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가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가이드라인에 취재원의 대표성(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안, 차별·배제·축소하지 않는 어휘선택, 젠더 폭력 사건 보도 원칙, 이미지 활용과 스포츠 중계에서 잘못된 젠더관념이 확대재생산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사항 등이 기재됐다. 

가이드라인 제작에 참여한 학자·기자들은 체크리스트 형태로 제시되는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한계를 거론하면서 언론계가 성평등 보도를 위해 적극적으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열린 '성평등 보도를 위한 저널리즘 원칙 점검' 토론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육아 기사는 여성, 기술 기사는 남성에게?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성평등 보도를 위한 저널리즘 원칙 점검' 토론회가 열렸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간한 젠더보도가이드라인을 발제했다.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은 취재 단계에서 짚어봐야 할 우선 과제로 '취재원의 대표성과 다양성'을 제시했다 저널리즘 실천에서 '남녀노소'를 모두 취재원으로 삼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에 해당하는 원칙이라는 지적이다. 가이드라인은 취재원의 성별과 연령이 기사 안에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지, 취재원을 선정할 때 성별에 따라 영역을 한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을 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공영방송 BBC가 여성의 가시화를 위해 채택한 보도 원칙 중 하나가 취재원 성비를 50대 50으로 맞추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유념해야 할 것은 성비 균형 그 자체가 목표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도구"라며 "언론 보도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추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성비 50%의 균형적 제현이라는 도구적 목표를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이드라인은 "취재원의 성별 균형과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미디어 산업 내 다양한 취재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구성원의 다양성이 존재하는가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가이드라인은 취재원 대표성이 기사에서 실현되지 않는 이유로 성별과 영역에 대한 고정관념을 들었다. 특정 영역에 관해 '남성의 영역', '여성의 영역'으로 판단하는 고정관념이 해당 영역에서 다른 성별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한편에서 전문적 역량을 가진 사람은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이 작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육아 관련 기사는 여성, 기술 관련 기사는 남성 취재원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정부의 육아 정책이 발표됐을 때 육아휴직 중인 아버지를 인터뷰 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몹쓸 짓' '저출산' '여OO' 차별·축소의 어휘들 

김 교수는 "어휘의 경우 목표는 '포함적 어휘'다. 표현을 통해 배제되거나 어휘에서 나타나는 고정관념의 재생산을 줄이고자 하는 고민"이라며 "가이드라인의 목록이 충분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카이브 형태로 새로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은 일상·언론 속 성차별 어휘를 바로잡았다. 젠더 기반 폭력 사건에서 사용되는 '몹쓸 짓'이 대표적 사례다. '몹쓸 짓'은 은유적 표현으로 '악독하고 나쁜 행위'를 의미해 얼핏 문제가 없는 어휘처럼 보이지만 성폭력 범죄의 성격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동시에 성폭력 보도에만 한정적으로 쓰이는 경향을 보인다. 가이드라인은 "금융권 횡령 범죄가 일어났을 때 '몹쓸 짓'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가이드라인은 "성폭력 범죄에만 이러한 어휘가 쓰이는 것은 이 범죄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거나 사적 영역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며 "단순한 은유이지만, 사실상 뿌리 깊은 성차별적 표현이 바로 성폭력 범죄를 '몹쓸 짓'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출산'은 여성의 책임을 부각하는 어휘로 지적됐다. 출산은 여성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출산 담론은 항상 여성의 책임을 묻게 된다는 지적이다. 가이드라인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문제로 바꾸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여성이 낳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왜 부부가 이러한 결정에 이르렀나, 이 부분을 언론은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바른 표현은 '저출생'이다. 

'여OO'은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을 비교해 설명하는 관행이다. 가이드라인은 여검사·남검사, 여경·남경, 여교수·남교수, 여변호사·남변호사, 여류작가·남류작가 등을 예시로 들며 "'남'이 들어가는 어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반면 '여'를 붙이는 경우는 일상 속에서 많이 목격된다. 이러한 비대칭적 어휘는 공적 영역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해 자주 일어나는 성차별적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바른 표기는 '여'를 제거하면 된다. 성별 표기가 필요한 경우라면 괄호 안에 성별을 기재하거나 '여성 OO' '남성 OO'으로 성별과 직업을 분리해 표현하면 된다. 

이 밖에 가이드라인은 ▲외조와 내조 ▲유모차(→유아차) ▲맘카페(→육아카페) ▲수유실(→아기 휴게실) ▲낙태(→임신중지) ▲미혼(→비혼) ▲성전환(→성별재지정) 등의 어휘를 바로잡고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젠더 기반 폭력 보도, '피해자 보호 원칙' 되새겨야

김 교수는 젠더 기반 폭력 사건을 언론이 다룰 때 일부 피해자 의지에 반한다 하더라도 '피해자 보호'를 원칙으로 지속적인 고민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피해자 보호다. 피해자가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기 원하는 경우라고 해도 2차 피해의 심각성 등에 대한 안내 등을 통해 피해자가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해외 다수 가이드라인이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절대로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직접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고 권고하는 이유는 피해자의 상황과 (보도의)지속적인 영향력을 고려하기 때문"이라며 피해자가 안정적인 상황에서 인터뷰가 가능한 것인지, 보도의 영향력을 피해자가 알 수 있는지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볼 것을 권고했다. 

이어 김 교수는 "사건 자체를 알리는 것보다 대응에 초점을 둬야 한다"며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은 없는지, 디지털성폭력 사건 발생 시 '검색어' 생성 가능성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보도 단계에서는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가해자 중심 보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저널리즘 이론 중 '서사적 면칙효과'라고 부르는 표현을 가져왔다. 가해자에 대한 내용을 많이 보여줄수록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면칙을 해주는 논의가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돼 왔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보도 이후에는 ▲피해자 지원 정보 기재 ▲댓글에 의한 2차피해 경고 정보 기재 ▲후속보도 등이 권고됐다. 김 교수는 "결국 젠더 기반 폭력 보도의 핵심은 사건 자체를 보도하는 것보다 후속보도를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라며 "피해생존자가 어떻게 자기 증언 역량을 확보하고,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는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가이드라인 실천은 과제… "언론계 '상상력' 필요"

기자들은 이번 젠더보도가이드라인 발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 상황을 전했다. 가이드라인 실천을 위해 언론사 안팎에서 다각적인 점검과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얘기다. 

류란 SBS 기자는 "가이드라인은 '하지 마세요' 중심으로 논의되는데, 이후 현장에서는 '보도를 안 할 수는 없고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이야기가 필요해진다"며 "방송뉴스에서 가장 크게 어려움을 겪는 성폭력 보도를 보면, 2분짜리 리포트에서 기자의 오디오가 나가는 동안 무슨 이미지를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사건을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를 쓰면 안 되는데, 아직 (피의자)입건도 되지 않았다면 검찰·경찰 외경 정도도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류 기자는 "가이드라인은 시작이고 현장의 기자들이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며 "언론노조 SBS본부에서 성평등언론실천상을 시상해봤는데, 수상을 한 사람이 현장에서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왔는가 경험담을 듣는 것이 상의 목적이었다. 앞으로는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외면할 게 아니라 우리가 뭘 시작해야 하는가가 중요해질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가이드라인은 신문보도 중심의 윤리에 입각한 원칙을 제안하는 것인데, 지금 고민하는 부분은 TV·유튜브 보도"라며 "영상보도의 경우 반드시 영상이 따라 들어가는데 여기서 피해상황 묘사를 뺐을 때 영상에 들어갈 소스가 있을 것인가 고민이 있다. 피해장면 그 자체를 보도하지 않고도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왼쪽부터) 류란 SBS 기자, 오예진 연합뉴스 기자, 조효진 MBC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왼쪽부터) 류란 SBS 기자, 오예진 연합뉴스 기자, 조효진 MBC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오예진 연합뉴스 기자는 "(젠더 보도에 대한)광범위한 합의가 너무 부족하다. 현실은 각 언론사가 각개전투를 하는 것 같다"라며 "젠더 문제가 나왔을 때 각 데스크가 고민하고 개별 기자와 토의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어렵다. 예를 들어 사회부가 '저출산'을 '저출생'이라고 쓰기로 했다고 이것이 정치부나 전체 언론사 등으로 퍼져나가지 않는다"고 짚었다. 

조효정 MBC 기자는 데스크·신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기자는 "최소 2단계 이상의 데스크를 거치는데 그럼에도 젠더이슈에 있어 사고가 자꾸 난다. 결국 제도·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신입기자, 데스크급 이상의 기자에 대해 사내외에서 끊임없이 교육을 해야 한다. 재교육을 통해 이 부분을 계속 상기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 기자에 따르면 MBC는 신입기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사내외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다양성 데스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일선 기자들은 데일리 뉴스를 처리하느라 교육받은 내용을 잊어버리게 되고, 다양성 데스크들은 여러 보직을 겸직하고 있어 출고기사에서 사고가 난다는 설명이다.

조 기자는 언론사의 경직된 상하구조도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조 기자는 "신입기자가 엄정하게 기사를 썼다고 해도 데스킹 과정에서 많이 고쳐지고,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데스크는 연차가 오래돼 다년간의 경험에서 오는 고정관념에 오염돼 있다. 기사를 고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