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한상희 칼럼] 베트남에서 온 젊은 아내는 어린 아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그럴 수 없다고 난동을 부리며 폭행했다. 유명 로펌에서 베트남인 아내의 변론을 맡으며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었다. 주인공인 변호사는 사회적 비난과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폭력 남편을 변호하기로 마음먹는다.

JTBC 주말드라마 〈신성한, 이혼〉
JTBC 주말드라마 〈신성한, 이혼〉

JTBC 주말드라마 <신성한, 이혼>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요약이다. 보통 이런 식의 이야기 구성에서 주인공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을 변호하며 폭력 남편과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에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러나 이 드라마, 사뭇 달랐다. 결국 주인공인 신성한 변호사는 나이 어린 아내가 같은 베트남 남성과 불륜을 저질렀고,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아들 역시 친자가 아니며, 아내의 다친 팔은 남편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닌 불륜남과 계획한 자작극이었음을 밝혀낸다. 또한, 이혼을 요구하는 이유는 잠적해 버린 아이의 친부를 찾으러 가기 위함이었다는 것까지 밝혀냄으로써 아내에 의해 그리고 언론에 의해 훼손되어버린 남성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성공한다. 남다른 전개와 예기치 못한 결말이다.

지금까지 약자로, 보호의 대상으로 그려지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사회적 약자를 선한 존재로만 그리던 기존의 문법을 깨고 그 프레임 안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버린 남성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사회적 약자가 항상 선한 것은 아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항상 남편 혹은 다른 가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사는 것 역시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칭찬하는 거냐고?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내가 외롭고 낯선 곳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 위로받을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현실에 대한 항변이 드라마에서 빌런으로 설정돼 있는 로펌 변호사의 입에서 나올 때, 힘에 부치는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해 착취라는 표현을 써가며 항변하는 것 역시 그의 입에서 나오지만 결국 주인공인 신성한 변호사에 의해 그것이 사실과 다름이 증명될 때, 우리는 이 상황에서 그 아내를 ‘결혼이주여성’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 볼 준비가 되어 있을까?

JTBC 주말드라마 〈신성한, 이혼〉
JTBC 주말드라마 〈신성한, 이혼〉

베트남에 있는 아내의 가족까지 부양하기 위해 남편이 몸 상하는 것도 감수하며 밤낮없이 일에만 매달렸다고 증언하는 주변 사람들은 ‘늘지도 않는데 한국어 배운답시고 나가서는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등 아내의 행실을 문제삼고 있었다. 한국어를 배우러 다니는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정말 저런 오해를 받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어떤 반전을 기다렸던 나의 바람은 그저 구태한 바람으로 끝났다. 드라마는 결국 이 행실 불량한 아내와 친자가 아닌 아들을 품어주는 남편의 애처롭고 너그러운 모습으로 에피소드를 마무리했다.

드라마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미디어가 약자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특정 계층을 묘사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편견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한 사람의 일탈이나 잘못된 행동을 그가 속해 있는 계층 혹은 집단의 특징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미디어의 재현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특별’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96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