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처음부터 기대가 없었기 때문인지, 여러 비판이 있지만 송영길 전 대표의 기자회견 메시지는 그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다. 송영길 전 대표는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당사자이다. 혐의 인정을 전제로는 발언할 수 없다. 오히려 ‘검찰 반대’를 앞세워 온 세력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치탄압이나 기획수사를 입에 올리지 않은 것만도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다행이다. “오랜 관행이므로 상대방도 뿌리지 않았겠는가”, “국민의힘도 자유로울 수 없지 않나”라는 식이었다면 어땠을까? 더불어민주당은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떠밀려 가야 했을 것이다.

송영길 전 대표의 귀국에만 모든 것을 맡겨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송영길 전 대표의 입장 표명과 귀국이 ‘시작’이 되는 것일 게다. 이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어느 수준까지 어떤 방식으로 ‘혁신’을 보여줄 것인지, 이를 주도해야 할 이재명 대표 자신의 문제와 거취 등은 어찌할 것인지를 예측 가능한 형태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 체류해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3일 오후(현지시간) 귀국을 위해 파리 외곽에 있는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프랑스에 체류해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3일 오후(현지시간) 귀국을 위해 파리 외곽에 있는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여의도 정치는 어쩔 수 없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진상규명이 가능하겠느냐, 수사권도 없지 않느냐, 검찰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돼야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겠느냐, 당내 갈등만 부각된다 등등.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 봐도 난처할 것이다. 그렇잖아도 당내 기반은 부실한데, 우호 세력에 손해가 되는 일을 호기롭게 추진하다 자기 기반이 와해될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검찰이 또다시 보낼 것이 분명한 체포동의안 처리 전망도 생각해야 한다. 이 사안으로 당내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일단은 지켜보자”에 가까운 분위기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좌고우면하다가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인상을 주면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돈봉투 돌리는 당’으로 총선 치르는 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윤석열 정권과 여당이 더 망치기만을 바라는 것은 요행수에 기대는 거다. 오히려 정권과 여당이 별로 가능성이 커보이진 않지만 어찌됐건 전열정비에 성공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건가? 누구나 말하듯 정치는 생물이고 총선까진 아직 ‘조선왕조 500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승부를 걸어야 할 때 걸지 못하고 있는데, 이래선 곤란하다.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및 성남FC 사건으로 기소될 때도, 체포동의안 처리 국면에서도 그랬다. 이번에도 비슷한 수순으로 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만 해도 ‘승부사’ 캐릭터였고 그런 모습에 기대를 걸었던 지지자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승부사’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이든, 자신들과 관련한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거나 책임지지 못하는 정치인 혹은 세력에 책임을 맡기고 싶은 유권자가 어디 있겠는가.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금태섭 전 의원, 김 전 위원장, 민주당 이상민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주도하는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의 첫 토론회이다.(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금태섭 전 의원, 김 전 위원장, 민주당 이상민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주도하는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의 첫 토론회이다.(연합뉴스)

양당이 이런 식이니 ‘제3지대’ 얘기가 또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컨설턴트’는 4자 구도의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기 분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당이 모두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니 이런 전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현실이 될 것인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

지금 상황에선 ‘제3지대’를 추진하겠다는 사람들도 못 미덥다는 게 문제다. 보통 여의도 정치에서 ‘제3지대’는 명확한 노선적 지향이 있어 오랫동안 버틸 수단을 스스로 만들 수 있거나, 대권주자나 지역기반 등의 물적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제3지대’를 말하는 사람 중에 그런 조건을 갖춘 인물이나 세력을 찾기는 어렵다. 금태섭 전 의원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제3지대’를 말했는데, 그 실천적 결론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것이었다. 이후 업데이트 된 유의미한 ‘제3지대’ 정치 행보는 없었다. 그때와 지금이 뭐가 다른지 설명하지 못하면 신뢰를 모으기 어렵다.

정치세력은 다양할수록 좋다. 하지만 뭘 하겠다는 건지 명확하지 않은 ‘제3지대’는 이후 기성정치에 이리 저리 휩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가 발전하는 지표라고 볼 수는 없다. ‘양당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3지대 공간이 열렸다’는 인식도 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제3지대’가 더 다듬어지기 위해선 정치권 전체의 ‘좋은 정치’를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경쟁은 양당만 하는 게 아니라 ‘제3지대’도 함께하기 때문이다.

양당이든 ‘제3지대’든 결과적으로 ’좋은 정치’를 하기 위한 혁신적 노력을 앞으로 할 수 있다면 한국 정치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그럴 수 없다면 더 미련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상태다. 각 당이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좀 바로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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