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아무리 인기인이 출연하고 또 장안의 화제가 되는 소재에 대해 다룬다 해도, 프로그램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린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흥미를 붙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이에 많은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지 못한 채 사라지고, 또 인기를 얻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들이 있다.

교양 프로그램(이하 ‘교양’)의 경우 상대적으로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는 점, 프로그램 폐지 시 공영성 후퇴에 대한 비판이 있는 데다 대안으로 내세울 만한 프로그램 개발이 어렵다는 점 등으로 인해 장수하는 비율이 꽤 높다. 반면, 예능 프로그램(이하 ‘예능’)의 경우는 장수 프로그램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친근함과 편안함이 자칫 진부하게 다가올 수 있다. 때문에 큰 틀 안에서 기존 흐름을 유지함과 동시에,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또 트렌드에도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장수 프로그램이 되지 못하고 폐지되는 경우가 많다.

장수 프로그램의 미래가 항상 보장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갈수록 인기를 얻게 되는 사례가 있고, 큰 화제가 되다가 주춤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

장수 프로그램을 판가름하는 기준을 보통 10년 이상 방송 여부로 잡는다. 하지만 그럴 경우 교양은 장수 프로그램으로 언급될 사례가 많으나, 예능에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나 가요 프로그램 등을 제외하면 언급될 사례가 많지 않다. 지금은 대세로 자리 잡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나 관찰예능의 역사도, 적어도 한국에서는 오래되지 않았다. 국내 첫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꼽히는 MBC <무한도전>이 2006년, 첫 관찰예능 MBC <아빠! 어디가?>가 2013년에 방송을 시작했다.

MBC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 SBS 〈런닝맨〉 포스터
MBC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 SBS 〈런닝맨〉 포스터

앞서 밝힌 것처럼 예능 프로그램은 변화와 트렌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폐지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급변하는 방송 환경 속 예능에 한해서는 장수 프로그램의 기준이 10년보다는 조금 낮춰질 필요가 있다. 하나의 기준으로 300주(약 7~8년) 이상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을 장수 프로그램이라 칭할 수 있을 듯하다. 사실상 300주 이상 방송된 예능의 사례조차 별로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10년보다는 많은 사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정보 및 가요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2023년 6월 현재 300주 이상 방송돼 온 예능에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라디오스타> <나 혼자 산다>, SBS <런닝맨> <미운 우리 새끼>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수 예능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 시청률이 꾸준하다.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과거에는 보통 10%대 내외, 최근에는 3~8%대의 비교적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개편 후보에서 벗어나 있는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다.

둘째, 큰 틀에서 아주 많이 변화하지는 않는 포맷을 바탕으로, 모험이나 지나치게 새로운 시도 없이 꾸준한 방송을 유지한다.

셋째, 시청자들이 눈치채기 어려운 부분인데 제작진 간 팀워크가 훌륭한 경우가 많다. 제작진들끼리 호흡을 잘 맞추는 것이야말로 장수 프로그램의 전제가 된다.

때문에 장수 예능은 다음 효과를 갖는다.

첫째, 방송사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물론 이는 장수 ‘예능’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특히 방송사의 ‘간판’ 예능은 방송사의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둘째, 사회 문화의 거울로 '시대상'을 반영한다. 방송역사의 전체적 맥락 하에서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봤을 때는 트렌드를 형성하고 하나의 문화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트렌드에 민감한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더욱 그렇다. 가령 지난 10년여 간 예능은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하는 방송)’, ‘집방(집에 있는 방송)’과 같은 흐름을 주도하는가 하면, ‘힐링’, ‘공감’ 등을 사회의 화두로 삼기도 했다.

셋째, 시청자 입장에서 봤을 땐 오래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친구 같고 이웃같이 아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느낌을 전해준다.

세 번째 효과와의 연장선상에서 네 번째 효과가 논의될 수 있다. 장수 예능은 특정 요일이나 시간대에 시청자들로 하여금 프로그램에 대한 즐거운 기대를 갖게 한다. 방송 내용에 더욱 집중하게 할 뿐 아니라, 내용 전달에 있어서도 비교적 쉽게 신뢰성을 구축할 수 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미운 우리 새끼〉 로고 이미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미운 우리 새끼〉 로고 이미지

장수 예능이 될 수 있는 요건은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을 받기 위해 필수적이다. 2000년 10월 22일 시작돼 2014년 6월 22일 종영까지 14년 간 방송됐던, SBS <도전 1000곡>의 경우 아이돌부터 원로가수, 힙합가수부터 트로트가수까지 다양한 출연자가 출연해 연령과 장르를 넘나드는 노래들을 부름으로써 세대 간 소통의 장이 됐다. 그동안 방송에서 빈번하게 다뤄왔던 고부관계가 아닌, 장서관계를 내세워 중장년 시청자층의 큰 지지를 받았던 SBS <자기야 – 백년손님>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둘째, 큰 틀 안에서 기존 흐름을 유지함과 동시에, 급변하는 방송 환경과 사회 트렌드에 발맞춰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시청자들의 기호를 반영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프로그램 기획의도를 잃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픈 포맷이 예능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대표적으로 MBC <무한도전>은 포맷이 없는 것을 포맷으로 삼았고, SBS <런닝맨> 역시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큰 포맷 하에서 다양한 게임을 펼쳐 매회 시청자들에게 긴장과 박진감을 선사해왔다.

신선한 변화가 기존에 큰 인기를 얻지 못한 프로그램을 장수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거나, 반대로 끊임없이 변화하지 못하는 장수 프로그램을 폐지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런닝맨>은 2010년 7월 11일 첫 방송 이후 한동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국민 MC’ 유재석의 자존심에도 흠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이름표 떼기 레이스 등 긴장감 넘치는 포맷이 자리 잡으면서, 프로그램도 갈수록 인기를 얻게 됐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런닝맨>은 단순히 장수 예능을 넘어 한류 예능을 이끄는 프로그램이 됐다. 프로그램만 상전벽해를 경험한 것이 아니다. 첫 방송 당시만 해도 조연급 배우에 불과했던 이광수는 <런닝맨>을 디딤돌 삼아 한류스타로 우뚝 섰다. 송지효, 개리 등도 방송 초반과는 사뭇 다르게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셋째, 틀에 박힌 정보나 태도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관성적으로 제작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이 오래 방송되다 보면, 진부함과 매너리즘의 한계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 트렌드나 콘셉트도 식상하게 하는 요소다. 예측 가능한 상황이 반복되면 프로그램의 매력이 반감된다. 그래서 이전의 인기를 읽거나, 심한 경우 장수 프로그램임에도 폐지되는 일이 발생한다.

장수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프로그램은 아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장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제작진은 현재 인기에 안주하지 말고 프로그램 본연의 기획의도를 충분히 살리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한다. 변화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장수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기존의 틀을 바꾸는 것이 제작진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의 정보에 대한 욕구나 일상적 이야기에 대한 소재 선택 역시 계속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제작진이 기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욕구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심층적으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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