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3일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오는 4월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뉴스1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4월 재보선에서 노원병 출마의사를 전한 가운데 진보정의당과 노회찬 전 의원 측의 비판이 매섭다. 진보정의당은 물론 진보신당 역시 논평에서 ‘안철수의 선택’을 비판하였고, 노회찬 전 의원 자신도 각종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노회찬 전 의원은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올 생각을 해야지 왜 집안 식구들 먹는 걸 뺏으려고 합니까?”라고도 말했고, “동네 빵집으로 어렵게 이룬 상권에 대기업 브랜드가 들어오는 그런 상황처럼 돼 버렸다”라고도 말했다. 노회찬 특유의 ‘찰진 비유’가 돋보이는 표현이다.

물론 안철수 전 원장 측의 행보가 정치도의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노회찬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이 매우 억울한 일이라는 것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전화한통 없었다가, 위로전화를 하자마자 출마선언을 하는 행태 등이 그렇다. 부산 영도에 가지 않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진보정당의 의원 한 석이 민주당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문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신경을 옹호하기는 어렵다.

만약 안철수 전 원장을 위한 정치적 고언을 한다면, ‘새정치’ 뿐만이 아니라 ‘정권교체’를 말했던 그 역시 야권 유권자들에게 정권교체가 실패한 것에 대한 부분적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고, 그래서 일단 귀국하여 그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정치적 비전을 제시한 뒤에 10월 재보선 정도에 도전하는 길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노회찬 전 의원과 진보정의당 측의 안철수 전 원장에 대한 비판이 사리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그 비판은 야권 유권자들의 막연한 직관이나 통념에는 부합된다. 말하자면 그것은 야권연대가 2012년 총/대선이란 구체적인 상황을 넘어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인 규율이며, 노회찬 전 의원이나 안철수 전 원장이나 이 질서 안에 속해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실 노회찬 전 의원의 '찰진 비유' 역시 이 질서들을 전제로 구성된 것이다. '가장' 비유에선 가장과 식구가 하나의 가족이란 것이 전제되고, '동네 상권' 비유에선 대기업과 영세자영업이 하나의 국민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제들이 진보정당의 종사자들에게 확고한 것인지, 또는 확고해야 하는 것인지부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진보정당은 상황에 따라 자유주의 세력과 협력하여 수구세력과 싸울 수도 있지만, 또 상황에 따라서는 자유주의 세력의 보수성과도 투쟁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보정당 운동의 입장에서 2012년 총/대선에서 야권연대에 합류한 전략을 수용하더라도, 2013년 4월 재보선에서도 그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려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또 노회찬 전의원과 진보정의당 측이 “우리는 그 질서에 속해있다”고 천명한다 하더라도,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동시에 말하던 안철수 측이 “나는 그 질서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면 되는 문제라는 지점도 있다.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던 정연정 배재대 교수가 오늘 아침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서 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라 볼 수 있다. (기사 링크) 안철수 측이 야권후보단일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때에도, 진보정의당 측이 그를 비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사실 안철수 전 원장 입장에서 '나는 야권단일화가 절대적인 규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뉴스1

마지막으로 야권연대를 상시적 질서로 인정하고 진보정의당과 안철수 측 모두 이 질서 안에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그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야권후보끼리의 단일화 경선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번 총선의 상황을 봐도 노회찬 전 의원은 민주당 후보와의 경선을 통해 단일후보가 되었다.

비록 그가 억울한 사유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고 하나, 그렇다고 이 지역구의 권리가 온전히 진보정의당에게 있지는 않다. 이 지역구를 진보정의당의 '구역'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오히려 재보선의 취지를 무시하며 유권자의 선택을 제약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안철수 전 원장 입장에서야 “지역민의 열망이 그렇게 뜨겁다면 왜 내 출마에 신경쓰는가?”라고 답하면 그만이다.

진보정의당의 억울한 심경은 이해하나 그것이 단순히 ‘감정의 토로’로 끝나지 않으려면 좀더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 또한 진보정의당은 현재의 논란이 ‘야권연대 안의 진보정당’을 추구하는 자신들의 독특한 위치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 그것은 ‘모순’이라 비판할 정도는 아니지만, 민주당 지지자에게도 외곽 진보정당 지지자에게도 부단히 그 위치선정의 의의를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길임이 틀림없다.

결국 진보정의당이 해야 할 일은 의석 한 석을 잃을 공포에서 나온 안철수에 대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의의에 대한 부단한 성찰, 그리고 그것을 야권유권자들에게 납득시키는 존재증명일 것이다. ‘통합진보당’이란 당명으로 진보신당을 짓밟았던 이들이 무슨 염치로 안철수를 비판하느냐는 홍세화 전 대표의 힐난 역시 그런 존재증명을 통해서야 극복할 수 있다.

▲ 진보신당 홍세화 전 대표의 트윗의 관련 내용 캡처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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