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스우파>에 여자들의 질투와 욕심이 있었다면 <스맨파>에는 의리나 자존심이 있다.

작년 엠넷 <스트릿 맨 파이터> 제작 발표회에서 권영찬 CP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발언 당시에도 많은 지탄을 받았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즌2가 시작해 3회가 방영된 지금 돌이켜 보면 부적절한 것을 넘어 현실을 호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우파> 시즌2는 확실히 <스맨파>보다 표독하고 선정적이다. 여자들의 영역싸움을 처음 선보인 시즌1보다도 그렇다는 인상이 든다. 그건 출연자들 탓일까? 아니면 여자들의 천성인 걸까? 내가 지켜본 한에서 말하면, 제작진이 남성 시즌과 여성 시즌을 그런 식으로 구분해 브랜딩하고 싶어 한 것이다.

이번 시즌 방송분량 배분과 경연 규칙, 편집 노선을 보자. 메인 예고편부터 약자 배틀이 진행된 1, 2화에 이르기까지 일부 출연자의 사적 은원 관계를 확대하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며 정작 훌륭한 춤을 보여준 배틀 무대는 대부분 유튜브 풀캠으로 풀렸다. 심지어 이 풀캠에도 들어가지 않은 무대들이 있다. 계급 미션에선 메인 댄서가 정해진 이후 뮤비 촬영장에서 갑자기 자리 구성을 바꿀 수 있다는 룰을 삽입했는데, 이건 같은 계급 댄서들 사이에 혼란과 반목의 불씨를 심는 것과 같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지난 3화에선 그로 인한 날 선 대립이 메인 스토리로 송출됐다. 제작진은 편집의 요술봉을 휘둘러 갈등을 빚어내고 은닉했다. 부리더 계급에선 메인댄서 라트리스가 댄스 브레이킹을 솔로 파트로 꾸미려는 것이 독단과 과욕처럼 그려졌지만, 미들 계급에선 모모와 유메리가 대열 맨 뒤에 붙박여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상황을 메인댄서에게 항의한 것이 불화를 일으키는 행동처럼 비치는 비일관적 편집이 있었다. 결과물을 보면 부리더 계급은 분량이 비교적 고르게 분배되었지만 미들 계급은 메인댄서 왁씨와 윤지 말고는 대부분의 댄서가 원샷 한 번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저런 내러티브로 편집을 한 것이다.

<스우파> 시즌2엔 시리즈 최초로 글로벌 팀이 참가했다. 서구 댄스팀 잼 리퍼블릭과 일본 팀 츠바킬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저 “질투와 욕심”에 찬 여성 드라마의 메인 배역으로 글로벌 팀이 캐스팅된 것 같다. 욕심을 부리는 것도 외국인이고 불평을 일삼는 것도 외국인이다. 어쨌든 상황을 망치는 건 외국인 댄서다. 네 계급 중 세 계급에서 외국인 댄서가 갈등의 중심부에 있었고, 한국인 메인 댄서가 맡은 리더 계급만이 원만하게 진행되었다는 방송 자막이 붙었다. 각 계급에 들어간 외국인 댄서들은 외래한 타자이자 소수자로서 갈등을 빚는 원인 분자처럼 보인다.

심지어 제작진은 루키 계급에선 메인댄서 츠바킬 레나의 표정을 역재생하여 갑작스레 굳어지는 표정을 연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악마의 편집’ 같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단계도 훌쩍 넘었다. 편집 권력을 이용해 출연자의 가상의 행동을 창조해 낸 또 다른 ‘조작’이다. 이런 의혹이 버젓이 제기되고 한순간 술렁임을 부른 후 넘어가게 되는 상황 자체가 이 방송국의 윤리적 현주소를 알려 준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잼 리퍼블릭의 리더 커스틴과 츠바킬의 출연분을 비교해 보면 이 방송에서 ‘글로벌’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커스틴은 세계적인 댄스팀 로열패밀리에서도 우뚝한 댄서였다고 소개된다. 일본은 한국보다 댄스 신이 앞서 있어 한국 댄서들이 춤을 배우러 갔었다고 소개된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진 후에는 한국 댄서들이 그들을 누르고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결말이 상영된다. 케이팝과 스포츠계에서 볼 수 있는 '월드 클래스' 국가대표 서사의 댄스계 버전이다(울플러 미니가 츠바킬 리더 아카넨과 맞붙어 대놓고 ‘한일전’이라고 타이틀이 붙은 배틀은 무승부 판정에 이어 미니가 승리했는데, 많은 시청자는 물론 방송 리뷰를 하는 댄서들도 심사의 타당함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잼 리퍼블릭은 1화부터 분량을 충분히 받고 있고 해외 시청자를 끌어오는 메리트를 가지고 있지만, 츠바킬은 약자 배틀에서 4번의 승리 중 패배한 아카넨의 배틀 하나만 방송을 탔고 비중이 훨씬 적게 배정됐다. 이 흐름대로 라면 잼 리퍼블릭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한국댄서들이 넘어서야 하는 ‘벽’처럼 보여질 것이고, 츠바킬은 위세와 달리 초장에 짐을 싸고 후퇴하는 ‘외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계급 미션에서 글로벌 댄서들은 제작진이 경연에 추가한 룰로 심어 놓은 갈등 유발 장치로 계급 내부에서 일어난 갈등 자체가 그 자신에게 전가되는 역할을 맡았다. 이건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문제가 외부의 타자에게 전치되며 문제를 부른 원인으로 지목되는 국가주의 작동 방식의 축소판이다. 시리즈 최초로 글로벌 단위로 치러지는 시즌에 국가 내부의 가장 깊숙한 배타성과 폐쇄성이 어른거리고 있다. <스우파> 시즌2는 방송 외연을 해외로 확장하고 있다기보다, 해외 출연진과 조회 수를 끌고 와서 국내 시장의 수요를 확보하려는 ‘국내용’ 방송에 가까워 보인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해외 시청자들은 이런 방식의 ‘글로벌’ 방송의 기만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계급 미션에서 라트리스와 국내 댄서가 빚은 갈등에 얽힌 인종차별적 성격을 비판하는 댓글이 줄지었고, 라트리스와 모모가 중국 글로벌 댄스 방송에 출연했을 때와 비교해 훨씬 푸대접받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팀들, 예컨대 츠바킬은 섭외에 응할 때 경연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고 얘기를 들었을까? 해외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이 한국 방송과의 콜라보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그것이 엠넷과 한국에 대한 평판으로 누적되고 퍼진다면 그들이 다음번에도 콜라보 소식을 환영할까?

글로벌 팀은 이번 시즌이 시청률만큼은 호조를 이어가는 데 공헌을 한 주역이다. 멀리서 섭외를 믿고 낯선 환경에 기꺼이 넘어온 그들에게 보여야 할 최소한의 존중이 무엇인지, 나아가 언제까지 출연자들의 대결을 부추기고 인격을 왜곡하는 연출로 시청률을 벌어먹을 수 있을지 사고의 중추를 도려내듯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우파> 시즌2는 모든 기획의 반응이 갈수록 저조하고 대부분의 방송 소재를 탕진한 현실의 엠넷이 오래도록 다시 내기 힘든 마지막 성공작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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