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은 ‘칼을 뽑아 들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전작인 <나이브스 아웃>에서는 할란의 가족들이 할란의 유언으로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게 된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를 비난하며 몰아붙일 때 사용됐다. 거실에 거대한 칼 장식품이 살인 현장에 있었고 칼이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됐으며, 작품 내적으로 다양한 혐오의 칼끝이 향하는 방향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주제와도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 이미지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 이미지

라이언 존슨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즈의 2탄인 이번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에서 ‘나이브스 아웃’을 빼고 ‘글래스 어니언’만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왜 감독이 그런 의견을 냈는지 공감하게 된다. 이 작품이 성공적인 전작의 시리즈물이라는 정보를 빼면 나이브스 아웃이라는 단어가 가진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투명하고 직관적으로 오직 글래스 어니언에만 충실하다.

글래스 어니언(Glass Onion)은 직역하면 유리 양파다. 실제 유리로 된 양파가 아니라, 18세기에 선원들이 갖고 다니던 물통이 양파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사어(死語)처럼 존재하던 단어를 살린 건 그룹 비틀즈다. [White Album]에서 자신들의 가사를 과대 해석하는 평론가들을 비웃기 위해 의미 없는 문장들로 가득 채운 곡 ‘Glass onion’이 바로 영화의 모티브다. 의미 없는 단어라고 했지만 에게 연안에서 2시간 동안 펼쳐지는 활극을 살펴보면 양파(Onion)와 글래스(Glass)보다 이 영화를 잘 설명할 소품은 없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 이하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 이미지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 이미지

양파처럼 알맹이 없는 성공담

우선 양파를 떠올려보자. 과육을 벗겨내고 벗겨내면 결국 껍질만 남는다. 알맹이 없음이 양파의 본질이다. 마일스 브론(에드워드 노튼)이 바로 양파 같은 인물의 전형이다. 천재라는 명성과 달리 친구들을 휴가지로 초대하는 퍼즐, 섬에서 탐정놀이로 풀려던 시나리오는 모두 외주 제작이다. ‘붕괴자들’이라는 자신의 성공철학과 신념을 말할 때조차 틀린 단어를 남발한다. 세계적인 IT기업인 알파는 공동창업자인 앤디(자넬 모네)의 청사진과 추진력으로 시작됐다. 추앙받지만 막상 까보면 아무것도 없는 이 사람은 급기야 유리로 만든 거대한 양파 모양의 집을 지어놓고 산다.

사회적 이슈를 녹여내는 블랙코미디가 강한 시리즈답게, 마일스는 현실의 여러 인물을 강하게 투영한 것처럼 보인다. 워즈니악의 아이디어를 훔친 애플의 스티브 잡스, 법정 끝에 페이스북 공동창업자를 쫓아낸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끝없는 부의 과시와 기행을 일삼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까지. 세계적인 기업을 이끌고 존경받기도 하지만 실체를 살펴보면 지극히 이기적이고 추악하기도 한 이중적인 모습들이다. 끝까지 까봐야 결국 눈물만 나는 양파처럼 이들의 그럴듯한 성공담은 성공한 이후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

반면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주어진 단서로 범인을 찾는 보드게임 클루(Clue)에 흥미가 없고, 무작정 범인을 찾는 온라인 마피아 게임인 어몽 어스(Among Us)에 소질이 없다는 설정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배경, 동기, 반응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 실제 사건 현장의 베테랑인 블랑에게 클루나 어몽 어스는 시시한 장난처럼 보일 것이다. 이를 바꿔 생각하면 성공한 원인도 분석이 어렵다는 뜻과 같다. 하나의 성공방정식만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눈물이 나도록 따끔한 일침을 날린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 이미지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 이미지

유리처럼 투명한 의지의 승리

유리는 시리즈가 강조해온 테마와 맥을 같이 한다. 영화는 탐정물을 표방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범인 찾기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투명할 정도로 순순히 진실의 파편들을 펼쳐놓는다. 1편은 시작하자마자 범인이 밝혀지기 때문에 오히려 범인을 감추기 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2편에선 마일스가 비싼 돈을 들여 친구들과 함께 풀기 위해 만든 시나리오를 블랑이 바로 파훼해버리는 탓에 중반이 지나도록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범인과 그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기는 수사물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는지 밝히는 법정물에 오히려 가깝다.

앤디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중요하지 않다. 마일스가 섬에 초대한 친구인 ‘붕괴자들’은 어디 하나 좋은 구석을 발견하기 어려운 인간 말종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용의자들이 대변한 캐릭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해자는 직업윤리를 지키고 친구와의 신의를 지키려 한 기업인이었다. 그를 죽인 건 부패한 기업가와 그와 결탁한 정치인, 평판을 남용하는 유명인, 직업윤리를 잊은 과학자다. 타락한 정치-경제-사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성실한 사회인의 목숨을 빼앗아 간 사건이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에서 그려진다.

그래서 블랑은 사건의 해결사로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듣고도 초대를 받아들여 섬에 들어오고 직접 발로 뛰어가며 증거들을 수집하고 끝내 마일스의 집을 날려버린 헬렌이다. 고전적인 추리극이 탐정과 범인의 대결을 그렸다면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피해자가 탐정의 도움을 받아 범인에게 직접 철퇴를 내리치는 구조로 짜여있다. 영웅주의적 시각을 탈피하고 무수히 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주인공으로 설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투명하고 숭고한 의지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