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한국에서 멜론은 음원 차트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최근엔 케이팝 신의 경쟁 과열과 맞물려 이 ‘멜론 순위’가 신문 지상과 네트워크에서 빈번하게 오르내린다. 뉴진스·아이브·엔믹스·르세라핌·케플러·에스파까지 걸그룹이 쏟아져 나와 입지 선점을 위해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 그룹이 ‘대세’라고 증명할 수 있는 수치, 각종 성적 지표가 중요해졌다. 걸그룹은 전통적으로 보이그룹에 비해 대중 선호도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 그에 상응하는 지표로 ‘멜론 순위’가 거론되는 것이다. 케이팝 커뮤니티에선 순위 동향을 나타내는 ‘실시간 그래프’, ‘음원 이용자 수’ 같은 디테일한 자료까지 인용되며 논쟁이 벌어진다. 원래는 음원 성적이 높지 않았던 몇몇 보이그룹마저 차트 최상위권에 오르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건 시장 흐름 상 일견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이지만 합리적인 상황이라곤 할 수 없다. 더 이상 멜론 차트가 대중의 음악 취향의 척도라고 볼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멜론의 음원 시장 점유율은 몇 년째 하락했다. 2017년경엔 시장 점유율 60%에 육박했었고 향후 70%까지 확대될 거란 전망도 있었지만, 최근 발표되는 조사에선 20~30%대에 불과하고 급성장한 유튜브 뮤직과 점유율이 엇비슷하다. 더구나 멜론과 유튜브 뮤직의 순위가 상이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객관적 기준으로 잡고 판단하기 힘들다.

멜론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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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이 상대적으로 느린 차트란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순위권 노래들이 장기간 차트에 머무는 ‘고인 물’ 현상을 해소하려고 개편안이 도입됐었지만, 여전히 유튜브 뮤직에 비해 트렌드를 반영하는 유동성이 부족하다. 유튜브 뮤직에선 각종 트렌드를 탄 뮤지션과 중소 회사 아이돌의 차트 진입이 좀 더 즉각적이고 좀 더 자주 이뤄지고 있다. 멜론의 느린 속도가 팬덤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같은 외부효과와 결합하면 팬덤 기반 특정 장르 뮤지션들의 기득권이 강화되고 진입 문턱이 높아진다. 여기엔 멜론이 지닌 차별적 위상에서 오는 '역설'이 존재한다. 음원 성적에 관한 가장 유력한 척도로 통하기 때문에, 거기서 순위를 얻기 위한 각종 외부효과가 개입될 유인이 크고, 따라서 순위가 왜곡될 개연성도 가장 큰 사이트가 된다.

현재 세계 음악 시장의 주요 경향은 음악 소비가 영상 매체와 결합하여 이뤄지고, 틱톡과 유튜브 쇼츠 같은 숏폼 콘텐츠가 음악 유통과 순환에 큰 역할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또한 트렌드 유행과 콘텐츠 감상 플랫폼이 글로벌 단위로 공유되며 노래를 포함한 각종 콘텐츠의 소비에서 국경이 흐려지고 있다. 이미 국내 유튜브 뮤직 순위에도 제이팝 등 해외 뮤지션 노래가 순위마다 상당수 포진해 있다. 멜론은 말했듯이 외부 흐름을 반영하는 것에 상대적으로 닫혀있는 생태계다. 유튜브 뮤직과 순위가 상이한 부분들도 영상과 음악이 융합 소비되며 발생하는 트렌드를 흡수하지 못하는 괴리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있다. 멜론 탑 100은 절대다수가 한국 뮤지션의 노래인데, 세계 주요 음악 시장의 주요 음원 차트가 지금 시대에도 이 정도로 자국 노래로만 채워진 케이스는 정말 드물 것 같다. 글로벌 뮤직을 정체성으로 삼는 케이팝 가수들이 폐쇄적 로컬 차트에서 선착순 게임을 벌이며 기득권을 확보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아이브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아이브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여러 방면에서 따져봤을 때, 멜론이 오늘날 음악의 흐름과 소비 양상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예전 같은 독점적 지위가 사라진 상태에서, ‘멜론’이란 이름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그랬으니까”라는 관성 말고 근거가 있을지 모르겠다. 달리 말하면, 언론과 여론이 더 이상 인준해주지 않는다면 지속되기 힘든, 실체가 허약한 권위다. 물론 멜론 순위가 무가치하다거나 아무런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케이팝 노래들은 멜론 외의 다른 차트에서도 인기가 있다. 문제가 있다면, 아이돌 그룹들의 ‘멜론 순위’가 치열하게 거론될수록 멜론 차트 자체의 공신력도 격상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음원 소비 플랫폼으로서의 보편성을 상실한 현재, 멜론의 존재 가치는 국내 차트 지표로 특화돼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멜론은 한국의 유력한 ‘음원 사이트 중 하나’인 만큼, 외부의 여러 흐름과 함께 살폈을 때 음악 시장의 실체를 가려낼 수 있다.

기획사들은 자사의 그룹을 키우기 위해 알기 쉬운 홍보 지표가 필요하고, 차별화된 마케팅 자원을 가지고 있어 차트에서의 기득권 확보가 유리하다. 팬덤 또한 같은 욕망을 공유하고 있으니 온라인에서 멜론 순위를 뿌려 대며 내 아이돌을 ‘영업’한다. 내가 케이팝에 관한 담론에서 결핍돼 있다 느끼는 것은 비판적 담론의 존재다. 담론은, 산업의 욕망에 기생하거나 저마다의 악의를 조준하는 무조건적 찬사와 맹목적 비난을 오가며 부박하다. 비판적 이성은 사유를 거치지 않고 당연시되는 권위와 질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특정 음원 사이트의 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만, 그 사이트의 차트 순위는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이 괴리감이야말로 한국 음원 생태계와 케이팝 신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질 만한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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