 내렸지만 여전히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뒷이야기가 돌고 있으며 우리금융지주는 오랜 민영화 논란으로 인한 정치권 줄대기 등 인사논란이 문제가 된 사실이 있다. 최근에는 KB금융지주 역시 사외이사 선임 등의 문제로 몸살을 겪은 바 있다.

▲ 2012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당시 금융기관 수장들. ⓒ뉴스1

하지만 산은지주의 경우는 이런 사례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게 일각의 지적이다. 산은지주 지배구조의 문제는 산업은행 민영화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지 어떤 스캔들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를 손보는 작업을 금융당국이 시작하더라도 ‘메스’가 산은지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금융전산시스템 사고와 관련해서도 신한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가 문제가 될 뿐 산은지주에는 특별한 영향이 없는 이슈라는 평가가 있다. 애초에 산은지주가 전산시스템의 안정성이 문제가 될 만큼의 소매금융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지도 않다는 게 이러한 평가의 근거다.

결국 강만수 회장에 대한 교체논리를 만들려면 ‘국정철학이 맞지 않는다’는 것과 ‘정책금융체계 개편’이라는 것인데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 계속 신중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금융위원장 지명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리스마 있게 잘 하고 계신 분도 있다”라고 발언한 것에 이어 정책금융체계 개편과 관련해서도 “각각의 주장에 다 일리가 있기 때문에 검토를 해보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강만수 회장 교체 여론에 대해 곤란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칼이 어디까지 춤출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