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7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라고 발표했다. 지난 4월 발표보다 0.1%p 낮아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 2년 연속 평균 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진 것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 3.03%에도 못 미친다. 내년 경제 상황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IMF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낮췄고, OECD는 한국의 내년 잠재성장률을 1.7%로 전망했다. 2001년 잠재성장률이 5.4%였던 것을 고려하면 20년 만에 3분의 1토막 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란 3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3.7%를 기록했다. 5개월 만에 3% 후반대로 복귀한 것이다. 통계청은 국제 유가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린 핵심 요인이라고 밝혔다. 농산물과 공공요금 인상도 물가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전기‧가스‧수도요금이 19.1% 올랐고, 택시요금은 20.0%, 시내버스 요금은 8.1%, 서울지하철 요금은 24% 인상됐다. 반면에 임금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하락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3년 상반기 규모 및 업종별 임금인상 현황 분석'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상용근로자 월평균 임금총액 인상률은 2.9%다. 작년 상반기 인상률은 6.1%였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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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IMF가 밝힌 ‘세계부채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8.1%로 5년 새 16%p나 올랐다. IMF가 민간부채(가계‧기업)를 집계하는 26개 나라 가운데 최대 폭이다. 반면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5년 전과 비교해 가계 부채비율이 줄었다. 한국의 2021년 기업부채 비율도 173.6%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지난 17일 국제결재은행(BIS)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민간부채가 500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한계기업은 3000곳을 넘어섰다. 한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낼 수 없는 한계기업은 지난해 3017곳으로 1년 새 8.7% 늘었다. 

한국 경제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으며 곳곳에서 ‘민생’을 살피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신문은 이를 외면하고 ‘감세’와 ‘건전 재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에게 ‘가만있으라’고 주문할 뿐이다. 중앙일보 서경호 논설위원은 칼럼 <윤 대통령이 잘하는 것>에서 “윤석열 정부가 경제 분야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건전재정 원칙을 다시 세운 점”이라며 “당장 성장률 수치 좀 높이자고 재정과 통화를 풀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포퓰리즘은 민생을 어루만지는 내용으로 포장되곤 한다”고 주장했다. ‘민생’을 돌보는 것을 ‘포퓰리즘’으로 왜곡한 것이다. 

‘건전재정’이란 미신에 갇힌 보수신문은 최근 들어 공공요금 인상을 위한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그 선봉에 중앙일보가 있다. 중앙일보는 4일 기사 <명절 고속도 무료의 역습…도공 빚 36조, 불붙는 요금 인상론>에서 “명절 통행료 면제를 폐지하고 통행료를 현실화할 때가 됐다”며 고속도로 이용 요금 인상을 요구했다. 다음 날 사설에서는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 탓에 생긴 47조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줄이려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 지난 정부의 전기 요금 동결을 ‘전기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고물가도 전기요금 인상을 늦추는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혹시라도 한전 구조조정을 핑계로 요금 인상을 미루는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16일 기사 <전기사용량은 늘었는데…위기의 한전, 추가 자구책 만지작>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동반되지 않은 자구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도 6일 사설 <한 번 잘못된 에너지 정책, 온 국민을 긴 고통 속으로>에서 “독일과 일본 등은 2년간 전기료를 2~3배 올렸으나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부작용에 따른 인상이란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전기 요금을 계속 묶어두었다. 전력 생태계 붕괴를 막으려면 추가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한전 사장의 주장을 전했다. 하지만 ‘반쪽 사실’에 불과하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펜데믹 사태 회복과정에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공급이 감소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했다. 하지만 유럽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은 상승하는 전기요금을 조정하고 소비자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국가 재정을 투입했다. 독일은 2022년 주택용 전기요금이 전년에 비해 82.6% 상승했다. 그러자 2022년 7월부터 재생에너지 부담금(EEG-Imlage) 부과를 폐지했으며, 이에 따라 소비자가 체감하는 실질 전기요금 증가율은 24.6%로 낮아졌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천연가스 중단 여파로 가스 대기업인 ‘유니퍼’의 운영난이 심해지자 공적자금 40조원을 투입해 국유화를 단행했다.

매일경제는 2022년 9월 5일 기사 <`에너지 대란` 유럽, 수십조원 지원금 푼다>에서 독일 정부가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총 650억 유로(약 88조 2000억 원) 규모의 종합대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또 “필요 재원의 일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초과 이윤을 낸 에너지 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해 조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스웨덴과 핀란드 정부는 일부 에너지 기업들이 파산의 위기에 내몰리자 에너지 회사에 대해 각각 230억  유로(약 31조 원), 100억 유로(약 13조 원)의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KBS는 2022년 11월 25일 보도 <‘영국 가구 전기료 690만 원’…EU, 에너지 ‘횡재세’ 도입 본격화>에서 올 겨울 높은 에너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국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에너지 기업에 이른바 '횡재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유럽에서 본격화하고 있다”면서 영국과 독일을 필두로 EU 각국이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KBS는 영국 표준가구의 에너지 요금이 연간 약 690만원으로 1년 새 약 서너 배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각 가정이 실제 부담하는 요금은 약 4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영국 정부가 400만 원을 초과하는 전기료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신 재원 마련을 위해 내년 1분기 에너지 기업에 이른바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KBS는 “EU 집행부도 지난달 30일 국민들의 에너지 지출 부담을 낮추기 위해 횡재세 도입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떤가?

한국일보는 25일 “정부가 올해 초 난방비 급등으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은 뒤 취약 계층을 따뜻하게 보호하겠다며 지원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취약 계층 네 가구 중 하나는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취약 계층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전까지 기초‧차상위 계층 중 노인, 장애인 등 일부 가구로 제한됐던 지원 대상을 모든 기초‧차상위 계층으로 넓히고 지원액도 15만~30만 원에서 59만2,000원으로 크게 올리겠다고 밝혔지만 약 50만 세대는 지원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난방비 지원에 실제 쓰인 비용은 6,048억 원이었는데 이 중 국비는 2,767억 원에 불과해 생색은 중앙부처가 내고 부담은 산하기관이 졌다”고 비판했다. 

전체 전력 사용량 중 산업 사용량은 55%, 가정 사용량은 15% 수준이다. 지난해 국감에서 우리나라 전력다소비 상위 10대 대기업들은 일반 기업 대비 싼 전기료 혜택을 받으면서 5년간 4조 2000억 원이 넘는 혜택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력다소비 대기업들의 5년간(2017년~2021년) 평균 전력구입단가는 kWh당 94.44원으로 산업용 전기요금단가 106.65원보다 12.21원 싼 것으로 확인됐으며 다소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94.83원에 전력을 구매했다. 2021년 기준 삼성전자의 전력 사용량은 25.8TWh(테라와트시)로 글로벌 IT 제조사 중 최대 규모이며 서울시 전체 가정용 전력 사용량인 14.6TWh의 1.76배에 달한다. 이를 재생에너지로 전환(RE100)하면 약 70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값싼 전기료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곳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하이닉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최대 이윤을 내는 기업이다. 

중앙일보는 “공기업이 진 빚은 결국 국민 부담”이라며 공공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또한 전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궤변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정부 부채 대비 공기업 부채 비중’은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 반면에 국가 채무 비율은 48% 수준으로 OECD 평균인 125%와 비교해 크게 낮다. 중앙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을 공기업에 떠넘겼기 때문인데, 한국은 공공성이 강한 철도, 상하수도, 전기 등이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서비스 요금을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로 치솟은 에너지 비용을 공기업인 한전이 전적으로 떠안으면서 국민들이 부담할 물가 인상을 완화하고 국가 재정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 재정의 역할이다. 이용섭 전 국회의원·국세청장은 매일경제에 쓴 칼럼 <[매경시평]‘축소 예산'으로 건전재정 가능한가>에서 “현재도 조세부담률과 재정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최하위 수준이고, 노인빈곤율은 가장 높다”면서 조세부담률의 적정화와 예산 규모의 현실화를 통해 재정의 기능을 정상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경향신문 [단도직입]에서 “건전재정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이 위원은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세입이 줄어드는데 정부는 감세로 세수 부족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정부는 감세로 세수가 줄었다는 사실에 사과하고, 일정 부분 감세 정책을 되돌리는 거 말고는 이 난국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가 ‘가짜뉴스’를 잡는다면서 공영방송을 해체하고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 보수신문은 연일 보조를 맞추며 ‘가짜뉴스 척결’을 외치고 있는 지금, ‘가짜뉴스’로 혹세무민하는 언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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