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아이돌 팬들의 활동무대가 ‘팬 플랫폼’으로 옮겨 가고 있다. 팬 플랫폼은 아이돌과 관련된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소통과 커뮤니티 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하는 모바일 기반 공간을 의미한다. 팬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공식 홈페이지, 포털 사이트의 카페, 사회관계망 서비스, 커뮤니티 사이트 갤러리/게시판 등 여러 채널로 분산돼 있던 기존의 팬 활동을 한데 모은다는 점에 있다. 팬 모집·관리부터 공지, 자체 콘텐츠 유통, 굿즈 판매, 이벤트 예매, 팬과 스타 간 소통 및 팬들 간 소통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팬 활동이 팬 플랫폼으로 이뤄진다. 팬 플랫폼에서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계정을 구독하고, 관련 소식이나 콘텐츠에 반응하며, 아이돌과 직·간접적으로 음성이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국내 대표 팬 플랫폼은 위버스(Weverse), 버블(Buble), 유니버스(Universe)다.

위버스, 디어유 버블, 유니버스 로고 이미지 (출처=각 홈페이지)
위버스, 디어유 버블, 유니버스 로고 이미지 (출처=각 홈페이지)

BTS 소속사인 하이브 산하의 ‘위버스’는 규모를 내세운다. 매출액, 가입자 수, 월 방문자 수 면에서 1위를 자랑한다. 위버스가 규모를 내세울 수 있는 배경에는 아이돌 파워와 커머스가 자리한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K팝 아이돌인 BTS의 영향이 크다. 그 밖에도 세븐틴, TXT, 블랙핑크 등의 인기 아이돌이 연달아 입점하며 세를 키웠다. ‘위버스샵’이라는 별도의 커머스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상품 판매, 이벤트 예매 등의 소비활동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규모 확장의 비결이다. 여기에 V라이브 서비스까지 내재화하며 최고의 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리슨의 ‘버블’은 아이돌과 친근하게 관계 맺고,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 무게중심을 둔다. 아이돌 한 명당 정해진 돈을 내면, 아이돌과 소통을 하게 될 뿐 아니라 해당 아이돌과의 기념일이 설정된다. 팬이 사전에 이름을 정해놓으면, 채팅방에서 아이돌이 해당 이름을 불러주기도 한다. 친구나 애인처럼 아이돌과 팬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차별점인 셈. 아이돌 라인업도 만만치 않다. 디어유의 모회사 SM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JYP엔터테인먼트, 젤리피쉬, FNC 등 거대 엔터테인먼트사(이하 ‘엔터사’) 소속 아이돌들이 입점해 있다.

후발주자인 ‘유니버스’는 게임사 엔씨소프트가 그간 쌓아왔던 기술력과 노하우를 적극 접목한다. 2021년 1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다운로드 수 1,000만 건을 넘기고, 월 방문자 수 330만 명을 기록한 것도 그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입점 아이돌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무엇보다 인기가 많은 서비스는 ‘유니버스 오리지널’이다. 아이돌이 참여한 뮤직비디오, 예능, 화보 등을 독점 제공한다. 가상재화인 ‘클랩(KLAP)’을 통한 게임화 모델을 활용한 것도 눈에 띈다. 입점 아이돌의 앨범이나 굿즈 구매, 유니버스 멤버십 구독, 기타 플랫폼 내 활동 등을 통해 클랩을 모으게 해, 여러 이벤트에 참여할 권한을 부여하는 식이다.

다른 무엇보다 팬 플랫폼이 지닌 강력함은, 아이돌과 팬이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팬 플랫폼에서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구독하고, 그들과 자유롭게 댓/글이나 프라이빗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적어도 플랫폼 안에서 더 이상 아이돌은 손이 닿지 않는 존재, 환상의 존재가 아니다. 아이돌의 환상을 가르고 나오는 친밀감이 팬들에게 셀링 포인트가 되고, 아이돌-팬 간 관계는 팬 플랫폼을 매개로 전에 없이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팬 플랫폼의 인기와 영향력이 커질수록, 기존에 팬이 모이던 곳들의 인기와 영향력은 줄어들 확률이 높다. 대부분 팬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운영돼왔던 무료 팬 커뮤니티가, 산업자본이 만든 유료 기반 플랫폼에 흡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팬덤 무대의 이동과 통합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팬덤 안에서 이뤄져 왔던 다양한 주체들 간 커뮤니케이션의 방식과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아이돌 기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루는 세 중요주체인 엔터사, 미디어, 그리고 팬덤은 때론 서로 경쟁하고 또 때론 의존하며 산업과 문화를 유지·확장시켜왔다. 위버스가 하이브의 자회사인 위버스 컴퍼니에서, 리슨이 SM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디어유에서 개발·운영하는 데다, 유니버스가 다양한 엔터사와 제휴를 맺고 있음을 고려하면, 팬 플랫폼은 셋 중 엔터사와 미디어가 결합하거나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엔터사는 팬 플랫폼을 통해 연예를 ‘기획’하고 ‘매니지먼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생산·유통하는 수단을 소유하고, 네트워크 환경을 적극 활용한 사업을 벌인다. 이용자가 모이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판매 가능한 요소로 채움으로써 수익을 올린다. 아티스트들이 직접 생산하거나 그들에 관련된 공식 정보와 콘텐츠를 배타적으로 소유·유통한다. 이용자가 공간의 이용과정에서 남긴 데이터와 창작물을 내부자본화해 통제·활용하기도 한다.

'최애' 멤버와 더 가깝게…K팝 성장 이끄는 팬 플랫폼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최애' 멤버와 더 가깝게…K팝 성장 이끄는 팬 플랫폼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하지만 이는 기존 엔터사의 사업방식이라기보다는, 상업화된 인터넷 환경에서 미디어 플랫폼사들이 써먹어 온 사업방식에 가깝다. 물론 이 새로운 사업방식의 중심에는 엔터사가 있다. 플랫폼사는 여러 사업자들의 정보나 콘텐츠를 모아 제공할 뿐, 정보/콘텐츠 회사가 아니다. 유튜브가 직접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게 아니듯, 팬 플랫폼도 직접 아티스트 정보/콘텐츠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들을 만드는 주체는 엔터사다. 기본적으로 플랫폼사는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한다. 입점사에게는 체계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이용자에게는 편안한 이용 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이 대부분의 플랫폼사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렇다고 팬 플랫폼사를 단순히 기술만 지닌 회사라고도 보긴 어렵다. 언급했듯, 엔터사와 소유·운영 차원에서 밀접하게 관련되는 데다, 플랫폼 자체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팬덤에 큰 영향을 미치며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기술기반 사업자라는 점은, 기술이 궁극적으로 결합하는 대상이 정보도 콘텐츠도 아닌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점과 연결된다. 사이버스페이스에는 국경도 국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사이버 스페이스에 비즈니스 영역을 두고, 공간의 제한 없이 활동영역을 확장해간다. 그렇게 사이버 스페이스와 글로벌 자본주의가 합쳐진 결과가 플랫폼이다. 팬 플랫폼은 K팝의 수출 혹은 한류 확산 전략과 맞물려 전 세계 팬들을 끌어모으고 그 팬들의 지역기반을 지운다. 엔터사 차원의 공지사항이나 아티스트의 메시지는 자동 번역돼 팬들에게 다가간다. 그 내용들은 대체로 무국적적이고 균질하다. 한국발 팬 플랫폼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지만 한국적 정체성과는 관련이 적다는 것이다. 실제 아티스트가 현실공간에 존재하기에 출연 동/영상이나 활동하는 모습이 무국적성을 띠기 어렵다면, 정보가 오가고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가상공간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스크린 안에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그야말로 마법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기술적 문제나 아티스트 본인의 사정 등으로 인해 플랫폼 내 모든 활동을 동/영상 기반으로 이뤄지게끔 만드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주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문자나 음성이라는 점은 팬 플랫폼이 사이버 스페이스로서의 특성을 십분 살려 글로벌 사업전략을 펼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 플랫폼이 만드는 사이버 스페이스의 한 축에 일단 고객사들이 입점하고 나면, 나머지 한 축을 채우는 주체로서 이용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팬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아티스트들이 업로드하는 문자·음성 메시지, 동/영상, 이모티콘 등은, 그것을 보기 위한 팬들을 끌어모은다. 얼핏 만인에게 개방된 것처럼 보이는 이 사이버 스페이스는, 팬의 참여가 없다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팬들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플랫폼이 마련한 장(場)에 참여하지만, 이는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빈 한쪽을 채우면서 팬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참여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는 (설사 작성이 아니라 열람만 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나 빈도, 내용 수준을 떠나 팬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경제적 가치를 낳는 근간이 된다.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팬질 자체가 행위적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으로 바뀌는 셈이다.

팬이 오히려 돈을 내면서까지 플랫폼을 위한 일을 해주는 이유는, 당연히 아티스트와의 밀접하거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그 기회는 온라인 기반 사이버 스페이스이기에 가능하다. 온라인 공간은 작가라는 기존의 특권계급만이 아니라, 만인에게 현대인의 자아와 한 몸이라 할 수 있는 자기표현의 기회를 주었다. 자기표현의 민주화는, 자기표현을 무상이나 저가노동에 의한 콘텐츠 제작으로 전환시키는 플랫폼의 성립기반을 제공했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유형의 가치를 창출하는 무형노동에 사람들을 무상/저가노동자로 참여시키기 위해 ‘주체성’이나 ‘자기표현’을 동기부여의 수사로 빈번하게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개인의 욕구가 플랫폼의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태계 형성에 복무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팬은 플랫폼의 안과 밖에서 플랫폼에 의해 주체성을 갖춘 소비자로서 표현(댓/글 작성, 구매 등)할 것을 요청받는다. 설사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나 플랫폼의 표현 요청(푸시 알림 등)에 반응(댓/글 열람, 이모티콘 전송, 하트 표시 등)하도록 유도 당한다. 이처럼 팬 플랫폼은 팬의 욕구를 자극하고, 그 욕구를 빨아들이기 쉽도록 접근성을 높이며, 그것이 잘 드러나고 또 반응을 얻을 수 있게끔 만든다.

위버스, 디어유 버블, 유니버스 앱 이미지
위버스, 디어유 버블, 유니버스 앱 이미지

팬 플랫폼은 팬들을 직접 모집하고 관리한다. 기존에도 팬 커뮤니티와 연계하거나 엔터사가 직접 팬을 모으고 관리하긴 했지만, 여러 채널로 분산돼 있는 팬들을 일괄적·체계적으로 관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 팬 플랫폼(과 함께하는 엔터사들)은 팬들을 전보다 구체적인 집단으로 상상하고, 훨씬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 그 근간에는 이용자 데이터의 내부자본화가 자리한다. 기술기반 엔터사로서 팬 플랫폼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플랫폼 구축 및 운영 전반에 활용한다. 데이터는 새로운 기술의 일부이면서 다른 기술들을 작동하게 하는 근간이다. 수많은 이용자들의 다양한 데이터가 팬 플랫폼에 축적된다. 이용자 데이터는 크게 구조화된 데이터와 비구조화된 데이터로 이뤄진다. 전자는 변하지 않는 것들, 명확하게 정의되고 검색되고 분석돼오던 것들로, 성별·연령·지역 등을 포함한다. 후자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하는 것들이며, 대체로 이용을 통해 발생하는 데이터(이용시간·양·횟수·위치, 이용습관 등)를 말한다. 축적된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고 그 안에서 의미를 캐낼 때 쓸모가 발생한다. 팬 플랫폼도 다른 대부분의 미디어 플랫폼처럼 이용자들의 욕구나 경향 변화를 포착해 적절한 콘텐츠나 상품, 서비스 등을 제공·추천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한다.

엔터사는 플랫폼과의 결합/연결을 통해 탑-다운 방식의 새로운 사이버 스페이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팬 활동 전반을 펼치게끔 기획한다. 팬들은 그 커뮤니케이션 완성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에도 (금전적) 보상을 얻지 못하고, 엔터사 또는 팬 플랫폼사는 이전에 여러 팬 커뮤니티를 통해 분산돼 있던 정보의 생산·유통구조를 독/과점하면서 팬들을 모으고 관리할 힘을 획득한다. 아티스트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그리고 심지어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곳에서 자기표현 기회를 얻기 위해 팬은 플랫폼 안에서 활동하고 커뮤니케이션하지만, 그럴수록 플랫폼의 내용물이 두둑해지고 산업자본만 수익을 올릴 뿐이다. 결국 팬 플랫폼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를 만드는 대표기반이자, 앞에서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아티스트-팬(들), 팬-팬(들) 사이를 다면적으로 상호중개해 그들의 욕망을 부추기면서, 뒤에서는 팬들의 활동과 비/물질 자원을 흡수해 자본가치화 하는 신종 시장모델인 셈이다.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의 신종 시장모델로서 팬 플랫폼이 팬에게 영향력을 확산해가는 과정은, 특히 기술이 영향력을 확산해가는 자본주의 안에서 모든 종류의 사물이나 행위가 명시적으로 판매되지 않음에도 수입창출 자원이 되는 ‘자산화’로도 이해 가능하다. 자산화의 흐름에서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자산이다.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 하에서 팬들의 감정, 욕구, 표현, 데이터 또한 산업자본의 통제와 소유를 위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자산에 다름 아니다. 자산이 기획되고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감정‧욕구‧표현‧데이터뿐 아니라 팬들이 갖고 있고 만들어내는 무엇이든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전환된 자산을 기술로 구현된 특정 공간에서 사고팔 수 있지만, 핵심은 그것을 사고팖으로써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고팔 수 없던 것의 자산화를 매개로 경제적 차원의 임대료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 내 자산화는 새로운 수익원으로서 팬덤 자산의 형성, 그리고 그에 대한 통제와 소유를 가능하게 하며, 그 중심에는 팬 플랫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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