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이강택 칼럼] 

“공영방송 언론인의 삶이 그들이 정한 스케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열흘 전 KBS 최경영 기자가 ‘퇴사’를 선언했다. 2012년 파업투쟁으로 해고되었다가 촛불혁명 후 공영방송 KBS에 복귀했던 그가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KBS 안에서 저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절망을 토로하면서.

그의 ‘퇴사’의 근저에 존재하는 내부 저항의 실종. 아닌 게 아니라 2008년 정연주 사장이 부당하게 쫓겨나던 때와는 너무도 다르다. 지금 현업 종사자들의 침묵은 저들의 언론장악 솜씨가 서툴고 하자투성이기에 오히려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서울 여의도 KBS 사옥

무엇이 ‘저항의 실종’을 초래했는가?

KBS 내부 구성원 상당수는 2018년 이후 회사를 이끌었던 언론민주화운동 세력의 ‘무능과 안일’에 화살을 돌린다고 한다. 디지털화된 환경과 격변한 시장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인사가 폐쇄적이었으며 조직의 운영은 느슨했고, 저널리즘 차원에서도 정권과의 비판적 거리두기에 실패했고 등. 그런 측면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개혁 방기와 부작위 

그러나 보다 큰 틀에서의 문제, 즉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미디어개혁 방기와 부작위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돌이켜보면 ‘촛불정부’는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을 거치며 왜곡된 구조와 누적된 폐단을 혁파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교체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기형적인 방통위 체제의 한계로 인해 권한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종편, 플랫폼 자본, 글로벌 미디어 자본들의 반칙과 시장침탈에 대해 이렇다 할 공적규제를 가하지 않았고, 이미 껍데기만 남아버린 시민참여의 틀을 쇄신하는 등 국민의 미디어 주권을 강화하는 조치나 지원도 거의 없었다.

유럽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수신료제도를 바꾸어 공공미디어의 재원을 안정시키고 강화했건만 그것도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대표적인 공약이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마저 변죽만 요란히 울려댔을 뿐 정치권력이 자신과 거리가 가까운 인사들을 선임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현실적(!) 고려 때문에 끝내 이행하지 않았다. 행정기관에 의한 검열의 소지가 크고 유력정당들의 청부심의로 전락할 우려가 높았던 방송심의제도 역시 별다른 개선 없이 유지되었다. 

그렇게 취약점과 모순이 노정되고 전체 미디어 체제가 난맥상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개입과 개혁이 유예되고 포기된 ‘이미 기울어진’ 미디어 운동장. 그곳에서 공공성은 지속적으로 위축 축소되고 공적 미디어의 효율성과 정당성은 날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언론개혁 진영의 책임은?

‘저항의 실종’에는 물론 언론노조를 비롯 시민단체와 학계 등 언론개혁세력 전반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민주당의 친자본적 성향과 정치권 이기주의, 국민의 힘의 수구적, 반 언론적 본성에 의해 초래될 위험을 우려하고 있었음에도 미디어 개혁의 시급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 정치권을 압박하고 견인할 비젼도 추진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작은 이익들 앞에서 분열을 일삼으며 5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내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우리는 바야흐로 글로벌 미디어자본의 압도적 위세와, 지연되고 좌절된 언론개혁의 무덤 위에서 펼쳐지는 희대의 공영언론 장악극을 목도하고 있다. 검찰권을 동원한 이사진-경영진 교체, 수신료 분리징수와 공적지원금 감축을 통한 재정 옥죄기, 심의라는 미명 하의 정치적 낙인 찍기에 의한 저널리즘 흔들기. 그 전방위적인 세트 플레이는 가히 상당 기간 대중의 공포와 저항의 실종을 불러오기에  충분할 것이다.

내부 종사자들은 어찌 살아갈 것인가

하여, 문제는 최경영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 ‘퇴사’한 최경영은 유튜브 등의 공간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저널리스트로서의 삶을 이어갈 준비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처럼 ‘퇴사’하지 못하는, 개인 브랜드가 없이 현장을 지켜온 대다수 내부 종사자들은 앞으로 어떤 지향과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저항의 실종'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며, 그 치욕스러운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언론운동 진영은 무엇을 할 것인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언론운동은 스스로의 면모를 어떻게 쇄신해야 하는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최경영의 퇴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 위 칼럼은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뉴스레터 'LACY 톡톡'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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