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교수의 서울 노원구 병 출마가 사실화되면서 기존 정치세력의 대응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누굴 내세워서 어떤 전략을 써야 안철수 전 교수를 이길 수 있는지, 진다고 하더라도 어떤 선택을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 4·24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병 예비후보로 등록한 안철수 전 서울대교수가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당고개역 인근에서 회식 중인 직장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안철수 전 교수가 이번 4월 재보선에서의 성과를 토대로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안철수 전 교수가 신당 창당을 할 경우 순식간에 원내 2당 정도의 지지율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여러 차례 보도됐는데, 이는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단순한 논리로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선거에서 지워질 수 있는 민주당

이러한 이유로 민주통합당 내부에서도 후보를 낼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중진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당시 후보가 양보했고 야권단일화의 정신도 있어 전향적인 검토를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지만 또 일각에서는 "정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기도 한다.

이들이 내놓는 상반된 결론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민주당 주도의 선거 구도가 형성될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노원병 선거에서 이기거나, 최소한 지더라도 의미있게 패배해야 한다. 하지만 이 지역구는 진보정의당이 야권연대를 통해 획득한 것인데다 안철수 전 교수까지 등장하게 돼 선거 구도에서 민주당은 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 민주통합당 이동섭 노원병 지역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조속히 4.24보궐선거에 노원병 후보자를 공천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4월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존재하지 않는 당'이 되어버릴 경우 이후 등장할 '안철수 신당'에 제1야당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물론 야권 내부의 정국 주도권도 잃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해진다.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재보선에서 자기 존재를 어필하고 이후 정국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첫째, 안철수 전 교수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불출마를 통해 '좋은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안철수 전 교수와 각을 세워 대응을 해봐야 그의 신당창당에 명분을 주는 행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둘째는 작은 지지를 받는 후보를 통해서라도 출마를 강행해 새누리당 후보와 안철수 전 교수가 호각을 이루는 정국에서 후보단일화 논의 등으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일종의 캐스팅보트 전략이다. 안철수 전 교수가 어쨌든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신당창당 동력 확보 등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전 교수에 대한 지지세가 예상보다 강력한 것으로 나타날 경우 민주당이 취할 수 있는 정치적 카드는 모두 무력화 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난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철수 전 교수가 얼마만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가는 민주당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에 달린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약체 후보군들

새누리당의 경우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이 일찌감치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허준영 후보는 나름대로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기반을 닦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안철수 전 교수를 상대하기에는 다소 약점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그 이유는 첫째, 직전 선거에서 이미 노회찬 진보정의당 후보에게 패배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 허준영 후보가 이명박 정부에서 경찰총장, 코레일 사장 등의 요직을 거쳤기 때문에 안철수 전 교수의 '새 정치' 프레임에 말려 '구태 정치'의 상징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최근 용산개발사업이 실패로 귀결되면서 이 사업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던 허준영 당시 코레일 사장이 불똥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정론관에서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따라서 새누리당 내부에서 다른 후보들에 대한 공천 여론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경원, 홍정욱, 원희룡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들인 데다 나름 당 내에서 소장파적 역할을 해오기도 했기 때문에 안철수 전 교수의 '새 정치' 프레임을 피해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홍정욱 전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이 지역구에서 노회찬 전 의원을 누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카드로 안철수 전 교수를 누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전 의원의 경우 서울시장으로 출마해 박원순 당시 후보에게 패배한 사실이 부각될 수 있다. 당시 선거가 ‘구태 기득권 정치 대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의 구도로 치러졌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원희룡 전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에서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을 한데다 당시 '이상득 라인'으로 분류되기도 해 논란이 될 수 있다. 홍정욱 전 의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괜찮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안철수 전 교수를 상대로 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이전 선거에서 '불출마'를 선택하면서 정치에서 마음이 떠난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다.

친박의 선택?

이준석 전 비대위원의 출마 여부가 논란이 된 것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출마할 경우 안철수 전 교수의 '새 정치' 프레임에 '젊은 정치' 프레임으로 대항할 수 있다. 지지율과는 관계없이 명분이 중요한 '공중전'에서는 괜찮은 구도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사실상 출마를 고사하면서 이러한 구도는 불가능하다.

▲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뉴스1

안대희 전 대법관 카드도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된다. 나름의 '대쪽 이미지'가 안철수 전 교수의 구도를 허물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지도라는 측면에서 워낙 한계가 있어 여전히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거론된 새누리당 후보들에 실질적인 '정치적 파워'가 없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이 이 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나경원, 원희룡, 홍정욱 전 의원들은 지금은 당 내 비주류로 사실상 '버리는 카드'로 쓸 수 있는 인사들이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나 안대희 전 대법관도 '신선함'을 어필할 수 있지만 '챙겨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인사들이다. 당 내 주류인 친박계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사들이 후보로 나섰다가 선거에서 패배해도 큰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속된 말로 '우리 식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교수가 정계에 복귀하는 그림이 새누리당의 단기적 전략의 틀로 보면 나쁘지 않다는 점이 새누리당 주류가 이번 선거를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의 근거가 된다. 어쨌든 여당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반대세력의 숫자는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사이가 나빠 늘 티격태격 분열하면 금상첨화이다. 안철수 전 교수가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새누리당으로서는 일방적인 손해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꽃놀이패'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철수 전 교수가 편승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냉소가 정치세력화 되는 상황이 기성 정치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4월 재보선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선거가 된다. 이렇게 꼬인 실타래가 어떻게 풀릴 수 있을 지 당분간 지켜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