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대통령의 수능 관련 언급을 둘러싼 상황은 아무리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18일과 19일 언론 보도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엄중 경고까지 하였다는데, 뭐가 어떻게 잘못됐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의 경험 부족과 고집에 의한 좌충우돌이 불필요한 갈등을 낳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대통령의 발언 진의에 대한 대통령실의 해명은 결국 ‘킬러문항’을 문제삼은 거라는 얘기다. 이건 비교적 분명한 것 같다. 문제는 대통령이 ‘킬러문항’이 문제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이 없어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대통령실은 ‘킬러문항’이 사교육 비용을 증가시키는 주원인이라는 문제의식을 대통령이 표현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조치를 지시했으나 6월 모의고사에 이게 반영되지 않아 담당 국장 등을 인사조치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킬러문항’을 없애면 사교육 비용이 감소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몇십 년간 입시제도와 관련한 논쟁을 해온 우리 사회는 직관적으로 이런 조치는 사교육 풍선 효과로 이어질 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통령은 교육부 관료와 사교육 분야의 유착을 의미하는 ‘이권카르텔’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고,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담당자 경질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 “강력한 이권카르텔의 증거로 경질인사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만일 수능 출제 경향을 둘러싸고 관료와 사교육계 사이에 뒷돈이 오갔고 그 결과물이 ‘킬러문항’이라는 등의 구체적 비위 혐의가 있다면 대대적 수사를 펼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란 분위기다.

‘킬러문항’을 둘러싼 논란에서 ‘이권카르텔’을 연상하는 것은 특수부 검사 출신 외에는 쉽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과연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른바 ‘킬러문항’은 비문학 분야 지문 등을 소재로 한 문제들을 일컫는다. 애초 취지는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점에 걸맞게 사전지식이 없는 지문을 소재로 해서도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자는 것이었을 거다. 대통령은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배제하라”고 했다지만, 어떤 문제를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 또한 교과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 점에서 ‘킬러문항’을 단순히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로만 여기는 것은 예비고사-본고사 시절의 경험 또는 사법시험 세계관의 한계가 아닌지 의심된다.

다만 입시제도와 맞물려 암기식 시험을 지양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수능의 애초 취지는 이미 퇴색된 지 오래이고 ‘킬러문항’은 단지 변별력과 연관된 ‘초고난도 문제’로만 여겨져온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시험의 형태를 어떻게 하든 입시제도 전반과 이를 둘러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다. 만일 대통령이 그러한 상당한 폭의 제도적 개선을 교육개혁의 핵심 방향으로 잡고 의도적으로 수능 관련 발언을 한 거라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반응은 또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대통령 발언 다음날 김은혜 홍보수석이 직접 ‘마사지’에 나선 걸 보면 그렇다.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게 아니다”라면서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라는 대목을 추가한 것은 ‘물수능이냐 불수능이냐’ 등 입시전략 논란으로 흔들릴 학부모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학교 교육을 보충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것은 선택의 자유로서 정부가 막을 수 없다”는 대목은 학원장 등 사교육계 반발 여론을 감안한 걸로 보인다. 결국 총선 앞두고 부담되는 대목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겠다는 방어적 태도다. 입시제도 전반에 손댈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 애초에 대통령은 부담이 될 말을 왜 꺼낸 것인가?

오히려 대통령이 ‘이권카르텔’이라는 용어를 전 정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을 싸잡아 비난하는 용도로 써왔고, 인사조치와 감사 대상인 주체들이 전 정권에서 역할을 맡았거나 임명이 됐다는 점에서 ‘전 정권 인사 찍어내기’의 연장선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은 지난 두 차례 보수정권을 직접 수사한 검사 출신으로 직권남용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만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냥 밀어내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하기 위해 일부러 떡을 마련해 온 게 아니냐는 거다.

그러나 그런 의도라고 가정하더라도 하필이면 폭발력이 강한 수능이 소재가 된 이유는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장삼이사들은 ‘대통령 주변에 6월 모의고사 때문에 좌절한 학부모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는 지경이다. 대통령실은 이미 연초에 지시한 사항이 관철되지 않은 것뿐이라고 설명하지만, 그걸 누가 확인해줄 수 있겠는가?

물론 단순한 대통령의 말실수가 걸러지지 않고 공론장에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유튜브 방송에 나가 고등학교를 분야별로 나눠야 한다며 기술고, 예술고, 과학고 등을 예로 들어 ‘특목고란 개념을 모르느냐’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일 수 있다.

그런 거라면 대통령실이 ‘여러 지시를 하다보니 진의가 잘못 전달됐고, 입시제도를 포함한 교육개혁 전반은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장기적으로 접근할 예정이며, 사교육 부담 경감 방안은 입시제도와는 관계없이 제출될 예정’이라고 해명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미 ‘바이든-날리면’ 사태 때 봤듯 윤석열 정권은 절대 그런 해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말에 현실을 맞추기 위해 참모들과 여당이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쓰는 진풍경이 반복적으로 연출된다.

‘대통령은 틀리지 않는다’는 식의 대응에 ‘지도자는 무오류’라는 북한식 접근이 연상된다는 사람도 있다. 교육개혁은 ‘킬러문항’으로, 노동개혁은 ‘건폭’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개혁의 실내용이 없는 상태로 유권자가 혹할 만한 키워드만 던진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 역시 있다. 독재와 포퓰리즘의 결합은 미국의 트럼프 시대에서 보듯 전세계적 극우포퓰리즘의 경향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즐겨 언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애초에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그런 차원이 아니라 반공주의와 시장지상주의의 고전적 결합에 지나지 않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는 거의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수능 발언 논란은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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