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봄날 햇살은 따사로웠다. 햇살 따사로운 날 지상에서의 소풍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비보를 전해 들은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강연장에 있었다. 독립운동에 관한 강연을 듣기로 한 날이었다. 강사가 한반도 독립운동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연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언니에게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고모부가 돌아가셨대.’

나는 휴대 전화기를 꼭 쥐고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언니와 통화를 했다. 조금 전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고, 입관은 내일이라고 했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골목에서 오늘 마지막 햇살의 끝자락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문자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친척의 장례식장에서 잠깐 보았던 사촌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촌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촌은 아주 긴 세월 동안 부모 병간호를 했다. 고모부는 오랜 세월 아팠다. 고모부가 아프기 전엔 고모도 병을 앓다 돌아가셨다. 사촌은 정시에 출근해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말하진 않았지만,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직장은 아픈 부모를 모시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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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집에 들러 부모를 살피고 일하러 가는 일을 반복해도 항상 변수는 있었다.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많아졌고, 집에 있는 부모에게 사고가 생기기도 했다.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일도 있었고, 퇴원해 집으로 돌아와도 잦은 사고는 계속 생겼다. 주방에서 다치거나 계단에서 넘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사촌은 집으로 뛰어갔다. 사촌의 하루는 부모님을 돌보는 일로 시작해 돌보는 일로 끝났다.

다쳤다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촌의 마음이 짐작된다. 나의 어머니도 작년에 두 번 넘어졌다. 처음 넘어졌을 때 다리 전체가 까맣게 멍이 들고 손이 바닥에 쓸려 고생을 많이 했다. 그때 놀랐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친 데를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화가 났다. 빨리 걷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신발 제대로 신고 앞 잘 보고 걸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어머니는 기어서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잘 걸었는데 거기 경사가 있는 줄 몰랐어.

두 번째 넘어졌을 때는 전신에 멍이 들고 까지고, 손도 봉합해야 할 정도로 다쳤다. 처음 어머니는 자꾸 괜찮다고, 많이 다치지 않은 것 같다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이 다쳤는데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였을 것이다. 두 번째 넘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없었다. 처음 넘어져 많이 다쳤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넘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땐 걱정보다 겁이 덜컥 났다.

일을 보다 말고 황급히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피가 잔뜩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보는 어머니의 눈빛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사촌의 마음도 이랬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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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사촌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단 정도만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기억나는 사촌의 모습은 십 대 후반,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촌에 대한 느낌은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촌은 병든 고모를 돌보았고, 고모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게 된 고모부를 돌보며 살았다. 고모부마저 병들어버렸지만, 사촌은 묵묵히 고모부를 돌보고 간호했다. 사촌은 젊은 시절은 어머니, 아버지를 돌보느라 지나가 버렸다.

너무 아까운 사람이다, 사람 좋기로는 이런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결이 좋은 사람이다. 문상객 중 사촌을 보며 어떻게 울지 않는지, 웃으며 문상객을 맞을 수 있는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긴 세월 이미 많은 눈물을 흘렸고, 울음을 참는 법도 터득했다. 그리고 고통과 슬픔은 시간이 지난 후에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사촌에게 무심하고 소원했다. 전화하고, 만나러 갈 수 있었을 텐데 말로만 걱정하고 전화도 하지 않고 찾아가지도 않았다. 어찌 지낼까 생각만 했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런 사람으로서 사촌의 눈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이제 아버지도 없는 집에 혼자 남게 된 사촌의 먹먹함에 대해 내가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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