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드라마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흔하다. 일일드라마에서 주중 미니 시리즈, 주말드라마 그리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죽음 관련 소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음은 그렇게 단순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삶의 한 단면을 표현하는 일에 있어 죽음만큼 극단적이고 강렬하면서도 효과적인 설정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단지 살인 장면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드라마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드라마 속에서 다뤄지는 죽음에 보다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성찰과 고민이 없는 드라마 속 죽음은 공허하다. 그것은 죽음을 단순히 극적 효과나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 장르 중에서 드라마만큼 죽음을 리얼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큐멘터리나 뉴스 등에서 실제 죽음이나 그 이미지를 담아내기도 하지만, 드라마 속 죽음은 전체 구성이나 극적 효과의 산물이기에 수용자들로 하여금 그것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분장, 카메라 워크와 쇼트의 배치, 음악과 조명, 특수효과 등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강렬한 ‘죽음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그 아우라는 미학적으로 고양된 상태로 수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드라마 속 죽음의 재현에는 항상 윤리적 문제가 따른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죽음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죽음의 이유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등 단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해도, 드라마 속에서의 죽음의 재현은 진지하게 고민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최근 드라마 속 죽음은 어떻게 재현되고 있나?

〈더 글로리〉 파트2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2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첫째, 악역에게 주어지는 벌로서의 죽음이 있다. 이른바 ‘권선징악’의 결과로서의 죽음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2023)>에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의 삶을 파괴하고 지옥을 선물한 전재준(박성훈 분)은 하도영(정성일 분)에게 떠밀려 건물 아래 양생 중인 콘크리트에 빠져 죽는다. 그리고 함께 문동은을 괴롭혀왔던 손명오(김건우 분) 역시 자신이 성추행해왔던 김경란(안소요 분)에 의해 살해당한다. 또 아내 강현남(엄혜란 분)과 딸 이선아(최수인 분)에게 가정폭력을 일삼던 이석재(류성현 분)는 자신이 협박하던 홍영애(손지나 분)가 모는 차에 치여 사망한다. 권선징악의 구도를 그리는 드라마에서는 악인의 죗값을 극 말미에 살아남은 후회와 죄에 대한 반성으로 그려내거나, 아니면 죽음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으로 처리해왔다. 권선징악의 결과로서 죽음이 등장하는 경우, 대체로 죽음을 부여하는 주체가 주인공(들)이나 주인공과 가까운 사람(들), 죽음을 부여받는 대상이 악역이다. 악역은 이전에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해왔고, 그에 대한 대가로 자연스럽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둘째,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발생하는 죽음이 있다. 욕망이나 질시 등에 눈먼 등장인물이 세속적인 이유로 인해 살인을 하고,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인물들이 발생한다. SBS <모범택시2(2023)>에서 블랙썬을 거점으로 대량 마약 유통을 계획하는 범죄자 온하준(신재하 분)은 호텔의 우선순위 채권자가 되기 위해 계약자에게 대접하는 차에 약을 탄다. <더 글로리>에는 자신을 구해준 의사를 죽이고 그 아들까지 조롱하는 인간말종 연쇄살인범 강영천(이무생 분)이 등장하기도 한다.

셋째, 자연의 섭리에 의한 죽음이 있다. 노령으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전자의 경우는 사극에서처럼 역사적 사실로서의 죽음을 보여주거나, 특정 등장인물이 죽은 후 남겨진 자들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다. JTBC <사랑의 이해(2022~2023)>에서 안수영(문가영 분)은 아버지의 불륜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동생이 교통사고가 나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미워하며 산다. 후자의 경우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등장인물에게 부여함으로써, 다시 말해 조건부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의 행동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KBS2 <커튼콜(2022)>의 자금순(고두심 분)도 굴지의 호텔체인 설립자이자 총수이면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인물로 그려졌고, JTBC <재벌집 막내아들(2022)>에서도 순양그룹 총수 진양철(이성민 분) 회장이 뇌병변을 앓는 설정으로 등장했다.

넷째, 우연히 발생하게 되는 죽음이다. 교통사고, 자연재해 등의 사고로 인한 죽음이 이에 속한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형의 죽음에는 수용자들의 도덕적 분별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선인과 악인, 선행과 악행이 분명하게 구분되고 그로 인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이 상대적으로 당연시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세 번째와 네 번째 유형의 경우는 도덕적 분별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때문에 죽음이라는 설정이 당연시되지 않고, 훨씬 진지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수용자들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드라마 속 죽음의 공통점은 그것이 극적 효과를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설사 자연의 섭리에 의한 죽음이라 해도, 그것은 철저히 의도된 결과이다. 주인공에게 부여되는 죽음은 극에 비장미를 더하기도 한다. 주인공이 죽음을 향해 돌진하거나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순간이야말로 수용자에게 미적·감정적 희열을 전해줄 수 있다. 이 경우 죽음의 순간은 드라마 속에서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죽음의 재현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죽음이 단순히 극적 효과로만 치장되는 것은 분명 문제 있는 퇴행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성찰이 사라진 채 화면 위에 자극적인 죽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많은 드라마에서 죽음을 다룸에 있어 진정성보다는 극의 구성을 앞세운다. 소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설정들은 모두 눈물을 자극하는 데 기여한다. 이야기를 주조하는 데 애를 먹을 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감동은 주고 싶을 때, 일종의 편법처럼 이용하는 방법은 등장인물을 극적으로 죽이는 것이다. 극중 등장인물의 죽음은 ‘시청률 상승’이라는 관성의 법칙으로 연결된다. 죽음이 자극적일수록 수용자들은 보다 즉각적으로 강하게 반응한다. 특히 탐욕에 눈먼 등장인물이 세속적인 이유로 다른 등장인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자칫 등장인물의 광기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머물 공산이 크다. 특정 등장인물이 연속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죽음을 단순한 범죄수단이나 결과로 전락시키고, 범인에 대한 벌로서 죽음을 선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첫 번째 문제점은 두 번째 문제점으로 연결된다. 죽음이 극적 효과로 전락하면서 드라마 속 죽음은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다. 현실 속에서는 악역이라 할지라도 죽음으로 악행에 대한 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또, 현실 속 죽음의 원인이 드라마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2022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10대 사망원인은 암, 심장 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 고의적 자해(자살),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간질환, 패혈증, 고혈압성 질환 순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실제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망원인은 많지 않다. 특히 질병에 의한 죽음은 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극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질병으로 죽는 경우가 필요하더라도, 불치병을 선호한다. 당뇨병으로 죽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드라마가 선호하는 죽음의 원인이 있고, 또 죽음이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위한 것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죽음은 극적 효과 이상일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의 죽음은 의미의 상실일 수 있지만, 드라마 속 죽음은 사연과 의미를 업고 재현된다. 다시 말해 드라마 속 죽음은 서사를 가진 주체라는 것이다. 때문에 드라마에서 죽음은 현실에서의 그것보다 더욱 더 값어치 있게 다뤄져야 한다. 죽음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삶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픽션 속 공허한 유희에 현실은 소멸해갈 뿐이다.

드라마 속 죽음이 단순한 극적 효과 이상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갖는 윤리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죽음이 갖는 의미를 두껍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단순히 누가, 왜 죽었느냐를 묻는 논리적 수사극이 아니다. 인과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드라마의 윤리라 할 수 있다.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죽음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드라마 속에서도 그 죽음은 의미 있는 무언가여야 한다. 복수로, 죽음으로 가득 찬 드라마들이 진짜 두려움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누가’보다 죽음의 의미를 밝히는 것, 죽음을 소비하지만 그 안에서 삶이 버린 의미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드라마 속 죽음일 필요가 있다.

물론 보다 많은 수용자를 붙들어야 하고, 또 급하게 제작에 임해야 하는 제작진에게 이렇듯 드라마 속 죽음에 대한 윤리를 요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우리 사회와 우리 일상의 반영일 뿐 아니라, 우리 사고와 감정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드라마 속에서 죽음이 진지하지 않게 다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죽음을 진지하지 않게 여김을 의미하며, 또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만들 수 있다. 죽음 없이 죽음보다 더 강렬하면서도 효과적인 삶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고, 설사 죽음을 보여준다 해도 그것이 가진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극적 효과와 삶에 대한 성찰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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