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일터로 출근하는 대신 하늘로 오른다. 일거리가 없어 괴로워하는 이와 과로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공존한다. 국정조사를 통해 회사의 회계 부실과 해고의 부당성을 증명해달라는 목소리는 반향 없이 묵살되고, 대의 민주주의는 고통 받는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 1985년 가을 총선 때 연설하고 있는 팔메의 모습.(후마니타스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본받을 만한 외국의 여러 지도자로 호출되는 이들 중 ‘올로프 팔메’의 이름이 있다. 다소 낯설게 들릴 것이다. 팔메는 스웨덴의 제26대 총리로, 스웨덴 사회에서 공유되는 합의주의의 정신을 넘어 중용 없는 정치를 통해 복지국가의 이상을 훌륭하게 구현했으며,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를 원만하게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격렬하던 쟁의활동은 점차 잦아들었다.

그리하여 팔메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신자유주의의 길로 향하는 물결을 거슬러 ‘복지국가 스웨덴’의 틀을 지키는 데 일조했다. 이렇듯 팔메가 뚝심 있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자신의 성격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팔메의 성품은 스웨덴 보수장의 지도자인 칼 빌트가 “지난 20년 간 스웨덴 정치에는 친(親)팔메와 반(反)팔메 그리고 팔메, 이렇게 셋만 있었다”고 평한 데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이라는 수사도 팔메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팔메는 다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꾸준히 행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법규의 도입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자본가들의 미움을 샀다. 세금을 올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부를 재분배해 분배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 1968년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팔메가 반베트남전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는 모습. 그의오른쪽에 모스크바 주재 북베트남 대사인 응우옌토쩐이 있다. 이날 팔메의 행진 및 연설 이후 미국과 스웨덴의 외교 관계는 급격하게 얼어붙었다.(후마니타스 제공)

호불호가 분명한 태도는 외교 문제에서도 빛을 발했다. 팔메는 베트남전을 나치의 게르니카 폭격에 비유하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스웨덴 경제에서 무기 산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과감히 이란-이라크 분쟁을 중재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도 목소리를 냈다.

팔메의 ‘튀는’ 태도는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중용’을 지키는 것을 선호하는 스웨덴의 사회 분위기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스웨덴인은 팔메가 보여주는 비전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사랑했다. 팔메가 1986년 2월 28일 암살로 생을 마감한 후에도, 그가 꿈꾸었던 사회상은 스웨덴 사회민주당을 통해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2013년의 한국 사회에 왜 팔메와 같은 정치인이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국 정치의 수많은 문제를 일거에 소환할 수 있는 메시아를 소환하자는 뜻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팔메가 설정한 미래상이 차근차근 구현되기 위해서는 지난한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 필요했다. 과연 한국 사회는 팔메와 같은 ‘이단아’의 의견을 참을성 있게 듣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다.

“대선 이후 민주당, 방향 설정할 리더 없다”

민주통합당 내 사민주의 모임 ‘복지국가진보정치연대’는 지난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연 ‘올로프 팔메, 합의주의를 넘어선 지도자’를 개최했다. ‘올로프 팔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의 저자인 한겨레경제연구소의 하수정 연구원이 강연자로 참석했다.

이날 강연은 본받을 만한 타국 지도자의 사례를 수입해 “왜 우리에게는 이런 지도자가 없는가”라고 한탄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강연에 이어진 토론 순서에서는 민주통합당이 스웨덴과 팔메의 사례를 어떻게 흡수해 재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오갔다.

▲ 민주통합당 내 사민주의 모임 ‘복지국가진보정치연대’가 지난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강연에서 복지국가정치진보연대의 대표를 맡은 박용진 대변인이 발언하고 있다.ⓒ미디어스

특히 복지국가정치진보연대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용진 대변인은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리더가 부재한 민주당의 상황을 경고하고 나섰다.

박 대변인은 “1971년 김대중이라는 리더가 나타나기 이전의 신민당, 지금의 민주당은 정책이고 뭐고 없는 ‘후진’ 정당이었다”며 “(김대중이) 제시하는 정책의 방향이 좋았으므로 젊은 사람들이 입당하고 대중 정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었다”고 짚었다. 이러한 과정은 지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람처럼 나타나면서 재현되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걸물을 이을 만한 리더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설령 혜성 같은 신인이 등장한다고 한들, 당이 그를 뒷받침하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며 유권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면 새로운 리더가 당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박 대변인은 “민주당에 팔메가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당을 당답게 세우고 정당정치를 정확히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민주당은 “무엇을 향해 갈 지 합의된 바가 없다. 심지어는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갈 지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것이 박 대변인의 지적이다.

리더를 받쳐줄 수 있는 정당 정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이견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미약하나마 정치혁신위원회와 당 대표 경선 과정 등을 통해 다시금 ‘정당 정치 바로세우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아직 한국의 제1야당이고,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고 있으며, 여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후 민주당의 지향점 설정에 관련한 합의가 어떻게 완성될지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 참고서적 : 하수정 저, <올로프 팔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후마니타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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