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앞으로 한국에서 추석, 아니 명절은 유명무실해진다. 그렇게 가게 되어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도 아니고 많은 이가 직감하는 이야기다. 뉴스에선 달라진 명절 풍경을 전한다.

젊은 세대는 추석을 지내러 고향에 가는 대신 혼자 지내는 ‘혼추족’이 늘고 있으며 여행 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채널A 뉴스에서 인용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50대 응답자 중 30%가 추석 연휴에 “집에서 쉬겠다”라고 답했다. 명절이면 쏟아지는 친척들 잔소리와 숨 막히는 귀성길을 피하고 싶은 심리도 있다고 한다. 명절에 모이더라도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족, 추석과 설날 중 하나는 건너뛰는 가족들도 있다. 세태는 변해가고 세시풍속은 사라지고 있다. 왜 명절이 유명무실해진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리적 근거가 있다.

지금 전승되는 명절의 모습은 해방 후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다. 추석은 신라 시대부터 이어졌다고 하지만, 일가친척이 멀리 떨어져 살다 모일 수 있게 된 건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부터다. 해방 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태어나 대가족이 재생산되고 수도권 대도시 중심으로 국토가 개발됐다. 자식들이 장성해 유학을 가고 일자리를 찾고 결혼하며 뿔뿔이 흩어지고 연어처럼 돌아오는 밑그림이 그려졌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동대구역이 귀성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동대구역이 귀성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명절은 이들이 부모형제 자식에 친척 사돈까지 대가족 네트워크를 연결 짓는 정례 행사였다. 수십 년 전에는 통신 기기가 지금보다 발달하지 않았고, 한 배에서 나온 사람들이 오랜만에 모여 근원적 유대감을 나누는 당위가 존재했다. 저마다 자식들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와 십수 명의 친척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환담을 나누는 모습은 장관이었고 정겨운 광경이었다. 명절 노동이 여성 가족에게 전가되는 등의 인습도 존재했지만 명절에는 정서적·사회적 순기능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명절은 사라지고 있을까? 단순하다. 연결 지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출산율은 큰 폭으로 저하됐다. 1970년 합계 출산율은 4.53명이었지만 1990년엔 1.57명이었고 2022년엔 0.78명, 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평균 가구원 수도 2.2명에 불과하다. 자식을 많이 낳아봐야 두 명이고 부모자식이 함께 사는 가족 구성원은 3인 가구가 표준적이다. 무자녀 부부, 비혼 가구도 늘어서 1인 가구와 2인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 중 가장 크다.

저 감소의 시간 동안 대가족은 핵가족이 됐고 베이비붐 세대가 모시던 부모들은 묘소에 들어갔다. 오륙십년대 생들은 더 이상 ‘큰 집’으로 귀향하는 가솔의 한 명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자식손자들을 맞아들이는 조부모가 됐다. 명절을 치르는 규모가 줄었고 명절을 구성하는 의례의 원형은 물론 명절을 지내야 한다는 당위도 소실되어 왔다. 저출생 시대에 대가족의 환상을 현현시키려 하는 관성이 명절을 피곤한 사업으로 느끼게 하는 밑바닥 이유다.

'베이비 붐 세대'와 '저출생 세대'의 대구는 단어 이상의 의미를 함축한다. 전자가 부모 품을 떠나 각지에 흩어져 독립된 가정을 꾸렸다면 후자는 결혼을 유예하며 부모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많다. 사회가 꿈틀대고 성장하며 기회가 퍼져있던 시대와 사회가 가라앉고 정체되어 기회가 거덜 난 시대란 뜻이다. 둘은 서로 다른 시절을 살았고 성공에 대한 감각이 차이가 나며 가치관이 어긋난다. 대략 90년대까지는 자식 세대에게 명절이 즐거운 행사였을 수 있다. 아스팔트만 밟고 살다 시골에서 죽이 맞는 친척 형제들과 뛰어놀 수 있으니 말이다.

“나 혼자 쉰다”…‘혼추족’의 오붓한 연휴 (9월 28일 채널A 보도화면 갈무리)
“나 혼자 쉰다”…‘혼추족’의 오붓한 연휴 (9월 28일 채널A 보도화면 갈무리)

00년대에는 저출생과 함께 저성장 시대가 도래했다. 언제부턴가 인터넷에선 명절을 친척과 비교당하는 괴로운 날이나 친척 어르신과 한 판 기싸움을 벌여야 하는 결전의 날로 묘사하는 밈이 떠돌기 시작했다. 대략 그 시기도 2010년대 전후, 청년 실업이 만성화된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배다른 세대가 일가친척이라는 느슨하지만 잘라내기 힘든 그물로 엮여 일정한 주기로 회동한다. 서로의 처지를 찔러보며 확인하고 싶고, 덕담을 가장한 ‘오지랖 배틀’이 살얼음판처럼 펼쳐지는데…

명절의 가족 의례적 기능이 지금에 비해서도 대폭 축소되는 데는 한 세대가량, 25년 정도가 걸리지 않을까.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에서 상당수 사라진 후다. 그보다 더 시간이 흘러 저출생 시대(1983년~) 이전의 세대가 사라진 후에는 명절은 그 얼개조차 유지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출산율이 한 명도 되지 않는다는 건 일 년에 두 번이라도 자신을 찾아올 형제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명절의 소멸'이란 테마에는 세시풍속을 넘어 사회의 재생산, 공동체의 고립과 파편화라는 경고가 드리워 있다. 그리고 아직 이 사회엔 대가족 시대의 기억과 명절의 추억을 간직한 채 고립된 삶을 사는 노인 세대가 남아있다. 한편으로, 친족을 만나는 게 괴로워 ‘혼추’를 택한다는 젊은 세대에게 혼자 보내는 연휴의 뒷맛은 과연 홀가분하기만 할까. 일 년 모두가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은 어떤 이들에겐 일 년 중 가장 쓸쓸한 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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