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이강택 칼럼] 

“정치적으로 공정한지 심의한다고?” 

“더구나 정당들이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 기구에서?”

지난 5월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연수 참가자들에게 한국의 언론상황을 브리핑하던 자리였다. 검찰과 감사원을 동원한 방송통신위원회 장악과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재구성과 콘텐츠 통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한국 언론계의 예측을 전하던 중이었다. 

유독 방심위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은 나름 민주주의가 꽤 성숙한 나라인데 어떻게 그런 시대착오적인 기구가 남아 있는지 의아해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각 방송사나 언론계 통합기구에 자율로 맡겨져 있거나(대다수 유럽국가와 일본), 그게 아니면 적어도 정치적 공정성을 외부심의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미국, 영국 등)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이기에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가뜩이나 영어실력도 부족한데 한국형 리바이어던(Leviathan)을 설명하느라 한참이나 진땀을 흘려야 했다.

9월 26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현판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육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기획조정실장, 박종현 사무총장 직무대행, 황성욱 상임위원, 류희림 위원장, 허연회 위원, 박종훈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센터장(연합뉴스) 
9월 26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현판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육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기획조정실장, 박종현 사무총장 직무대행, 황성욱 상임위원, 류희림 위원장, 허연회 위원, 박종훈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센터장(연합뉴스) 

판옵티콘 짓는 조폭들

그때로부터 6개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당시의 예측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현실이 됐다. 특히 류희림의 등판과 더불어 방심위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과시하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뉴스타파를 인용보도한 방송사들에 엄청난 과징금 폭탄을 던지며 힘자랑을 하는가 하면, ‘가짜뉴스전담센터’라는 해괴한 부서를 설치해 방송 영역을 넘어 사실상 모든 미디어 영역을 감시통제하는 판옵티콘의 감시탑을 세우겠다고 설쳐댄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는 극우인사들을 총망라해 포진시키고… 조자룡 헌 칼 쓰듯 조폭적 행태가 실로 점입가경이다. 대체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한가? 방심위는 어떤 기구이고 어떤 취약점과 독소를 가지고 있기에 윤석열 정권과 보수세력들에게 이처럼 악용되는가?

민간독립기구라는 허상

그 이유는 한마디로 현행 방심위가 ‘양두구육’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독립심의기구라는 우아한 간판 아래서 집권세력의 정치적인 힘을 방송 콘텐츠에 대한 통제력으로 맵시있게 전이시켜 주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정치권력이 불편해 하는 콘텐츠를 청부받아 단죄함으로써 언제든 유사검열기구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우선 위원회 구성부터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위원 추천권이 대통령을 포함 여야 6:3으로 정치세력에 독점되어 있다. KBS 이사회가 7:4, MBC 이사회가 6:3으로 나뉘어 그들에게 전유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정치세력과 근거리의 인사들이 주로 추천되어 숙의 대신 상호 대리전이 진행되게 마련이다. 특히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을 둘러싸고 편향적인 위원들의 진영대결과 ‘정치심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그럼에도 심의의 영역에는 아무런 제한도 없고 이해충돌을 방지할 장치도 없다. 정치세력들의 이해 곧 정치적 공정성이 심의의 중심영역이 되는 건 오히려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여야 정당과 유관단체들이 펼치는 악성민원 홍수가 방송심의 시스템을 정치심의로 내모는 방아쇠로 작용한다. 2022년 방심위에 접수된 민주당 민원이 300여 건, 국민의힘의 민원은 무려 1300여 건에 달했다. 국민의힘 민원 중 230건이 TBS에, 156건이 MBC에 몰렸다. 전형적인 ‘좌표찍기’였다. 반면 일반시민들이 제기한 순수민원들에 대한 심의는 간략히 처리되거나 지연되고 정당 민원을 처리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되는 실정이다.

막상 심의가 시작되면 그 기준이 되는 심의규정의 문제도 작지 않다. 추상적이고 선언적이며 모호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 규정의 태반에 명확성이 거의 없다. 특히 공정성 관련 조항 9조는 진실을 왜곡하지 아니하고 객관적으로 다루어야 하고…(1항),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고 관련 당사자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여야 하고… (2항) 수준의 동어반복과 불명확성으로 일관한다. 따라서 이현령 비현령! 판단의 자의성이 커지고 동일 또는 유사사안들에 대한 판단의 일관성, 형평성 문제가 수시로 제기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일부 보도와 프로그램들에는 ‘봐주기’ 결정이, 다른 프로그램들에게는 ‘편파’ 낙인과 징계가 내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 평결은 제작진들에게 자기검열의 기준이 된다. 오늘의 사후심의 결과는 내일 그것과 유사한 사안을 다루려는 자에게 사전검열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방심위가 얼마나 매력적이겠는가!

유사검열기구 폐지를 기약하며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류희림이 이끄는 방심위와 극우 색채 짙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청부심의가 앞으로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시사보도의 감시 대상이 되어야 할 자들이 외려 ‘검열’의 칼자루를 휘두르도록 허용하는 이 후진성을 어찌할 것인가? 없애야할 것을 제때에 없애고 바꿔야할 것을 과감히 바꾸지 못한 과보가 그렇게 크다.  

오늘의 이 시련과 감연히 그에 맞서는 저항들이 불원간 유사검열을 끝장내고 진정한 표현의 자유가 만개하는 바탕이 되기를 기약해 마지 않는다.

* 위 칼럼은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뉴스레터 'LACY 톡톡'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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