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경제부총리로 현오석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 지명된 것에 대한 논란이 많다. 그간 예상됐던 인사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은데다 숱한 경제부처 관련 인사들 중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은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 '박근혜 정부' 3차 주요인선 발표가 17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가운데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 등 11개 부처 장관 내정자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경제부총리 현오석,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김종훈, 통일부 장관 유길재, 농림수산축산부 장관 이동필, 산업통산자원부 장관 윤상직,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 환경부 장관 윤성규, 여성가족부 장관 조윤선, 국토해양부 장관 서승환, 해양수산부장관 윤진숙, 고용노동부 장관 방하남 내정자를 발표했다. ⓒ뉴스1

일각에서는 언론에서 거론되는 인사를 중용하지 않는 박근혜 당선인의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과거 경제기획원과 KDI를 만들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인상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非모피아 시대?

현오석 후보자는 경제기획원 출신이냐 재무부 출신이냐의 구도로 보면 경제기획원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2009년부터 두 차례나 KDI원장을 연임해왔기 때문에 KDI의 연구원들과도 상당 부분 인맥이 통하는 지점이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측근인 유일호 비서실장과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 이만우 의원, 유승민 의원, 이혜훈 의원 등이 KDI 출신이기 때문에 ‘KDI의 전성시대’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오석 후보자가 경제기획원과 KDI 인맥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카드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단순히 KDI 인맥의 부상이라기보다는 ‘非모피아’로 정책적 지향점 구성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 : 非모피아,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

경제기획원, KDI, 한국은행 등 출신 인사들의 특징은 시장원리에 대한 원칙적인 강조와 거시경제에서 환율, 금리 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불개입적 입장을 가진다는 것이다. 현오석 후보자 역시 수차례에 걸쳐 정부의 환율 개입 등의 조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금리에 대해서는 현재 국제경제의 상황 등을 고려해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경향적으로는 정부 주도의 재정확대 정책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측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박근혜 정부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된 현오석 현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DI에 출근하면서 로비에 걸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옆을 지나고 있다. ⓒ뉴스1

이들 세력은 박정희 정권 말기에 소위 ‘안정화 시책’으로 불리는 정책을 제안한 바 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시기 이후부터 정부의 개입과 재정확대정책에 상대적으로 친화적인 재무부 관료(모피아)와 안정화와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을 강조하는 非모피아 인사로 경제 관료들의 인맥이 나뉘었고 이들은 경쟁을 거듭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권을 주고받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재무부 출신 주요 관료들이 실각했고 참여정부 시절 경제기획원 출신 인맥들이 급부상했으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서는 다시 재무부 출신 모피아들이 득세했다. 위의 과정을 볼 때 새 정부에서는 다시 非모피아 인맥이 부상할 것으로 예상하는 관점이 우세했는데, 비슷한 과정을 밟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물론 경제정책을 총괄할 경제부총리의 소양을 출신 인맥에서만 찾는 것은 부당한 진단일 수 있다. 꼭 이러한 인맥 구조를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 근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현오석 후보자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솔로몬저축은행 영업정지 직전 약 2억 원 정도의 예금을 인출했다는 보도를 했다. 당시 정부는 ‘뱅크런(bank run)’ 사태를 우려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노력했어야 할 경제정책 관련 기관장이 오히려 예금을 인출한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는 것이다.

▲ 현오석 후보자 부부의 예금 인출 의혹을 보도한 18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뱅크런이란 비상식적인 규모로 은행 예금의 인출이 가속돼 결과적으로 은행이 도산하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히 예금자들이 은행의 도산으로 자신들의 예금을 찾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예금의 인출 자체가 뱅크런의 또 다른 근거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은행이 도산하더라도 5천만 원까지는 예금보험기금에서 지급할 수 있으나 이상의 금액은 그냥 포기해야 하므로 이런 뱅크런 상황에서는 주로 거액 예금자들이 예금을 인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오석 후보자의 경우도 2억 원이 5천만 원이 되는 사태를 겪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예금을 인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항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액 예금을 인출하는 상황이 다시 뱅크런을 강화한다는 점을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경제부총리로서 신망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점이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후보자는 KDI 원장이기 때문에 KDI와 관련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KDI의 경우 이명박 정권 시절 정부 시책에 대한 경제성 평가 등을 정부에 우호적인 결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KDI가 경인운하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사업의 편익을 늘리기 위해 교통혼잡비, 재항비용 및 하역비용 등을 과도하게 산정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연구결과를 정부에 유리한 것으로 ‘뻥튀기’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현오석 후보자의 입장이 과연 반영되지 않았는지 여부는 중요한 지점이다. 정부에 충성하기 위해 국책연구기관의 위상을 훼손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장관제 하겠다더니

▲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사흘 앞둔 1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내 집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상황이 이렇다면 애초에 박근혜 당선인이 장담한 ‘책임장관제’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법 하다. 책임장관제는 책임총리제의 구상이 변형된 것인데, 책임총리제건 책임장관제건 핵심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여 내각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구상은 필연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된 내각의 인사들을 보면 자기주장이 강한 인사들을 배치했다기 보다는 자기주장이 없거나 있더라도 쉽게 ‘고집’을 부릴 수 없는 인사들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스포츠로 치면 2군 선수들로 팀을 구성한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박근혜 당선인과 청와대의 입장이 중요해진다. 내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는 국정운영 등에 대해 잘 모르고, 정부 정책의 수행을 위해 각 부처의 역할을 조율하고 업무를 배분해야 할 경제부총리는 줏대 없는 그저 충성파로 구성되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정책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고 돌아 다시 청와대의 권한이 커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인수위가 청와대 직제 등을 발표할 때에는 청와대가 불필요하게 내각의 권한에 개입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국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이 ‘대통령 밑으로 일사불란한 정책 집행’으로 귀결되는 것은 물론 상당한 부작용을 동반하겠지만 차라리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모두가 책임을 방기하는 상황이다. 각 부처 장관은 장관대로 총리는 총리대로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말의 성찬만 늘어놓고 정책의 집행책임은 서로 떠넘기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런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박근혜 당선인이 지혜를 짜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