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승우 칼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비판, 논란이 뜨겁다. 이를 좀 더 생산적인 논의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와 시민·언론단체의 입장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지녀야 할 시각

이태원 참사는 정부가 적극 지원 육성하는 관광특구에서 벌어져 내외국인 3백여 명이 죽고 다친 사건으로 국제적인 관심사는 물론 국격과 직결되는 성격을 지녔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서울, 부산, 인천, 대전 등 13개 시도에 34개소의 관광특구가 지정되어 있다.

관광특구는 시장‧군수‧구청장의 신청에 따라 시‧도지사가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 촉진 등을 위하여 관광 활동과 관련된 관계 법령의 적용이 배제되거나 완화되고, 관광 활동과 관련된 서비스‧안내 체계 및 홍보 등 관광 여건을 집중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는 지역으로 관광진흥법에 따라 지정된 곳을 말한다.

관광특구가 갖추어야 할 요건에 ▲외국인 관광객 수가 10만 명(서울특별시는 50만 명) 이상일 것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관광안내시설, 공공편익시설 및 숙박시설 등이 갖추어져 외국인 관광객의 관광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역일 것 등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관광특구 진흥을 위하여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관광특구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편리한 관광 활동을 위하여 관광특구 안의 문화‧체육‧숙박‧상가시설로서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시설에 관광진흥법에 의거해 관광진흥개발기금을 대여하거나 보조할 수 있다.1)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모습 (서울=연합뉴스)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모습 (서울=연합뉴스)

이태원 관광특구에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은 외국 관광객이나 그들의 소속 국가에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한국 정부가 관련법에 따라 지원을 일상화하고 있는 장소에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점을 주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참사는 국가 간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외국인 유가족이나 그 소속국가에서 윤석열 정부의 후속 조치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윤석열 정부도 이 점을 주목해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참사 직후 윤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 국무총리의 발언과 태도였다. 정부의 핵심적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행사 주체가 없었고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범죄학에서 주장했던 ‘피해자 사건 유발론’이 고개를 들면서 ‘피해자가 그런 곳에 간 것이 실수였다’는 식의 여론이 발생할 소지를 제공했다. 희생자 명단 공개를 놓고 인터넷 악플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유가족 등에게 피해를 준다는 식의 논리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 원인 제공의 원천적 책임은 현 정부에게 있다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 등이 뒤늦게 ‘사과’ 등의 발언을 했지만 그것은 참사에 대한 경찰 수사 가이드라인이 용산경찰서 등 현장 실무책임자나 안전관리에 직접 책임이 있는 일선 관리에 국한한다는 식으로 제시된 상황이어서 문제의 소지가 컸다. 정부가 관광특구에서 발생한 참사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는 태도를 처음부터 밝혔어야 했지만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국가 애도기간이 끝난 뒤 피해자 명단 공개 여부를 놓고 정부 여당이 ‘패륜, 정치적 악용’ 등의 용어를 앞세우고 있는데 이를 참사 피해자 소속 국가 등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는 국제적인 관심사가 된 사회적 현상의 하나다. 이 현상 속에 발생된 희생자는 공적 사건의 일부로 그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정부가 사태의 실상을 알리는 작업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일괄 발표하느냐 하는 등의 형식은 전혀 의미가 없다. 피해자의 시각에서 충분하다고 여길 만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언론‧시민사회의 비판 입장

일부 언론이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고 정의구현사제단도 '희생자 명단 공개'에 합류하면서 정치권, 언론 및 시민단체 등에서 ‘유족 동의 없는 공개는 법적으로 문제’, ‘무도한 폭력’, ‘헌법‧국제인권법 위반’, ‘재난보도준칙 위반’ 등의 비판이 크게 일고 있다. 이런 논란이 발생한 배경 상황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의 참사 진상규명 작업에서 혼선이 크게 빚어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먼저 수사 혼선이다. 특별수사본부가 용산소방서장을 입건하자 소방노조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고발하는 등 공권력 조직 내부에서 이태원 참사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에 혼란을 드러내고 있다. 특수본이 용산경찰서와 용산소방서, 용산구청을 중심으로 집중수사를 하고 있지만, 행안부 관계자는 지금껏 한 명도 사건과 관련해 거명되지 않았고 압수수색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탄의 대상이 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자리 유지하며 수습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대통령도 여러 시그널을 통해 그런 방향을 공개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실은 참사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을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이런 태도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참사 책임을 규명하면서 정치적 책임 등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시민사회와 언론의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비판의 경우 그동안의 경과 등 전체 맥락 속에서 차분히 점검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은 “모든 사람은 헌법 제10조, 제17조, 제37조 제1항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보장 받는다.”는 논리로 희생자 유가족의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한 것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민변은 특히 ‘희생자 유가족이 합치된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유가족의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남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에 대한 정보사용에 대해 자유롭게 관여할 수 있는 자유나 차별받지 않을 자유를 말하지만 한두 마디로 규정키 어려워 국가나 개인 간에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절대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안전이나 사회 정의가 더 주요할 경우가 그러하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그 적용은 엄격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2) 프라이버시권은 표현의 자유나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민주사회의 기반과 같은 다른 사람의 인권이 실천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3)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피해자 명단이 공개될 경우 발생할 긍정적 측면 또한 예단키 어렵다. 참사 발생 후 현재까지 정부 대응이나 피해자 처우 등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민변이 이태원 참사의 상황적 특수성–정부의 부적절 대응과 그에 대한 비판 급증-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경우 프라이버시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금하다. 실제 민변은 지난 3일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가진 ‘이태원 참사와 정부 대응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국가의 시민안전을 위한 역할과 책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이태원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고, 이로 인해 무려 156명의 고귀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참사 발생 이후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의 책임을 축소하기에 급급했고, 어제 윤희근 경찰청장 브리핑과 112 신고 녹취록 공개를 통해, 경찰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초동 대응에 실패하고 사실상 신고를 방치했다는 점도 확인되었습니다. 예방도 대응도 없었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으로 재발 방지에 나서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이 그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일 핼러윈데이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2일 핼러윈데이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다음으로 언론단체 등이 제기하는 재난보도준칙 위반에 대한 논란이다. 이 준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도 언론의 기본 사명 중 하나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번 명단 공개는 재난보도준칙 제11조(공적 정보의 취급), 제18조(피해자 보호) 및 제19조(신상공개 주의)를 모두 위반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제11조(공적 정보의 취급)의 규정을 살필 때 언론의 책무가 무엇인지도 확실해진다. 이 조항은 “피해 규모나 피해자 명단, 사고 원인과 수사 상황 등 중요한 정보에 관한 보도는 책임 있는 재난관리당국이나 관련기관의 공식발표에 따르되 공식발표의 진위와 정확성에 대해서도 최대한 검증해야 한다. 공식발표가 늦어지거나 발표 내용이 의심스러울 때는 자체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되 정확성과 객관성을 최대한 검증하고 자체 취재임을 밝혀야 한다.”로 되어 있다. 즉 언론이 제 4부의 역할을 할 여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단 제18조(피해자 보호) 및 제19조(신상공개 주의)는 보도 이전에 충분히 참고하고 실천해야 했다.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는 서로의 견해를 경청하는 자세로 차분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인문학적 차원에서 인간은 죽게 되면 사회적 관계 구조에서 영구히 벗어나는 것으로 이는 산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이유도 이에 앞서지 못한다. 특히 정부와 언론은 그 소임을 다 해야 한다.

정부는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소아적 태도가 아닌 국격을 높이는 차원에서 책임 있게 수습해야 한다. 시민단체와 언론도 사회적 소금, 제 4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참사 명단 공개에 대해 비판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나 이 또한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이다.

언론은 전통적으로 부고란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 언론 부고란의 의미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부고란은 그 대상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지하면서 어느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나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등의 경우 매주 부고 페이지를 별도로 발행하면서 고인이 세상에 미친 영향 등을 소개한다. 일부 매체는 부고란에서도 언론이 제 4부의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412129&cid=42094&categoryId=42094

주2) https://www.oaic.gov.au/privacy/your-privacy-rights/what-is-privacy

주3) https://ovic.vic.gov.au/privacy/resources-for-organisations/privacy-officer-toolkit/the-importance-of-priv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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