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2023년 5월 1일, 봄 햇살이 촘촘히 내리쬐는 날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정도로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창문에서 내려다보니 아이들이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줄지어 학교에 가고 있었다. 뜻깊은 기념일이 두 개나 있는 날, 근로자의 날이면서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광화문에서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을 기념해 행사가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월요일 오전이었는데 버스는 광화문으로 갈 수 없는 것 같았다. 크고 작은 행사와 집회로 광화문을 통과하기 어려웠다. 나는 크고 작은 행사와 집회 중 가장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어린이날 101주년·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행사가 열린 1일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방정환 생가터에서 출발해 광화문 광장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까지 걷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어린이날 101주년·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행사가 열린 1일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방정환 생가터에서 출발해 광화문 광장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까지 걷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소파 방정환의 생가 건너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서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많은 어린이 단체와 엄마, 아빠와 어린이가 참여했다. 어린이를 위한 행진, 연극 공연, 놀이,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11시에 시작될 거라는 100주년 행사에 11시가 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이 모였다. 어린이 놀이 단체에서 온 사람들, 어린이 책 모임에서 아이와 함께 참여한 어머니들, 어린이 책 작가들이 한곳에 모였다. 행사가 진행되기 전부터 모여 앉아 놀이하는 어른도 있었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잔뜩 담긴 플래카드를 든 어린이도 있었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꿈꾸며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한껏 신나 있었다.

100주년 어린이해방선언을 시작으로 조를 나누어 행진이 시작되었다. 예쁜 토끼 머리띠를 한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각 조는 각자 마련한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 광장을 돌았다. 동물 탈을 쓴 사람들이 앞장섰고, 그들이 안내하는 곳에는 학춤을 추는 아이들, 공룡 모형을 쓰고 공연하는 사람, 거대한 인형을 가지고 나와 흥을 돋우는 사람도 있었다. 신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이 ‘제1회 어린이해방선언’을 했다. 100년 전 소파 방정환은 소년 운동의 기초 조항을 발표했다.

첫째,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둘째,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셋째,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는 기초 조항을 시작으로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어린이를 가까이 하사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등의 어른에게 드리는 글을 남겼다. 100년이 지난 지금 어린이의 삶은 달라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이해방선언을 하던 지난 5월 1일 아이들은 학교에 있었다. 이날은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이기도 했지만 근로자의 날이기도 했다. 전 세계 노동자가 연대하는 날, 우리나라에선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관련 행사가 있었다. 1923년 5월 1일 2000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 이것을 계기로 광복 후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했지만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3월 10일로 날짜를 바꾸고, 박정희 집권 시기에 노동절 대신 근로자의 날로 변경됐다. 그리고 1994년 다시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했다.

어린이날 101주년·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행사가 열린 1일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방정환 생가터에서 출발해 광화문 광장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까지 걷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어린이날 101주년·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행사가 열린 1일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방정환 생가터에서 출발해 광화문 광장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까지 걷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근로자의 날에 근로하는 사람들은 쉬었지만 근로자라고 하여 모두 5월 1일에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근로를 하지만 근로자의 날에는 쉴 수 없다. 교사는 근로자이지만 학교는 학생을 위한 교육기관이므로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선생님이 쉬지 않으므로 어린이는 학교에 간다.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을 기념해 2023년 어린이해방선언을 하는 날 어린이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2023년을 사는 어린이들은 마음껏 놀 수 없다.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이 교육열 높은 엄마와 아빠의 희망에 따라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며 길에서 끼니를 때운다.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 일은 체험학습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밖에서 나가 노는 일은 성적에 목매는 엄마와 아빠로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100년 전 어린이해방선언을 했지만 어린이해방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놀고 자는 시간보다 많다. 이는 지금을 살고 있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어린이가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어른들도 과거 어린이였다. 그 시절 어린이였던 나는, 당신은 이처럼 낡은 미래를 꿈꾸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낡은 미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켜줄 의무가 어른들에게 있다. 

 

2023년 5월 1일, 광화문이 오랜만에 아이들 웃음소리로 흘러넘쳤다. 광화문에 분수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하늘을 나는 소리를 들으며 내년 5월 1일에는 아이들 누구나가 뛰어노는 날이 되길 바랐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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