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가정보원이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 고발에 나서면서 윤석열 정부가 '위기돌파용 기획 사정'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언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부적절 인사·비선보좌 논란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점·절차·내용 등에서 정치적 의심을 사는 '북풍 사정정국'을 펼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조선·중앙·문화일보 등 주요 보수언론은 정치적 논란 가능성을 배제하며 검찰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 문화일보의 경우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보다도 심각한 사건이라며 '이적죄'까지 소환했다. 

지난 2021년 2월 당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1년 2월 당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정원은 지난 6일 박 전 원장이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를 무단 삭제했고, 서 전 원장이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당시 합동조사를 조기 종료시켰다며 두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검찰은 고발 하루 만에 수사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국정원의 보도자료 공개 이후 사안을 인지했다며 두 전 국정원장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굉장히 중대한 국가범죄"라고 규정했다. 

박 전 원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해당 첩보는 군이 생산한 정보로 국정원이 삭제할 권한도 없고, 보고서 삭제를 지시해도 국정원 메인서버에는 남는데 "어느 바보가 그러겠냐"고 밝혔다. 

7일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정보의 원본이 삭제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합참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 '밈스'(MIMS)에 탑재된 민감정보가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게 합참의 설명이다. '밈스'는 합참, 일정규모 이상의 육·해·공군 작전부대, 한미연합사, 국정원 등에 배치된 군사정보 공유 플랫폼이다. 한미 양국이 수집한 첩보를 판단해 추린 정보를 올려놓는다고 한다. '밈스'는 국방부가 관리한다. 종합하면 정보의 삭제가 아니라 정보의 유통이 차단된 사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날 국정원은 박 전 원장 고발이 '밈스'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냈다. 

8일 한겨레는 사설 <국정원 고발·수사, 사정정국 작심한 것 아닌가>에서 "국정원이 직전 정부의 국정원장을 고발한 것부터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다 일사불란하게 고발과 수사 착수가 진행되는 모습에서 '기획된 사정 수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조상준 전 검사장이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된 뒤 이런 일이 벌어진 점도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보도자료 보고 사안을 알았다'는 대통령실 입장에 대해 "수긍하기 어려운 말이다.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이 사전 보고도 없이 전례없는 전 정부 국정원장 고발을 할 수 있겠나"라며 "여기에 대통령실은 '국가범죄' 운운하며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비치는 부적절한 언급까지 했다"고 짚었다. 

이어 한겨레는 "이미 해양경찰청과 군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유족 고발에 따른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인데, 국정원 고발로 갑자기 판을 키웠다"며 "전 정부를 흠집 내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했다. 

국가정보원 (사진=연합뉴스)

경향신문은 사설 <국정원장 수사 등 전방위 사정, 정권 위기 돌파용 안 된다>에서 "두 사건 모두 실체 규명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정치중립을 표방하는 정보기관이, 집권여당이 쟁점화한 정치공방에 뛰어든 것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은 인사검증 부실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비선 보좌' 논란이 겹치며 지지율 급락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국정원장 2명이 수사 타깃이 된 것은, 전 정권에 대한 '친북몰이'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면서 "‘중대한 국가범죄’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그렇지 않아도 ‘윤 대통령-한동훈 법무장관 직할 체제’가 구축된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주겠다는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엄정 수사가 필요하다는 언론 논조에서도 '사정 정국'에 대한 우려는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사설 <박지원·서훈 고발… 공수만 바꾼 적폐청산 안 돼야>에서 "야당 측이 그 의도를 강하게 의심하는 만큼 정치적 시비를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투명한 수사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번 고발은 국민의힘이 서해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조직적 국가폭력 사건'으로 규정한 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광범위한 조사활동에도 불구하고 법적 제한이나 안보상 이유로 청와대와 군 첩보 자료를 들여다볼 수 없게 되자 국정원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으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라며 "전 정부의 ‘대북 굴종’을 바로잡겠다고 다짐해온 새 정부다. 북한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정책적 판단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사설 <軍·국정원 공무원 첩보 삭제, 그날 靑 심야회의 무슨 일이>에서 서해에서 피격된 공무원과 관련한 첩보를 군과 국정원이 "함께 지운 것"이라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 종전선언 촉구 유엔 화상연설이 방송되던 시간에 관계 장관들은 다른 방에서 공무원 피살 회의를 열었다며 "이 회의 직후 군과 국정원이 사건 관련 정보를 삭제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사설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 혐의, 엄정 수사해 진실 밝혀야>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고 국가의 국민보호 의무를 저버리고 인권과 헌법에 반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을 국내외로부터 받아 왔다"면서 "박·서 전 원장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사안은 엄중하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신구 정권이 첨예하게 맞붙을 사안이다. 그럴수록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이 분명하게 규명돼야 한다"며 "그래야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국제사회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7월 8일 주요 보수언론 사설 제목 갈무리
7월 8일 주요 보수언론 사설 제목 갈무리

세계일보는 사설 <軍 ‘밈스’도 서해 공무원 정보 삭제, 조직적 은폐 아닌가>에서 국정원이 박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위법행위를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국정원 자체에서 최소한의 혐의를 확인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혐의가 무엇인지 함구하는 국정원에 힘을 실은 것이다. 세계일보는 해당 사건이 '국기문란 사건'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고 예단하며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억지 행동' 그만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문화일보는 한발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 시절의 국정원장들이 특별활동비를 청와대에 전달한 혐의로 처벌 받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부의 이적성(利敵性) 여부와도 직결된 혐의라는 점에서 엄정하고 성역 없는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썼다. 

문화일보는 사설 <국정원이 고발한 박지원·서훈 혐의, 利敵性도 따져야>에서 "문재인 정부 때 벌어진 두 사건은 북한 김정은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저버렸다는 의혹을 받아왔다"며 검찰이 직권남용죄는 물론 국가보안법 등 '이적죄' 여부까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는 사설 <前 국정원장 월북몰이·강제북송 혐의, 국기문란 차원 다뤄야>에서 "SI를 총괄한 박 전 원장이 첩보 관련 보고서를 일부 삭제한 혐의(공용전자기록 손상죄)가 있다는 게 국정원의 판단"이라며 "사실이라면 국민의 생명을 적극 보호해도 모자랄 판에 내용을 왜곡하려고 한 것으로, 국기 문란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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