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대법원이 '유서대필 누명'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 씨가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원심이 인정한 국가배상 범위에 더해 검찰의 위법수사도 국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연합뉴스가 대법원 판단과 정반대인 기사를 송출했다. 오보인 셈이다. 

1991년 5월 8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서강대학교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검찰은 김 씨의 친구였던 강 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며 기소했고, 강 씨는 자살방조 혐의로 징역 3년 자격정지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유서 대필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 씨. (사진=연합뉴스)
유서 대필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 씨.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유서의 필체가 강 씨가 아닌 김 씨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이 혼자 유서를 감정하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심의했다고 위증했으며 검찰이 강압 수사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강 씨는 지난 2015년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강 씨는 지난 2015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31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 법원은 필적 감정 위법 부분에 대해서만 국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벌어진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장기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강 씨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30일 대법원은 검찰의 강압수사 등 수사과정에서의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국가배상책임을 다퉈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유서 대필 사건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조작 의혹 사건에 해당하므로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개별 위법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청구에 관하여는 장기소멸시효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검찰의 불법적인 수사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강 씨는 더 많은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연합뉴스 사옥 (사진=미디어스)
연합뉴스 사옥 (사진=미디어스)

대법원의 강 씨 국가배상 소송 판결은 30일 언론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러나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가 대법원 판결과 정반대의 제목을 달아 속보를 송출해 다수 언론이 혼란에 빠졌다.

연합뉴스는 <[1보] 대법, '유서대필 누명' 강기훈 국가배상 인정한 원심 파기>라는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는 속보 형태의 기사를 송출했다. 연합뉴스 보도가 나오자 MBN, 브릿지경제, 한국경제, 매일경제, 데일리안, 미디어펜 등이 연합뉴스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반면, 연합뉴스 1보보다 2분 늦게 속보를 낸 민영통신사 뉴스1은 <[속보] '강기훈 유서대필 누명' 파기환송…대법 "소멸시효 완성 안 돼">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2보도 사실과 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연합뉴스는 "대법원이 '유서 대필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했다"며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가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썼다. 데일리안, 매일신문이 연합뉴스의 2보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작성했다.

연합뉴스 1보와 2보만 보면, 대법원이 국가배상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해 강 씨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국가배상을 더 해야 한다는 취지다.

독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유서대필 누명' 사건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정치권 관계자는 "연합뉴스 1보와 추종보도들을 보고 대법원이 왜 저런 판단을 내렸는지 안타깝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나중에 나온 기사들을 보니 파기환송의 취지가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유서 대필 누명 사건 관련 보도. (사진=네이버 캡처)
30일 오후 유서 대필 누명 사건 관련 보도. (사진=네이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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