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다. 일주일 남짓으로도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하는 사람도 있지만, 통상 이런 방식의 단식은 20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점에서 예상된 일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수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있었으나 ‘상왕’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 없는 얘기였다. 어쨌든 개인 이재명의 입장에선 건강 회복이 우선이다. 여의도 정치의 입장에선 이제 셈을 해봐야 될 때다.

더불어민주당은 주말 비상 의원총회를 통해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발의 등을 결의했다. 단식의 마무리는 이미 상수였을 것이다. 한덕수 총리의 역할과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왜 이 타이밍이냐라고 묻는다면 이재명 대표의 단식을 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단식 이후 국면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당적으로 정부 여당과 강하게 각을 세우는 방식의 대응이 불가피한 것이다. 여기에 대표가 단식을 하는데 당은 무엇을 하느냐는 일부 지지층의 요구를 반영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단식 중 건강 악화로 18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같은 날 타병원 이송을 위해 응급차에 탑승하고 있다.(연합뉴스) 
단식 중 건강 악화로 18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같은 날 타병원 이송을 위해 응급차에 탑승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러한 와중에 검찰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제 체포동의안 표결이 눈앞에 다가왔다. 단식 이슈가 없었다면 이번에는 가결도 전망할 수 있었다. 방탄 논란을 의식한 이른바 비명계의 여론이 심상찮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가 자리에 몸져 누워있다면, 당 소속 의원들이 찬성 표결에 나서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민주당은 이전에 의원총회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를 결의하면서 ’정당한 영장 청구에 한하여’란 단서를 달았다. 지금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영장 청구가 정당하다고 말하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은 없거나 있어도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체포동의안이 가결 처리되는 사실상의 유일한 가능성은 이재명 대표 스스로가 찬성 표결을 직접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단식에 돌입하기 전 “이게 구속 사안이라고 보느냐”라고 했다. 그간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이재명 대표 측은 직접 찬성 표결을 요청하는 방식으로의 대응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이번에도 부결이 우세하다. 지지층이야 만족하겠지만 총선에 유리하게 작용할 일일까?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정권이 효과적으로 중도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면 이번 국면을 오히려 역이용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야당 대표가 장기간 단식을 감행하는 상황이라면 얼굴이라도 한 번 비추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보수언론도 칼럼과 사설 등을 통해 여당 대표의 행동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단식 중단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내는 게 최대치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비정함일까? 그렇다기 보다는 용산과의 역학관계가 핵심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누가 (단식 중단을) 막았느냐. 아니면 누가 (단식을) 하라고 했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여당의 일부 강경파들이나 할 법한 얘기다. 이러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앞장서서 이런 식으로 대응했다는 얘기는 과거에 들어본 일이 없다. 대통령실의 대응은 대통령의 대응이나 다름이 없다. ‘스윙보터’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은 지도자답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미국 뉴욕으로 출국하기 위해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미국 뉴욕으로 출국하기 위해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통령실이 깃발 들고 앞장서는 희한한 풍경은 처음이 아니다. 대통령실은 감사원의 전 정권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분식회계’ 운운했는데, 이런 비유는 대통령의 실제 인식과 일치한다는 게 언론의 평가다. 감사원의 중간 발표를 보면 부동산 관련 대목의 경우 직권남용의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소득과 고용에 대한 부분은 의도를 둘러싼 법적다툼이 불가피해 아직 사안의 성격을 쉽게 규정할 때는 아닌 걸로 보인다. 또, 대통령실은 뉴스타파의 김만배 씨 발언 보도에 대해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사안을 대선을 겨냥한 공작으로 규정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 지도자가 내놓을 수 있는 메시지는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기대한다는 것 정도일 텐데,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실상 평론을 하고 있다. 이게 대통령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인 것 같지도 않다. 한덕수 총리는 일전에 국회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수사 대상을 대통령이 만나는 것은 ‘시그널’이 될 수 있어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답을 한 바도 있다. 그럼 사사건건 대통령실이 앞장서서 스피커를 키우는 일은 어떤 ‘시그널’인가?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미 검찰로부터 사건의 내밀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어 남들은 모르는 내용을 안다는 과시를 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대통령이 평론가인 것인가?

대통령실이 이러니 여당 대표가 움직일 공간이 생길 리 만무하다. 애초에 ‘윤심 전당대회’로 뽑힌 인물 아닌가. 그러니 판사 출신이 ‘사형’과 ‘극언’을 말하고 ‘개념 연예인’ 얘기나 하고 그러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아마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거다. 알아도 상관 없다는 거다. 이렇게 해도 어차피 ‘이재명의 민주당’은 찍지 못할 거라는 배짱이다.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하는데, 목표가 분명할 때에 전략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기보다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속류적 정치 철학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힘’은 ‘명분’과 충돌한다. 명분은 거짓이고 오로지 힘, 돈, 조직과 수싸움이 본질이라는 정치관이다. 그러한 정치관을 공유하는 양당은 서로 오늘도 내일도 허망한 싸움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것이다. 대놓고 이러는 정치는 한국에선 처음 봤다. 다른 나라에선 다 끝이 좋지 않았다. 여기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순수한 사람은 아니다. 다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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