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최근 고용노동부가 조선업 노동시장 실태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원청이 4만 1000명, 하청이 5만 2000명으로 이 중 생산직 노동자는 총 7만 1000명이다. 현재 조선업 생산직 노동자 중 하청업체 소속은 70%에 달한다. 조선업은 모든 업종 중 하청업체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하청업체 노동자의 연 수입은 원청 노동자의 50~70% 수준으로 숙련공의 평균시급은 1만 1600원이고 상여금은 없다.

반면에 원청 노동자는 평균 800%의 상여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노동자는 연간 180일 일을 하지만 하청노동자는 270일을 일한다. 원청은 휴무일과 연차휴가가 있는 반면 하청은 야근과 특근이 잦고 휴무일과 무관하게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시간을 고려하면 원청과 하청 노동자간의 실제 임금 격차는 더 커진다. 하청노동자들이 더 오랜 시간 동안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하지만 임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정부는 조선업 원·하청 이중구조와 인력난을 해결한다며 ‘조선산업 격차 해소 및 구조 개선 대책(이하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원·하청이 참여하는 상생협의체를 통한 실천협약 제정과 특별연장근로 최대 180일까지 허용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속 빈 강정’에 불과하며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해 조선산업의 장시간-저임금 체제를 구조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지난 7월 파업 당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연합뉴스)
지난 7월 파업 당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연합뉴스)

정부는 원·하청간의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11월까지 조선업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참여하는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체’를 꾸린 뒤 논의를 거쳐 내년 1분기 안에 협약을 맺기로 했다. 주요 안건은 ▲적정 기성금 지급 ▲원·하청 노동자간 이익 공유 ▲직무·숙련 중심 임금체계 확산 ▲다단계 하도급 구조개선 등이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하청노동자와 원청노동자는 상생협의체 구성에서 제외됐다. 이미 오랫동안 갑을관계가 고정화된 원·하청 회사가 자율적인 논의를 통해 상생협약을 맺는다는 발상은 ‘현재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 대책의 또 다른 문제는 ‘이익공유제’의 왜곡이다. 이익공유제의 근거는 2011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시했던 ‘초과이익공유제’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창출한 이익을 나누는 제도다. 규제완화, 감세, 저금리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걸고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정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2009년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자 2010년 가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이익공유제’를 제시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라며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해 반대했다. ‘이익공유제’는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10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국민의힘은 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 경제를 연상케 하는 반시장적 발상”이라고 맹공격했으며 재벌신문이 “기업옥죄기”로 몰아가면서 결국 이념공방으로 변질됐다. 

소수 대기업에만 집중된 성과를 협력사인 중소기업에도 흘러가도록 하자는 취지의 ‘이익공유제’를 윤석열 정부는 ‘원·하청 노동자’간의 이익공유로 왜곡해버렸다. 원청회사의 책임을 원청 노동자에게 떠넘긴 것으로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는 20일 사설 <조선업 ‘이익공유제’ 도입…원청 근로자들도 양보할 준비됐나>에서 이번 정부의 조선업 대책을 ‘진일보한 정책’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경제는 이 사설에서 “이중구조를 타파하려면 최상위 원청업체 근로자들의 양보가 필수”라며 “(근로일수는 턱없이 짧지만 임금은 2배인 원청근로자들에게) 과감하게 메스를 대라”고 주문했다.

정부의 조선업 인력난 문제의 해결책인 ‘특별연장근로 최대 180일 확대’는 한국사회를 또 다시 장시간 과로 체제로 회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재벌신문은 지속적으로 ‘주52시간제’가 ‘인력난’의 원인이라고 보도해왔다. 야간근로와 휴일근무가 사라져 임금이 줄어들어 숙련노동자들이 조선업을 떠났다는 것이 재벌신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연간 90일까지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됐고, 지난해에도 10월 26일부터 연장기간이 90일에서 150일로 한시적으로 확대됐다. 2021년 11월 3일 경상일보는 “이날 기준 고용부 울산지청에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신청한 기업체는 총 148곳”이라면서 “현대중공업은 2021년 한차례, 현대미포조선은 신청하지 않았다. 일부 하청업체에서 밀려든 주문량으로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고 있지만, 90일을 초과해서 신청하는 기업은 없다”고 보도했다.

새롭지도 않고, 효과도 없는 ‘특별연장근로 기간 180일 확대’를 새로운 대책인 것처럼 내놓은 이유는 ‘주52시간 제한’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2017년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한 사업장은 15건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6477건으로 400배나 증가했고, 올해는 5월 기준으로 이미 3738건으로 지난해의 절반을 넘겼다. 특별연장근로는 당초 재해·재난 대응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만 가능했지만 2020년 정부는 업무량 폭증,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시설·설비 고장 등 경영상 사유를 인가 사유로 추가했다.

윤석열 정부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1년으로 늘리고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신규 설립된 스타트업을 포함시키는 등 노동시간 유연화를 핵심 노동정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노동시간 유연화’로 충분히 고통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콜롬비아·멕시코·코스타리카에 이어 장시간 노동 4위였다. OECD 회원국 노동자들이 연간 평균 1687시간 일하는데 한국 노동자는 221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이번 정부의 대책을 보도하는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경남도민일보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환영 일색이다. 분석이나 확인 없이 ‘받아쓰기’ 보도하고,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우리 언론의 수준이 그대로 드러났다. 

SPL 평택공장에서 기계에 끼여 숨진 여성노동자는 2주마다 하루 12시간씩 밤샘노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피씨(SPC) 계열사 에스피엘(SPL)은 주간조와 야간조 맞교대 근무를 운용한 것도 모자라, 주 5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시키기 위해 올해만 42일간 특별연장근로를 승인받는 등 장시간 노동을 지속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연장근로’는 이번 SPL노동자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장시간 노동이 건강권 침해를 넘어 생명까지 위협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는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장시간노동’ 문제에 침묵한다면 ‘일터 죽음’을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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