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증시의 상황은 안정적이다. 한국의 경우 북핵 위기의 직접적 당사자이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그 낙폭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12일 코스피는 북핵, 엔저 등의 악재로 1950선을 이탈해 1945.79에 거래를 마쳤는데, 이는 전일대비 5.11포인트가 하락한 것으로 특히 외국인투자자들이 한달여만에 최고 규모의 매수세를 기록한 것에 힘입은 것이다. 이를 통해 소위 ‘북핵 리스크’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일 달러-원 환율의 경우도 전일대비 1.1원 오른 1088.8원으로 마감됐는데 이 역시 북한의 핵실험으로 경제적인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당초의 우려를 불식시킬만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코스피가 북한 핵실험 소식에도 불구하고 소폭 하락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DB대우증권 딜링룸 전광판에 전 거래일(1950.90)보다 5.11포인트(0.26%) 내린 1945.79 포인트를 나타내고 있다. 이날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지만 일부 방산주가 급등하는 모습만 보이고 코스피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 ⓒ뉴스1
북한 핵실험이 우려하던 것만큼 위력을 떨치지 못한 이유로는 첫째, 지난 두 차례의 북한 핵실험이 거시적으로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경험이 학습효과가 된 것이라는 것과 둘째, 북한이 미국과 중국에 핵실험을 통보한 것이니 만큼 이 위기가 ‘관리 가능’한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국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북핵 리스크’를 함께 떠안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일본의 경우 오히려 2% 안팎의 폭으로 증시가 급등했다. 이것의 주요한 이유로는 ‘아베노믹스’로 표현되는 ‘엔저’를 꼽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 일각에서는 ‘엔저가 북핵을 이겼다’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라엘 브레이너드 미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예정이다. 라엘 브레이너드 차관의 발언은 엔저에 대한 미국의 사실상의 용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 발언 때문에 세계 각 국이 자국의 통화를 방어하는 환율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 까지 나온다. 미국이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는지 설명이 필요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미국의 무리수와 환율전쟁

이러한 상황은 물론 ‘엔화의 평가절하로 인해 미 국채의 수요 증가’라는 식의 해석으로 설명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서 국제정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측면이 있다. 동아시아 경제라는 측면에서 북한 핵실험은 충분히 예고된 것이었기에 각 국이 이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들이 이미 검토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면 동아시아 정세와 환율전쟁의 의미에 대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재정확대와 엔화 절하 정책을 용인하는 것은 어렵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실상의 환율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가 불황이므로 거의 모든 주요국가가 재정확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은 이미 QE3를 통해 경기부양의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유로존이다.

유로존의 경우 2008년부터 지속된 위기가 쉽게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엔화 절화라는 악재까지 맞게 돼 더욱 불안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자국의 경제 위기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프란시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상황이 이렇게 되자 총대를 멘 것은 프랑스였다. 지난 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중기적인 유로화 환율 목표 설정’을 언급한 것에 이어 11일 피에르 모스코비치 프랑스 재무장관은 ‘G20회의에서 재무장관들이 환율과 통화절하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유로화 절하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글로벌 환율전쟁의 서막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환율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치인들의 환율 개입 요구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때문에 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들이 일본의 엔화 절하를 규탄하는 입장을 내고 G20재무장관회의 등에서도 일본의 환율 개입에 대한 성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미국이 일본의 재정정책을 용인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엉망진창이 됐다. G7의 공동성명은 특정 국가를 지목하지 않은 채 원론적 수준의 ‘환율을 목표로 통화‧재정정책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담은 정도로 정리됐는데 시장에서는 이것이 미국의 입장과 묶여 일본의 통화정책을 G7이 용인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전략적 고려의 결말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른 바 아베노믹스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만한 발언을 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북한 핵실험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위기에 대한 전략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미국의 전략은 단순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의 정세 개입 능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미국은 한‧미‧일 동맹의 강화를 기본적 입장으로 채택해왔다. 물론 이러한 동맹의 강화는 정치적‧군사적 측면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TPP는 원래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의 다자간무역협정이었는데 2008년 2월 미국이 이 협정에 참여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게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통합의 가장 강력한 수단’ 이라며 소위 신흥국들과 미국을 연결해줄 수 있는 주요한 고리로 생각하고 있음을 밝혔는데, 이러한 움직임에는 이 협정에 한국, 일본, 대만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실려 있다는 점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일본의 경우 TPP보다는 한중일FTA나 ASEAN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인 RCEP등에 더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과거 민주당 정권 역시 이러한 입장이었으며 농‧어촌 주민의 지지를 강하게 받고 있는 자민당 역시 ‘성역 없는 관세철폐를 전제로 한 TPP에 반대한다’는 것을 기본적인 입장으로 내놓고 있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 출처 : 가디언)

그러나 아베 정권이 출범하면서 일본 정부가 TPP에 대한 이러한 기존 입장이 변화할 수도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일본을 TPP에 끌어들이고 한미일 동맹을 굳건히 하며 중국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가 가능한 상황을 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 실험을 이를 위한 좋은 구실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유로존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미국이 일본의 재정정책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본심의 일부를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이런 입장이 동아시아 정세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아베 정권은 미국의 용인을 통해 더욱 공격적인 재정확대 정책을 펼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내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할 것인데 아베 정권이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평화헌법 개정과 실질적 재무장과 같은 우경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결말은 동아시아 정세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재계 인사들을 만나 ‘근로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라’는 발언을 하는 등의 모습을 마냥 좋게만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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