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서울 한복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코로나19 관련 조치가 사실상 거의 모두 해제된 이후라 인파가 몰릴 것은 충분히 예상됐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재난 예방과 대비에 실패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참사가 발생하면 정부의 대응에 시선이 쏠리기 마련이다. 대통령실의 설명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발생 약 1시간 이후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고 다음날 새벽 1시부터는 비상대응을 주도했다. 사고 발생 13시간 만에 대국민담화를 통해 후속조치도 내놓았다. 대통령이 현장 대응의 어려운 점을 해소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인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는 정부에 대한 신뢰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이번 사고의 경우 사후 조치보다는 예방과 대비가 매우 중요했다는 점이 아쉽다. 대규모 압사 사고의 경우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많은 언론이 이런 경우 ‘골든타임’은 5분도 채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을 보도하고 있다. 때문에 지자체와 경찰의 대비가 적절했는지는 따져볼 수밖에 없다.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부근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편지가 놓여 있다.(연합뉴스)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부근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편지가 놓여 있다.(연합뉴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용산구는 다소 안이했고 경찰도 강력범죄 등에 대비했을 뿐 대규모 인파 통행의 통제 등은 고려하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주최가 명확한 어떤 행사가 열린 것도 아니고 단지 특정 지역에 사람이 많이 몰린 것뿐이라는 점에서 이미 마련돼있는 가인드라인 등이 적용되지 않은 게 아닌가 추측된다.

1차원적 행정 논리로만 본다면 그러한 판단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국민 입장에서 보면 대비가 미흡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월 중순 이후 주말마다 이태원 거리에 대규모 인파가 밀집하는 것은 올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경찰 병력의 전면적 동원이 아니더라도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지역 상인단체 등과의 협의를 통해 자발적으로라도 취약한 골목 등 통행을 통제했다면 이번 사고와 같은 일은 방지할 수 있었다. ‘핼러윈’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상권을 떠받치는 효과로 지자체 역시 유무형의 이익을 본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정이 필요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치안당국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은 피하기 어렵다.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마치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주무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런 식의 책임회피성 발언은 장관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최소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정치권의 태도도 앞으로 국민적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다행히 여야는 정쟁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참사 이튿날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 사태를 촉발한 원인이라고 주장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의 주장은 대표적인 부적절 사례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해 ‘결국 사람이 태어난 게 문제’라는 식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 지자체와 치안당국의 이번 사태 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밀하게 판단해야 할 영역이다. 정치적 구호로 섣불리 제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야당으로서 사태의 원인을 찾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자는 목소리는 얼마든지 낼 수 있고 또 내야 하겠지만, 정쟁적 성격의 슬로건을 들고 나서는 것은 비난만 초래할 것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일이 없느냐는 유행가 가사도 있는데, 일각의 이런 태도를 볼 때 다수의 젊은이들이 원치 않게 세상을 떠난 이번 사태도 결국 정치적 시빗거리의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가는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포털 사이트 댓글로 여론을 파악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겠지만, 어쨌든 지켜보면 이미 정치적 논리는 다 나와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떻게든 참사의 원인을 윤석열 정권이 제공했다고 할 것이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야당이 또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게 뻔하다며 정부 대응을 문제삼는 언론 보도에 야당의 정치적 공세에 발맞추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실려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참사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해외의 사례를 종합해봐도 그렇다. 일부 언론은 ‘후진국형 사고’라는 표현도 쓰고 있으나, 비슷한 성격의 압사 사고는 소위 선진국에서도 일어난다. 참사를 정치적 이해득실의 종속변수로 판단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권도 모처럼 정쟁을 자제하기로 했으면, 지지자들을 진정시키고 참사를 과도한 정치적 대립의 한가운데로 몰아가는 일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면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정치적 대응에 나서는 경우다. 포털 사이트 댓글을 보면 정부 잘못을 따지는 것은 좌파들의 선동이라며 위험한 곳에 간 피해자들을 탓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핼러윈 축제 문화’는 외래의 문화가 상업주의로 변질된 결과라며,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용하기만 했지 시민의식은 길러주지 못했다는 ‘세련된’ 버전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확인했듯, 우리는 그 이유가 뭐든지간에 세계적으로도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이미 갖고 있다. 행정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할 뿐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사회라면, 그 누구도 축제를 즐길 권리를 누렸다는 이유로 사망하는 사고를 당하고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시민적 자유는 그것을 누릴 권리를 정부가 보장할 때에야 실질적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구에게 유리한 얘기든, 그 어떤 경우라도 희생자들의 시민적 존엄을 훼손하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그게 우리가 이 사태를 극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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