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예능이나 드라마에 어린이 출연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예능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육아 프로그램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고 있는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물 건너온 아빠들>처럼 어린이가 주된 출연자가 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오디션 예능이나 SBS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에서처럼 일시적인 출연자나 게스트로 등장하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이제 오히려 아역 탤런트가 출연하지 않는 경우를 찾기가 더 어렵다. 드라마의 아역은 단순한 ‘아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극 내내 등장하는 조연급 아역뿐 아니라, 주인공의 어린 시절로 분해 극의 전개는 물론, 초반 인기몰이의 중심에 서 드라마 속 존재감을 자랑한다. 어린이 출연자들은 이제 더 이상 프로그램의 보조나 감초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서, 어엿한 주연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방송에 출연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열성도 화제가 되었다. 아역배우 연기학원이 따로 생긴 지도 오래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어린이는 갈수록 늘고 있는 반면, 어린이를 위한 방송 프로그램은 양적 차원에서나 질적 차원에서 뒷걸음치고 있다. ‘출연자’로서의 어린이가 각광 받는다면, ‘시청자’로서의 어린이는 홀대받고 있는 셈이다. 2023년 4월 현재 지상파 3사에서 방송되고 있는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은 KBS2의 <TV 유치원>, SBS <꾸러기 탐구생활> <요리조리 맛있는 수업> 정도다. 그나마도 이들의 경우는 엄밀히 말해 ‘어린이 프로그램’의 정의인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고만은 보기 어렵다. 나머지는 캐릭터 시장의 성장과 맞물려 KBS1 <내 비밀친구 햄찌> <상상꾸러기 꾸다> <메탈카드봇> <매직펜던트 대모험> <프라몬 원정대>, KBS2 <구르곰 구르닭>, SBS <헬로카봇> <슈퍼다이노> <안녕 자두야> <애니갤러리> 등과 같은 영유아 대상 애니메이션에 편중돼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서 시청층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료방송 채널의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옮겨갔고, 이는 지상파 방송사들로 하여금 다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미래의 시청자일 뿐 아니라 나라의 보배이기도 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더욱이 최근 어린이와 부모들의 왕성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키즈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방송사 또한 과거의 소극적인 투자에서 벗어나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고 부가 사업까지 가능하도록 적극 노력할 필요가 있다.

KBS 2TV 어린이 프로그램 〈TV유치원〉, SBS 〈꾸러기 탐구생활〉, KBS 1TV 〈상상꾸러기 꾸다〉, SBS 〈요리조리 맛있는 수업〉
KBS 2TV 어린이 프로그램 〈TV유치원〉, SBS 〈꾸러기 탐구생활〉, KBS 1TV 〈상상꾸러기 꾸다〉, SBS 〈요리조리 맛있는 수업〉

그렇다면 현재 어린이 프로그램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과 인식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드라마, 예능과 같은 성인 대상 오락 프로그램 제작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과 장비, 높은 비용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반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요소 투입은 상대적으로 미약해, 결과적으로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의 부족과 질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의 경우 비교적 손쉬운 애니메이션을 편성하거나, 다른 장르라 하더라도 그 형식이나 내용 자체가 성인용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아,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다. 요컨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뉴스, 개그, 토론, 토크, 문화예술 등 새로운 형식과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프로그램 개발과 편성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둘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의 절대 다수를 애니메이션으로 편성함으로써 장르의 심한 편중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의 정서적 발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현 양식이며, 교육적인 정보전달과 어린이들의 사회화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선과 악의 단순 흑백논리를 토대로 하거나, 비현실적인 내용을 전개하거나, 스테레오 타입화된 구성과 캐릭터를 갖거나, 갈등의 해소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등 현재 방송되고 있는 애니메이션들에는 우려할 점도 많다. 애니메이션의 편성비율을 줄이고 장르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애니메이션의 내용 측면에서도 교육적이고 현재보다 덜 선정적·폭력적인 작품 편성이 필요하다.

셋째,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의 출연자 이슈도 있다. 개그맨 등 연예인이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 어린이들에게 재미있고 친근한 이미지는 줄 수 있지만, 자칫 어린이들의 사물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사고를 가볍게 만들 우려가 있다. 다른 한편,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어린이들의 동일시의 대상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어린이 시청자에게 성역할이나 직업관 등을 형성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취학 전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어린이들의 모든 행동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비정상적이거나 문제적인 인물로 묘사될 때가 있고, 어린이들 역시 어린이들답지 않게 영악하거나 혹은 나약하게 의존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넷째, 어린이들의 생활패턴 변경과 방송을 보는 눈이 높아진 것도 문제다. 이는 어린이들이 어른용 프로그램에 몰리는 주된 이유가 된다. 어린이 프로그램 방송 시간대에는 학원을 가야 하고, 정작 이들이 집에 와 TV를 볼 시간에는 대부분 어른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시간이 된다고 해도 어린이들이 방송 보는 눈이 높아진 탓에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잘 안 보는 측면도 있다. 때문에 어린이들이 시청등급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에 과다 노출돼 정서함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제작자가 바라는 프로그램과 실제 타깃인 어린이 시청자가 바라는 프로그램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수뿐 아니라, 장르, 그리고 프로그램 질적 차원에서도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이 위기에 처해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 3월 종영한 EBS 1TV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2021년 3월 종영한 EBS 1TV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한편, 어린이 방송출연이 증가하면서 그에 대한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첫째, 어린이 출연자가 드라마나 예능에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연기를 하면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위험을 내포한다. 극 전개나 내용 흐름 상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과도한 상황 연출에 대해서도 어린이 출연자가 현장에서 항의하거나 연기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과도한 장면들이 필수불가결하고 일부러 자극적인 설정을 한 것은 아니라 해도, 아역이 소화하기에 과하거나 무리가 있다면 그런 장면들을 촬영하고 내보내는 데에는 보다 진지한 고민이 요청된다.

둘째, 어린이 출연자들의 노동환경 개선도 고려될 문제다. 시간에 쫓겨 급박하게 돌아가는 방송제작 환경과 문화에서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권리가 침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학기 중에도 불구 방송 출연으로 기본적인 교육과 학습에 대한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충분한 휴식을 취할 여건이 제공되지 않아 신체적 발달이 저해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셋째, 어린이 출연 프로그램이 간접광고 등을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넓고 깨끗한 집에서 아이들에게 비싼 옷을 입히고 전문 교육기관을 통해 사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자신도 비교대상처럼 될 수 있다고 믿을 경우 상향비교(자신을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는 것)는 영감을 주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비교대상처럼 될 수 없다고 믿을 경우 자신의 부족한 처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어린이에게 적합한 다양한 프로그램 포맷 개발이 필요하다.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과 편성에 있어서 애니메이션 중심에서 탈피해야 한다. 좀 더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으로 프로그램의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 어린이들에게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특히 드라마는 사회적·가족적 문제, 그리고 학교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사실적인 방식으로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 효과적으로 교훈을 줄 수 있는 포맷이므로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뉴스, 토크쇼 등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장르를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새로운 장르의 개발과 더불어 기존의 장르 중 발전의 여지가 있는 장르에 대한 개선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겠다.

대표적으로, ‘어린이 뉴스’ 기획을 그려볼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MBC, 2000년대 KBS에서 각각 어린이 뉴스를 일시적으로 제작·방영한 바 있다. 다만 두 방송사에서 방송했던 어린이 뉴스의 내용과 형식엔 다소 차이가 있었다. MBC에서 1980년대 일시적으로 방영했던 <어린이 뉴스>는 ‘어린이용 뉴스 아이템’을 전문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다. 학교나 교육환경과 관련된 소식, 학생들이 알아두면 좋을 생활정보나 건강상식 등이 주된 소재였다. 반면, 2001년 7월부터 2007년 4월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30분씩 방송됐던 KBS <어린이 뉴스탐험>의 경우, ‘어른용 아이템’까지 알기 쉽게 풀어주는 어린이 대상 뉴스 해설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어린이용 뉴스 아이템뿐 아니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치·시사 이슈들을 어린이들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는 눈높이 맞춤형 뉴스였던 셈이다.

이러한 어린이 뉴스를 기존 어린이 프로그램 방영 시간 끝 무렵에 편성하거나, 8시 뉴스 후미에 배치 편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과거에 비해 정보에 대한 접근이 굉장히 쉬워진 요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부정확하거나 출처 불명인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나돌아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이 잘못된 정보나 지식을 사실인 양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런 때야 말로 어린이들에게 보다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어린이 뉴스’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다.

KBS 2TV 〈TV유치원〉 ‘어린이 뉴스 뚜뚜’
KBS 2TV 〈TV유치원〉 ‘어린이 뉴스 뚜뚜’

둘째,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이탈 시청자를 붙들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고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 첫 방송을 시작해 2021년 종영할 때까지 초등학생들의 정다운 친구로 자리잡아왔던 EBS <톡! 톡! 보니하니(이하 <보니하니>)>가 그러한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최장수 생방송 어린이 프로그램’, ‘유아·어린이 대상 프로그램 중 시청률 1회’, ‘3,000회가 넘게 방송된 어린이 프로그램’ 등 <보니하니>를 일컫는 수식어는 많았다.

하지만 <보니하니>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은 어린이들과의 공감대였다. 방송 오프닝에서는 늘 보니와 하니가 그날 어린이들이 겪었을 만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채로운 코너도 매력이었다. 요일별로 다른 코너를 선보였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프로그램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콩트 형식의 코너도 인기였다. 어린이들이 생활하며 접할 법한 ‘생활상식’과 ‘속담’의 유래를 알려주기도 했다. 재미도 있으면서 교육적인 내용도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만족했다. 스탠딩 진행, 핸드헬드 촬영 활용, 선생님이나 전문가를 출연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놀고 소통하는 진행방식 등도 <보니하니>를 다른 프로그램과 구분 짓는 특징이었다.

셋째, 어린이 프로그램 전담 프로듀서 및 전문 인력 배치가 요구된다. 어린이들의 이해와 감성·지성을 개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는 전담 프로듀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제작의 모든 분야에 전문 인력(교육, 아동심리, 발달 전문가 등)을 배치해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넷째, 기존 교육에 대한 단순한 성찰을 넘어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제작될 필요가 있다. 교육이라는 소재를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춤으로써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면서,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인해 늘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던 교육의 본질을 살피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어린이들의 생활패턴에 맞게 어린이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청률이나 제작비 차원이 아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보다 유익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적극적인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방송사 차원의 자율적인 어린이 프로그램 쿼터제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어린이 시간대를 주말 오후로 일부 확장하는 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 제시도 계속돼왔다. 이유는 평일 어린이 시간대보다 주말 오후에 어린이들이 TV 앞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린이 출연자들의 경우도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제대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강구돼야 한다. 현장에 선생님을 고용·배치하고 전문가 상담을 정기적으로 받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어린이 노동법’은 생후 15일부터 18세까지의 미성년이 연예 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데 있어 출연자와 보호자, 고용주가 노동 관련 부서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출연자가 학생인 경우, 학교에서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령대별 노동시간도 정해져 있을 뿐 아니라, 부모나 보호자는 반드시 촬영장에 동행해야 하며, 한 명의 현장교사와 한 명 이상의 간호사를 상주시키도록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출연 프로그램의 형식·기획의도·제작과정·내용·출연 후 발생 가능한 사건 등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제공하고, 제작자·보호자·출연자 간 의견조정 방법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도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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