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국가대표 축구 선수 황의조는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 혐의로 피의자가 됐다. 하지만 21일 월드컵 지역예선 중국전에서 교체선수로 출장했다. 대표팀 클린스만 감독은 "황의조는 우리 팀의 일원"라고 말했다. “사생활 논란”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사실이 확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뛸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축구협회 역시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언론에 전했다. 영상 유출 피해자가 선임한 이은의 변호사는 축구협회와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하며 국가 대표팀 선수의 자격과 지위에 어긋나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클린스만과 축구협회의 입장을 요약하면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기에 대표팀에서 제외할 근거가 없으니 ‘중립’을 지키겠다는 뜻 같다. 실제로 클린스만 감독의 발언을 원론적인 것이라며 두둔하는 축구 팬이 많다.

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대표팀 황의조가 하프 타임 때 몸을 푼 뒤 벤치로 향하고 있다. (선전=연합뉴스)
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대표팀 황의조가 하프 타임 때 몸을 푼 뒤 벤치로 향하고 있다. (선전=연합뉴스)

클린스만과 축구협회의 태도는 제대로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황의조는 범죄 혐의가 특정돼 수사를 받는 상태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저지르지 않았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다. 대표팀에서 제명하는 등의 적극적 처분을 내릴 상황은 아니지만, 범죄를 저지른 인물을 대표팀에 소집했다고 차후에 밝혀지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한 소극적 처분은 필요했다. 정말로 중립을 지키겠다면 구체적인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정적으로 소집에서 제외하거나 최소한 피해자까지 나온 상황에서 중국전에 출장시켜서는 안 됐다. 혐의 사실이 언론을 뒤덮은 선수를 굳이 후반에 내보내 필드를 밟는 모습을 중계방송에 송출하고 “우리 팀의 일원”이라 공언하는 건 중립이 아니라 사실상의 지지다.

불법촬영 여부는 형사 판단의 대상이 되는 논점이다. 이것을 개인의 사생활로 바꿔치며 관용적 입장을 표한 것 역시 국가를 대표하는 단체가 공적 판단 기준을 왜곡한 것이다. 해당 사안의 피해자는 물론 불법촬영 범죄를 겪은 다른 피해자들, 혹은 그 범죄의 잠재적 위험에 노출된 많은 국민이 대표팀 경기를 맘 편히 응원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혐의점을 가진 피의자는 일단 경기 출장에서 열외 시키는 것이 옳았다. 국민을 위해, 국민에 의해 존재하는 대표팀으로서 명백히 그릇된 판단이다.

더구나 이 사안엔 불법촬영 혐의와 별개로 황의조 측의 피해자에 대한 대응이 걸려 있다. 황의조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대환은 입장문을 내며 피해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는 사안의 논점 및 성격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실이다. 피해자 측 변호인이 비판했듯 법에 저촉될 수 있는 행위일뿐더러 피해자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황의조 측의 이런 행위에 대한 판단까지 유예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이미 피의자 신분이 되었으면서 영상 유출 피해자의 신상을 공공연히 들먹이는 인물이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 적합하냐는 말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를 거둔 축구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를 거둔 축구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황의조 측 대응이 심각한 지점은 성관계 불법촬영과 영상 유출에 대한 여성 피해자의 비대칭적 지위를 호출하고 환기시키는 점이다. 불법촬영 피해자 절대다수가 여성이고 영상 유출을 통해 성적으로 소비되는 대상 절대다수도 여성인 것은 일반적으로 남성에게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대상화의 현실 때문이다. 또한 사회에 정조관념이 남아 있기에 영상 유출을 통해 남성보다 여성이 더 큰 피해를 본다. 피해자의 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공개하는 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의 저급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고, 피해자에게 사회적 생명의 파산에 대한 두려움을 심는 압박이 된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란 말이 나올 수 있다. 불법촬영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측에 의해 불법촬영 범죄를 부르는 사회적 맥락과 그 폐해가 공개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황의조의 중국전 출장과 클린스만 감독의 “내 선수” 발언은 황의조 측의 이러한 행동까지 판단을 유보하고 포괄적으로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명예를 가슴팍에 달고 활동하는 대표팀의 이름으로 말이다. 현재 중국전 이후 황의조가 중앙에 나온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강인의 행동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데, 황의조를 대표팀 동료로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송출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오해의 소지’ 때문이다. 이 오해는 ‘중립’이란 명분으로 사태를 방관하며 사실상 황의조를 품고 있는 축구협회와 클린스만 감독이 자초한 것이다.

황의조는 중국전을 치른 후 전세기를 타고 귀국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혼자서 영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언제 다시 한국에 올지 알 수 없고 당국의 수사 역시 난관에 빠지게 됐다. 당국이 황의조의 중국행을 막지 않은 것에는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유명인이기에 수사에 불응할 우려가 적다는 신뢰가 작용했을 것이다. 대표팀이란 이름에 걸린 신뢰와 명예는 피의자의 편의적 처신을 위해 전용되었고, 국민의 일원으로 수사에 성실히 응할 의무는 회피된 모양새다. 황의조를 중국에 데려가고 나홀로 영국 출국을 막지 않은 축구협회는 이런 사태가 벌어질 계기를 제공하고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 나라의 이름을 걸고 국민들의 후원을 받는 단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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