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김은경 혁신위의 대의원제 관련 제안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이 깊다고 한다. 수용해도 문제, 거부해도 문제란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혁신위에 전권을 실어준다고 한 바도 있어 다루기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매듭을 지으려면 못 지을 것도 없다. 다들 관심이 다른 데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 한다.

김은경 혁신위가 활동을 마무리 하면서 지난주 제안한 내용은 제도에 관한 것으로 좁혀서 봤을 때는 합리성이 없는 안이라고 할 수 없다. 대다수 언론들은 ‘대의원제 폐지’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는데, 여기에는 이재명 대표의 지지자들인 이른바 ‘개딸’들이 요구한 바를 수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혁신위가 ‘대의원제 폐지’를 제안한 바는 없다. 전당대회를 권리당원 직선에 가까운 형태로 치르되 국민여론조사를 반영하라는 것과 대의원 선출 역시 권리당원이 직접 하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대의원은 그대로 존재하므로 ‘대의원제’가 ‘폐지’된 것은 아니다.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혁신기구 1차 회의에 이재명 대표와 김은경 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혁신기구 1차 회의에 이재명 대표와 김은경 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실 일정 규모 이상 되는 조직에서 대의원제와 같은 체계가 없을 수는 없다. “대의원제 폐지”라는 요구가 비현실적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 대의원제를 폐지할 거냐 말 거냐가 아니라 제도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설계하느냐가 핵심이다. 양당은 대선 후보 경선이 일반화된 이후 당의 대중정당적 성격을 강화해왔다. 그러한 방향으로 왔다면 의사결정체계에 있어서도 조직의 형태에 맞는 방식을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 가령 지도부 선출은 당원 직선 혹은 대의원 간선을 기본으로 하고 그 맥락에 맞게 이런저런 변형을 주는 형태가 적합하다. 대의원 선출도 대다수를 당연직과 지역 당협 추천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당원 직선을 기본으로 놓고 변형을 주는 게 합리성이 있는 제도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기존 방식은 권리당원, 대의원, 여론조사, 일반당원의 의사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적용돼 합리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하나의 국가에서 정부 수반을 국민투표 50%, 국회의원 투표 40%, 외국인 포함 여론조사 10%로 결정한다고 하면 어떻겠나?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것은 제도적 합리성이 결여된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 수반이 대통령인 대통령제라면 국민이 직선으로 선출하고, 내각제라면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총리를 결정하는 방식이 일반화돼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혁신위의 제안이 당원 수가 적은 지역에 소홀하거나 노동, 청년, 여성 등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그건 지역에 따라 대의원 정수를 조정하거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있는 것과 같이 부문별 혹은 직능별 할당을 따로 배정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제도는 이렇게 제도적 합리성에 포인트를 맞춰서 논의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결론이 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논의가 그렇게 진행될 조건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거다. 혁신위가 활동을 마무리 하는 판국에 일반 국민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대의원제 얘기나 꺼낸 저의가 무엇이냐는 식의 의심만 커진 상태다. 이것은 결국 혁신위가 할 일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 대다수 사람들이 혁신위에 기대했던 것은 뭘까? 대장동 백현동 등 사건과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 거래 논란 등으로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민주당에 뭔가 ‘해답’을 주는 게 아니겠는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까지 민주당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정권을 잃었는지, 이 잘못을 고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렇게 해서 어떻게 정권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혁신위가 정치적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 졌어야 했다.

가령 미래통합당 시절의 김종인 비대위를 떠올려보라. 물론 비대위와 혁신위는 다른 성격의 조직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정치 캠페인을 했는지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다. 지금 와서 보면 허망한 것이지만, 어쨌든 당시 김종인 비대위는 당이 변화해야 할 방향을 중도화로 명확히 하고 거기에 맞는 이슈파이팅을 펼치면서 정치적 맥락을 형성했다. 광주에서의 ’무릎 사과’나 정강정책 등에 5.18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이나 기본소득 등을 넣으려 한 게 대표적이다. 먼저 이렇게 맥락을 형성하니 이후에는 무엇을 추진하더라도 ‘중도화’의 맥락에서 해석되고 수용된다. 오늘날에는 ‘윤핵관’이라 불리는 일부 의원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김종인 위원장이 짜증과 호통으로 진압(?)했다.

김은경 혁신위가 마찬가지 방식으로 큰 그림을 내놓고 거기에 필요한 과제를 제시하면서, 여러 과제 중 하나로 ‘좋은 정당 되기’라는 차원에서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면 이런 방식으로 수용되지는 않았을 거다. 비전이라는 차원에서 정치적 맥락을 형성하는 일을 소홀히 하니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가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비춰지는 상황에 스스로 걸어들어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 과정에 ‘여명 비례 투표’와 같은 불필요한 논란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튼 혁신위라는 칼을 빌려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한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이제는 혁신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기왕 혁신위의 제안을 놓고 옥신각신 할 거면 민주당이 지금까지 뭘 잘못했는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걸 위해 지금 필요한 건 뭔지에 대해 다 열어 놓고 논의해보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국회가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이미 방침이 서있어야 한다. 회기를 쪼개 휴회기를 만들어 은근슬쩍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방안은 상책이 아니다. 체포동의안 가결 요청과 거취 표명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자기 손으로 가죽을 벗기는 각오가 있지 않으면 혁신은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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