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가 아동·청소년들의 개인정보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잊힐 권리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개인정보위 발표에 의하면, 어린 시절부터 온라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디지털 세대(Digital Native)인 아동·청소년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온라인상 많은 개인정보가 장기간 누적되는 경향이 있지만, 누적된 개인정보에 대한 삭제나 처리정지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본인의 의도와 달리 자기 게시물이 오용되는 경우가 있을 때 절차 상의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동·청소년이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정보위는 홈페이지나 커뮤니티를 이미 탈퇴하였거나 계정정보 또는 게시물 삭제 비밀번호 등을 잊어버려 본인이 직접 삭제하기가 어려운 경우 게시판 운영 사업자에게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을 통해 해당 게시물에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할 수 있지만, 아동·청소년들은 이 방법을 모르거나 신청 경로가 복잡하여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개인정보 포털 내 서비스 신청 페이지에서 만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시기에 게시하였으나 현재는 삭제를 희망하는 게시물의 주소(URL)와 자기 게시물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 신청하면 정부가 대신하여 해당 사업자에게 게시물 접근배제를 요청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보도자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보도자료

시범사업의 신청 자격은 만 24세 이하 국민이지만 만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시절에 올린 디지털 게시물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일종의 아동·청소년 보호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사회적·정신적 미성숙 상태인 아동·청소년 시절에 여기저기 올린 게시물들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소위 ‘잊힐 권리’를 통해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사업이다. 개인정보위가 언급한 잊힐 권리는 아직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다. 개인정보위는 시범 사업 결과를 기초로 2024년 이후 아동청소년의 디지털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개인정보위가 아동·청소년만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실시한 이유는 분명하다. 성인의 경우 자기 책임하에 게시물 등록이나 삭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특정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탈퇴하는 행위, 게시물 업로드, 수정, 삭제 등 모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고 책임져야만 한다. 자발적 선택이 가능한 경우 굳이 법적 절차를 통해 보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게시물 업로드의 경우에도 최종적으로 타인 또는 공공기관 등에 의한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게시물 작성자 본인이 사망한 경우이다. 더 이상 게시물 관리가 곤란한 상태에서 게시물들이 오용되는 경우 어떻게 게시물을 처리할지는 중요한 문제다. 

현재는 고인의 유족들이 디지털 장의사에게 의뢰해 고인이 올렸던 게시물을 삭제하는 것이 유일한 솔루션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의뢰받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고객이 남긴 데이터를 삭제한다. 직접 삭제가 힘든 경우 데이터가 남아 있는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한다. 최종적으로 고인이 남긴 디지털 유품에 의해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한국 고용정보원이 향후 유망 직종으로 선정할 정도로 미래 지향적 직업이다. 디지털 장의사를 국가 공인 자격증으로 인정하자는 논의가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청소년 인터넷 이용(CG) [연합뉴스TV 제공]
청소년 인터넷 이용(CG) [연합뉴스TV 제공]

그러나 디지털 장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고인의 모든 디지털 유물을 완전히 삭제할 수는 없다. 특정 사이트 서버에 존재하는 기록물은 삭제할 수 있지만, 이미 타인에 의해 공유된 게시물의 삭제는 쉽지 않다. 누군가가 고의로 또는 특정 목적에 의해 게시물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재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번 업로드된 게시물은 사실상 영구 보존될 가능성이 크다. 도서관에 화재가 발생하면 소장하고 있던 모든 기록물이 소각되는 것과 달리 디지털 게시물은 생성과 동시에 글로벌 서버에 분산 저장되어 수시로 노출될 수 있다.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과 실제 남기는 일 모두 호모사피엔스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기록을 통해 문명이 발전했고 삶이 풍요로워졌기 때문에 아날로그 시대의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든 네트워크 시대의 시민의식은 아날로그 시대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 정보, 게시물은 최초 게시자의 관리 능력을 쉽게 초월한다. 글로벌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게시물이 언제 어느 방식으로 노출될지 아무도 모른다. 업로드는 권리인 동시에 바로 피해로 돌아올 수 있는 족쇄일 수도 있다. 잊힐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계속 이어져야겠지만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시민의식에 대한 논의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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