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중앙일보 1면 기사. '박근혜 시대'를 가장 적극적으로 규정한 1면이지만 그 규정은 정부의 '성격'이 아니라 그의 개인사를 반영한다.

‘33년만의 귀환’이란 표현이 그나마 제일 자극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날이 밝았지만 신문들은 지극히 추상적인 언어로 선정(善政)을 요구하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어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박근혜 정부’의 성격이 어떨지에 대해 아무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보수적 유권자의 입장에서 ‘잃어버린 10년 이후’ 중도층을 공략해서 정권을 되찾은 것이 이명박 정부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그 2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어느 정도로 유사할지 다르다면 어느 부분이 다를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중도층의 지지를 얻고 출범했으나 당연히 지지를 받을 거라 생각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서 촛불시위라는 난국을 겪었고 그 후 급격히 보수화 되었다. 드러난 정황은 그 정부가 정적과 국민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려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조도 이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지만 문화나 노동분야 등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대해선 전혀 드러난 바가 없다. 심지어는 박근혜 정부 역시 아직 그에 대한 기조를 정하지 않았고 담당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조가 나올 수 있다는 냉소적인 예측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 오늘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내용 밖에 없다. 보수언론도 박근혜 정부가 어떤 성격을 지닐지에 대한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신문들이 요구하는 바는 하나같이 지금 시대가 ‘박정희 시대’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은 “박정희 시대에 통했던 그런 수단들은 이젠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유효하지도 않다. 이 시기에 필요한 리더십은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합의를 이뤄가는 조정의 리더십, 분야별 참모와 전문가들 지혜를 모으고 야당을 비롯한 국회와 국민 목소리에 귀를 열어두는 소통의 리더십이다”라고 역설했다.

중앙일보 사설 역시 “우리가 눈부신 산업화를 일궈낼 수 있었던 동력은 국가주도의 성장정책을 핵심으로 한 ‘박정희 모델’에 있었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튼튼한 안보의 우산 속에서 국민이 저마다 행복을 추구하는 성장형 복지국가가 새로운 지향점으로 떠올랐다. 이를 실현하는 것이 ‘박정희 모델’에서 화려하게 탈각하는 길이다”라고 주장했다.

전반적으로 보수언론이 '박정희 탈각'을 더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박정희 모델’의 시대적 의미도 긍정하고 그러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선 고언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언론은 독재정권을 옹호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독재정권 하에서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이 위세를 부리게 된 것은 김영삼 정부 이후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이 ‘박정희 시대’와 민주화 이후 시대의 차이를 말하는 것도 위선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충고에서 드러나는 것은 신문들 역시나 장삼이사들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상이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는 웃지 못할 현실이다. 사실 ‘정치인 박근혜’는 다른 많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 정치인이었다.

그런 이가 대통령이 된 상황에서 우리는 정국을 예측하고 무언가를 주문하기보다, 그가 원래 살던 청와대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 첫날 신문 풍경은 이토록 심란하다.

▲ 오늘자 한겨레 1면 기사. 진보언론들은 이런 식으로 현 정부에 원하는 바를 기사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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