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얼마 전 영화계에선 ‘역 바이럴’ 논란이 있었다. 이미 논란이 된 사안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많겠지만, 영화 <비상선언>에 관해 빚어진 논란이다. 듣기에 생소한 용어인데, 바이럴이 인터넷 각지에 입소문을 뿌리는 홍보로 통한다면, ‘역 바이럴’은 나쁜 입소문을 뿌리며 홍보를 방해한단 맥락으로 나타난 용어다. <비상선언>은 개봉 후 영화평이 좋지가 않았는데, 조직적으로 악평을 가하는 배후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주장을 제기한 이들은 모 영화 평론가와 모 영화 커뮤니티 운영진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특정한 관객 반응의 자생성을 부정한 것이고 전문가로서 그것을 식별할 수 있다는 공언인 셈이다. 하지만, 얼마 후 SNS에서 해당 영화 커뮤니티가 그동안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시사회 등을 제공받고 게시판에서 리뷰를 관리해 왔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관련해서 정확한 사실관계가 공인된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만약 그런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무언가가 바이럴의 산물이라는 폭로가 나오던 곳에서조차 바이럴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역 바이럴’이란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퍼진 입소문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야말로 바이럴의 반대 개념 ‘역 바이럴’에 해당할 수 있다.

영화 〈비상선언〉스틸 이미지
영화 〈비상선언〉스틸 이미지

말했듯이, 일련의 ‘역 바이럴’ 사태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논란이 영화 관람 시장의 특수성과 바이럴이 만성화된 시대에 커뮤니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암시한다는 점을 들여다보고 싶다.

몇년 전부터 한국 영화계는 대작 중심 구조로 재편됐다. 여름 극장가는 최고의 성수기로서 거액의 제작비가 들어간 오락 영화, 이른바 ‘텐트폴 무비’가 개봉해 흥행 경쟁을 벌인다. 올여름에는 <한산: 용의 출현>과 <외계+인 1부>, <비상선언>까지 세 편의 대작이 차례로 개봉하며 치열한 상황이었다. 극장에 걸린 짧은 시간 동안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는 상품 특성상 ‘입소문’은 민감하고 강력한 쟁점이다. 티켓 가격 인상과 함께 관객들이 관람 가치를 매기는 사전 조사에 한층 공을 들이는 경향이 생기며 바이럴을 더 민감한 쟁점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들, 나아가 소비자들에게 과제는 분명하다. 어디에서 더 정확한 정보를 찾을 것인가. 그러니까 바이럴이 차고 넘쳐서 혼탁한 시대에 어디에서 오염되지 않은 진짜 입소문을 찾을 것인가. 현재 매체 지형 상 최후의 보루처럼 통용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다. SNS는 ‘업자’들을 판별하고 차단할 게시판 관리자가 없으며, 포털 사이트의 각종 블로그는 광고 포스팅의 천국이 됐고, 유튜브 채널조차 ‘뒷광고’ 논란이 터진 지 오래다. 커뮤니티는 나와 같은 ‘일반인 소비자’들이 이해관계 없이 담소를 매개로 모인다. 어딘가에 올라온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글을 써서 질문을 할 수 있으며 댓글을 통해 추가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상품에 대한 반응이 바이럴인지 아닌지, 과연 믿을만한 제품인지 후기 역시 생생하고 자유롭게 올라온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포스터, 영화 〈외계+인 1부〉포스터
영화 〈한산: 용의 출현〉포스터, 영화 〈외계+인 1부〉포스터

이것이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 존재 가치로 이용되는 면이 있다. 구글 검색창에서 IT나 가사 분야 등 특정한 분야에 친화적인 커뮤니티 이름을 치면 관련 분야 상품의 후기가 연관 검색어로 따라 뜰 정도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그나마 바이럴을 피할 수 있는 대피소로 통하고 있다면, 뒤집어서 ‘업자들’ 입장에선 커뮤니티야말로 바이럴 효과가 큰 신대륙인 셈이다. 실제로 커뮤니티 유저들 역시 게시판에 바이럴이 들어와 있다는 자각이나 경계심을 일상적으로 품고 있다. 업자를 걸러내자는 목소리나 “이런 글 쓰며 홍보하는 거 보니 너 바이럴이지?” 식의 분쟁도 흔하게 나온다. 결국 무엇이 진짜인지 아닌지 신뢰하기 힘든 현실, 모두가 바이럴의 존재를 아는 현실 속에 사람들이 품은 의심까지 마케팅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제품에 대한 호평뿐 아니라 악평 역시 바이럴이라 고발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이런 점들이 일개 영화 커뮤니티가 성수기 대작 영화의 바이럴 논란에 연루된 배경일 것이다.

대안은 물론 상품에 관한 더 공정한 리뷰가 보증되는 것이지만, 영화나 케이팝 같은 문화적 상품이라면 이야기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역 바이럴’ 논란과 같은 사태로 전문가 담론에 대한 불신이 더욱 짙어진다면, 그 반동으로 문화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비평가들 역할은 믿을 만한 ‘상품 후기’를 공급하는 리뷰어로 더욱 한정 지어질 것이다. 영화에 관한 가치판단이나 사견은 불필요한 것으로 논외가 될 것이고, 특별한 격찬이나 혹평은 이해관계의 소산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중립적이고 불편부당한 자세로 돈 쓸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 아닌지 별점과 한 줄 평을 매기는 것이 이상적인 전문가 담론으로 통한다면, 설령 바이럴에 대한 대안으로선 가치가 있다고 해도 비평의 대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역 바이럴' 논란을 비판하던 영화 팬들 역시 한번쯤 곱씹어 봐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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