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고요하다. 창으로 드는 햇볕이 창가에 머물러 있던 한기를 중화시키는 아침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잔을 들고 주방 창가에 놓인 뮤렌베키아 아실라리스와 눈을 맞춘다. 요즘 들어 줄기와 이파리가 갈색으로 변하고 버석해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을 주고 해가 드는 창가에 놓아주어도 버석거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실라리스와 눈을 맞추고 나면 거실 장식장에 놓인 취설송과 커피나무 상태를 확인한다. 현관에 있는 스킨답서스는 외출할 때 외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취설송은 이번 여름에 집에 들였다.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고 잘 죽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는 식물이라고 했다. ‘누구나 쉽게’라는 말에 두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취설송을 안고 왔다. 지금은 손가락 반 마디 더 자랐다. 작고 이쁜 녀석이 제법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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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신경 쓰는 녀석은 커피나무다. 커피나무를 키우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에 만난 커피나무는 집 앞 카페 사장님이 키워 보라며 컵에 담아 준 두 그루였다. 같이 받았지만 한 녀석은 쑥쑥, 다른 한 녀석은 아주 더디게 자랐다. 4년이 지나자 두 녀석 모두 10살쯤 된 아이 키만큼 컸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잘 자란 녀석들이 뿌듯했다. 잘 자란 것도 고맙지만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열매 맺는 모습을 보는 거였다.

그해 여름, 새로 이름 모르는 식물 하나를 들였다. 어머니가 이모에게 받아온 식물이었는데 아마도 병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파리에 하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얀 반점은 옆에 있던 커피나무에도 생기기 시작하더니 결국 커피나무 두 그루 모두 죽어버렸다. 어머니가 품에 안고 온 이름 모르는 식물은 병을 이겨내고 여전히 어머니 거실 한쪽에서 잘 자라고 있다.

그때 가슴을 졸이게 했던 또 다른 녀석이 있었는데 나란히 놓여 있던 수국이었다. 약하디약한 녀석이기 때문에 죽게 될 거라고 체념하고 있었다. 수국은 남쪽 지방에서 올라왔다. 수국만 전문으로 키운다는 화원에 주문해 받았다. 거실 가득 수국으로 채울 생각으로 꽤 많이 샀다. 수국이 처음 집에 배달 되었을 때 먼 여행길에 힘들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분갈이 때 영양제를 주었더니 몽땅 죽고 저 녀석만 이파리 몇 장 겨우 붙은 채 버텼다. 죽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년을 견디고 준비해 장하게도 3년 만에 처음 꽃피웠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름 모를 식물 때문에 죽게 될 거로 생각하니 마음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났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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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가 안절부절못하던 사이에 수국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작년에 보았던 하얀 꽃이 아니라 연두색 꽃. 이파리인지 꽃인지 구분되지 않아 긴가민가하며 보게 되는 연두색 꽃. 수국은 지금도 어머니 집 거실에서 연두색 꽃을 피우며 잘 자라고 있다. 벌써 우리 집에 온 지 10년이 되었다. 10년 사이 꽃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하얀색으로 변하더니 이젠 연두색으로 예쁘게 피고 있다. 수국을 걱정했던 것은 괜한 기우였다. 여전히 키도 작고, 줄기도 볼품없이 가늘고, 꽃도 작지만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다. 제 모양대로, 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시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다. 5년을 키운 커피나무가 병들어 죽는 것을 보며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커피나무를 집에 들였다. 다시 식물은 키우고 싶은데 키울 자신은 없어 꽃가게 앞에서 매번 구경만 하고 돌아섰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카페 바로 옆에 꽃집이 있었다. 그날도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 기분도 전환할 겸 꽃집에 들렀다. 커피나무 앞에 한참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꽃집 주인이 말했다. 데리고 가세요. 내가 커피나무를 키우다 죽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없다고 하니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은 관심을 주지 말아요. 너무 많은 관심을 두면 죽어요. 그냥 스쳐 지나가듯 보고 가끔 인사해줘요.”

꽃집 주인의 조언에 따르고 있다. 물은 흙이 마르면 주고, 이파리가 강아지 귀처럼 처지면 아주 듬뿍 물을 준다. 사실 집에 있는 식물의 이름은 잘 모른다. 집에서 키우는 것 중 커피나무만 이름을 안다. 뮤렌베키아 아실라리스, 취설송, 스킨답서스는 글을 쓰기 전에 인터넷에서 급하게 알아보았다. 아실라리스는 넝쿨 식물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취설송은 손톱만 한 분홍색 꽃이 꽃대 끝에 피어있는 아주 예쁜 선인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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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소란하다. 오랜 시간 녀석들을 모른 척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름이 있든 없든 집에 들이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돌보지 않으면 죽는다. 까다롭고 예민한 대상일수록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른 척하는 노력, 관심을 덜 주는 노력,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노력. 

식물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다.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물도 자기 이야기가 있다. 식물은 나만의 속도로 시간을 보내며 경험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고요 속에, 조용히. 식물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단단하다. 나는 그냥 스쳐 지나가듯 본다. 너무 많은 관심을 두면 죽어요, 라는 말을 명심하며.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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