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우리 시대의 신화다. 두 축구 영웅은 지난 15년 간 세계 축구계를 통치했다. 호날두가 첫 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한 2008년부터 20022년까지, 메시가 일곱 번 호날두가 다섯 번, 두 선수는 발롱도르를 열두 번 주고받으며 독식했다. 그들의 골 기록과 커리어는 독보적이었고 동시대에 제삼자가 범접하는 것을 용납지 않았다. 한국 축구 팬들이 둘을 묶어 ‘천상계’라는 속어로 일컬은 것처럼, 메시와 호날두의 라이벌리는 신들의 전쟁처럼 형용되었고 전 세계에 종교적 숭배자들을 낳았다. 언젠가 해외에선 친구끼리 메시와 호날두 중 누가 최고인지 논쟁하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까지 있었다. 이 라이벌리가 한국 ‘해축’(해외 축구) 커뮤니티 문화로 번안된 용어가 ‘메호 대전’이다.

카타르 월드컵 8강 모로코와 경기에서 포르투갈 대표팀 호날두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카타르 월드컵 8강 모로코와 경기에서 포르투갈 대표팀 호날두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지난주 카타르 월드컵 8강에서 포르투갈이 탈락하고 호날두가 서럽게 울면서 퇴장하는 모습이 화제를 불렀다. 영상에 달린 주된 댓글은 “한 시대가 끝나는 것 같아 기분이 착잡하다”였다. ‘메호’는 한국 해축 팬들의 일이십 대를 수놓은 존재다. ‘해버지’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한국인들이 애국심에 의거해 해외 축구에 입문하는 포탈을 열었다면, 메시와 호날두는 압도적인 아우라로 보편 문화로서의 해외 축구가 향유되도록 사람들을 매혹했다. ‘메호 대전’은 해외 로컬 스포츠 리그가 글로벌 시대의 그물망을 타고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로컬 문화로 소비된 사례다. 디씨 인사이드 해축갤에서 벌어진 ‘메호 대전’은 한국 온라인 팬덤 대결 문화에 견본이 되는 양식을 제공하며 악플 생태계에 영향을 끼쳤을 정도다.

호날두가 퇴장한 자리엔 메시가 혼자 남아있다. 아르헨티나는 4강에서 크로아티아를 꺾었고, 월요일 자정 프랑스와 결승전을 벌인다. 이번 월드컵은 메시와 호날두의 마지막 월드컵이란 점에서 관심을 불렀고, 올 시즌 소속팀에서 거의 출전하지 못하며 기량이 수직 하락한 호날두보다 메시의 마지막 도전이란 점에 더 초점이 쏠렸다. 대회 기간 자주 들먹여진 말, 이른바 ‘라스트 댄스’다. 이건 재작년 공개된 마이클 조던의 다큐멘터리 ‘THE LAST DANCE’를 통해 각인된 표현이다. 농구계의 G.O.A.T(Gratest Of All Time) 마이클 조던에 비견될 만한 축구계의 ‘메시아’가 생애 마지막 무대에서 과연 조던처럼 모든 것을 거머쥔 채 대미의 드라마를 쓸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 것이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로이터=연합뉴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로이터=연합뉴스]

호날두보다 메시의 라스트 댄스가 화제가 된 건 메시가 호날두보다 G.O.A.T에 근접한 존재란 뜻이기도 하다. 10년이 넘도록 경쟁해 왔지만, 호날두는 메시 시대의 이인자였다. 이 차이는 외모와 성품, 플레이 스타일 모든 면에서 대조되는 둘의 특징과 맞물려 강한 캐릭터성을 이룬다. 메시는 타고난 천재고 호날두는 노력으로 대성했다. 호날두는 터미네이터 같은 근육질에 과시적인 성격이지만 어깨가 유난히 좁아서 남성성이 팽창하다 수축되는 듯한 기묘한 인상이 든다. 메시는 서너 명을 아무렇지 않게 제치고 골을 넣는 스펙터클한 플레이를 부리지만 작은 키에 내성적인 성격이다. 이는 능력을 갖춘, 사회성 없는 소년 같은 천재에 관한 어떤 통속적 이미지를 불러온다. 한국 팬덤이 붙인 둘의 별명이 ‘우리 형’이란 동경의 뉘앙스와 ‘메찐따’ 같은 하찮은 뉘앙스를 품은 건 각각 그런 이미지의 반영이다.

메시와 호날두의 축구 인생은 저마다 결핍의 역사로 파여 있다. 호날두는 탐욕스러운 성취욕으로 기계처럼 훈련하는 자기 관리의 화신이지만, 메시라는 천장에 막혀 상승 의지가 현실화되는 것을 봉인당했다. 메시를 넘어설 가능성이 아직 꺼지지 않았던 때에는 그 야망이 강렬한 자기계발 서사로 회수되었지만, 나이를 먹고 가능성이 닫혀 버린 후에는 갈 길 잃은 에고가 무절제하게 분출되기 시작했다. 레알 마드리드 말년부터 유벤투스를 거쳐 올 시즌 맨유에 이르기까지 각종 팀워크 파탄과 이기적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른 건 좌절된 야망이 야욕으로 타락한 현실이다. 이미 최고의 반열에 오른 선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초조함과 열등감은 어깨가 좁은 특유의 신체 이미지를 통해 비루함이란 수식어를 빚어낸다.

메시의 경기 모습 [AP=연합뉴스]
메시의 경기 모습 [AP=연합뉴스]

호날두의 결핍이 메시를 향한다면 메시의 결핍은 스스로를 향한다. 20대 초반에 불세출의 퍼포먼스로 클럽 축구 역사의 정점에 섰지만 국가 대표팀에서의 여정은 실패의 기록이었다. 19살에 처음 출전한 프랑스 월드컵은 좋은 경험이었겠지만, 전성기에 나간 남아공 월드컵 탈락은 허무했고,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패배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쓰라린 기억이 됐다. 이후 한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모두 실패했고 메시는 2016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국가적 만류로 번복했다. 같은 시기 소속팀 바르셀로나에서도 해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참사를 겪었다. 메시의 말년엔 그 자신과 자신이 입은 유니폼으로 대표하는 이들의 절망이 퇴적된 한이 서려 있다. 호날두의 결핍이 야망에 찬 축구 영웅의 노추를 지켜보는 착잡함을 준다면, 메시의 결핍은 하늘이 총애하는 사람조차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만은 가질 수 없다는 숙명이 빚는 비애감을 띤다.

35살의 메시가 기나긴 숙명에서 해방된 건 지난 코파 아메리카다. 젊은 명장 스칼로니가 팀을 정비하며 아르헨티나는 강해졌고, 꿈에서도 염원했을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메시는 몸을 떨며 눈물을 쏟았다. 오래도록 지연된 성취였기에 감격은 깊고 격했다. 메시는 오는 월요일 마침내 필생의 숙원을 만나러 간다. 최후의 미션 월드컵 우승마저 이룬다면 메시는 펠레와 마라도나를 넘어섰다고 공인받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온 이상 가능하다면 보고 싶다.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가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모습을. 메시가 추는 마지막 춤의 춤사위를. 축구란 스포츠가 발명된 후 백오십 년 이래 최고의 선수가 탄생하는 축구사적 개기일식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는 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만의 역사적 특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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