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던 '김재우 호'가 결국 침몰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아래 방문진)의 김재우 이사장이 논문 표절이라는 '철퇴'와 함께 고꾸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방문진의 새로운 선장이 될까? 세간의 관심은 벌써부터 '보궐 이사'와 'MBC 정상화'에 집중되고 있다.

김 이사장은 13일 방문진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 "(논문표절과 관련한) 개인적인 환경을 떠나 새 정부 출범부터 사임 의지가 있었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논문표절과 나의 사퇴는 상관없는 일" "박사 학위가 이사장의 자격 요건은 아니다" 등 마지막까지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내며 쓸쓸하게 퇴장했다.

▲ 몰락한 김재우 이사장 ⓒ뉴스1

김재우 이사장의 돌연 사퇴…박근혜의 입김?

김재우 이사장은 2010년 5월 14일, '조인트 파문'으로 사퇴한 김우룡 당시 방문진 이사장을 대신해 여당 추천 보궐 이사로 임명됐다. 5일 뒤인 19일에는 여·야 추천 이사들의 호선으로 방문진 이사장에 선출됐다.

그간 김 이사장은 논문표절 문제와 관련해 '묻지마 버티기'로 일관해 왔다.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논문 표절이 확인될 경우) 이 자리(방문진)에 나타나지 않겠다"며 사퇴 의사를 표했다. 단국대 예비조사 결과가 논문 표절로 판정된 후에는 "본 조사 결과를 보고 이야기 하자"며 기존의 말을 은근슬쩍 바꿨다.

최종적으로 논문 표절이 확정된 뒤에도 김 이사장은 여·야 추천 이사들의 자진사퇴 권고를 무시하며 자리 보전에 급급했다. 비상식적인 김 이사장의 태도에 여·야 이사들은 지난달 두 차례나 이사회를 보이콧했다. '개인적 고집으로 버티고 있다'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방문진 이사회 안팎으로 전해지던 시점에서, 김 이사장이 돌연 사퇴한 데에는 아무래도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공공기관장에)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를 임명하도록 노력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이 있자마자 언론들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해서는 새 정부의 국정목표와 과제를 이행하기 적합한 새로운 인물을 임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방문진 이사장 교체 역시 이러한 기조에 들어맞는 수순으로 풀이된다. 김 이사장의 논문 표절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은 "그것(청와대의 의지)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새롭게 뽑힐 여당 추천 이사와 관련해서도 정부와 여당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 SBS <8시뉴스>가 13일 보도한 <공공기관 물갈이…'낙하산' 우선 교체>. 박근혜 대통령은 대대적인 공공기관장 물갈이를 예고했다. ⓒSBS 뉴스 화면 캡처

여·야 정치권에 의해 이사가 추천되는 현 방문진 구조상 정부와 여당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 방문진을 통해 MBC에 입김을 넣어온 MB정권의 과거 모습을 고려해 보면, 집권 초의 박근혜 정부가 '누더기'가 된 김 이사장을 교체하는 절차를 밟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는 여당 추천 이사의 발언을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여당 추천 김광동 이사는 "김 이사장은 1월부터 새 정부의 국정 철학에 맞는 인사와 운영 거버넌스를 위해 사퇴 의사를 피력해 왔다"며 "김 이사장은 3년의 임기를 다 채우기보다 정부 이양기에 맞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김 이사장은 결국 스스로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임 의지가 있었다"고 밝힐 정도로 새 정부의 영향력과 메시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본인의 거취와 관련해 윗선의 눈치를 보고 있던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공공기관 인사 교체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나타냈고, 논문 표절까지 드러난 마당에 김 이사장의 입장에선 달리 선택할 '카드'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단국대의 갑작스러운 결정도 이를 뒷받침한다. 단국대는 <미디어스>가 취재했을 당시(5일)까지만 해도 김 이사장 '학위취소'와 관련해 "대학원 위원회가 구성됐지만 구체적인 소집 계획은 없다"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기사링크) 하지만 8일 단국대는 돌연 김 이사장 '박사학위 취소'를 결정했다.

야당 추천 최강욱 이사는 "뜸하던 단국대의 조치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며 "일정이 없다고 밝힌 학교가 갑자기 8일날 결정을 했단다. 이사장 사퇴와 학위 취소에 대해 누군가가 조정한 것이라는 의심이 합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보궐 이사는 누구?…엇갈린 시선

MB와 고려대학교 동문인 김재우 이사장이 고려대학교 출신 김재철 사장을 비호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떠난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빈 자리의 주인은 이미 결정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4일 전체회의를 열어서 방문진 이사의 후임으로 김문환 전 국민대 총장을 선출할 것으로 보인다.

김문환 전 총장은 1946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그는 국민대 교수를 거쳐 2004년에는 총장까지 지냈으며 녹색소비자연대 대표와 아름다운가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MBC와는 2010년 시청자위원회를 통해 연을 맺었고 시청자위원장까지 맡은 바 있다.

김 전 총장은 정치권 안팎에서 '합리적 보수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그가 실제 새누리당 의원들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은 언론계에서 공공연하게 떠돌던 이야기이다. 김 전 총장과 김재철 사장의 관계를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언론계 한 관계자는 "(김 전 총장은) 김재철 사장이 공을 많이 들인 인사"라며 "시청자위원회 시절부터 이진숙 본부장과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여·야 양쪽으로부터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 전 총장이 MBC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MBC내부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MBC 한 관계자는 "김재우 이사장만큼 김재철 사장을 비호해 온 사람은 없다"면서 "김문환 전 총장은 상식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김 사장 체제를 바꾸고 MBC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MBC 내부 다른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와 봐야 안다"면서 "정치권 차원에서 MBC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반박했다.

새 보궐 이사가 이사장?

김 전 총장이 여당 추천으로 보궐 이사로 선출되면 현 방문진 이사 중 최고령자(46년 생)가 돼 새 방문진 이사장으로 뽑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재우 이사장 역시 2010년 보궐 이사로 임명된 후 호선으로 이사장이 됐다. 하지만 이런 관행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낙하산' 이사장을 뽑게 된다면 정치권의 방문진 장악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야당 추천 최강욱 이사는 "김재우 전 이사장처럼 보궐 이사가 정치권으로부터 낙점 받아 이사장이 된다면 권력에 의해 방문진이 장악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며 "결국 방문진이 또다시 거수기 역할에 머물겠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그런 관행으로 일관한다면 제재 방안을 찾아볼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이사는 "여당 이사들은 또다시 새로 오는 이사가 이사장이 돼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면서 "하지만 기존의 이사 중에서도 그간 쌓인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이사장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현 이사진 내부에서 먼저 검증해 보는 것이 상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당 추천 차기환 이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최강욱 이사의 주장은) 모두가 합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해, 이사장 선출을 두고 여·야 이사들의 갈등이 가시화될 조짐이 보인다.

산적한 방문진 현안들

잇따른 파행으로 방문진의 현안은 산적하게 쌓여있다. 당장에 △사무처장 선임 △MBC감사 선임 △MBC 업무보고 등 주요 안건들이 처리돼야 한다.

지역 MBC 사장 선임 건도 방문진의 협의가 필요하다. 방문진에 업무보고를 거부한 김재철 사장에 대한 문책 논의도 유야무야로 끝났다. 방문진의 이 같은 '표류'는 방통위가 보궐 이사 선임에 속도를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문환 전 총장이 보궐 이사로 선출되기 전까지 방문진은 8인 체제로 운영된다. 주요 안건은 김 전 총장이 임명된 이후에 다뤄질 예정이다.

14일 오전 8시에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는 MBC경영평가 소위원회 구성 등에 대해 논의가 있었으며, 남은 8명의 이사 중 최고령자인 김용철 이사가 직무대행으로 이사장의 자리를 대신했다. 결국 방문진 정상화와 MBC 정상화 논의는 이번 보궐 인사 임명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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