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작에 앞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디어스= 김채윤 칼럼] 사건 관련 기사를 읽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우는 아이의 이름을 발견할 때이다.

최근 한 일가족이 실종되었다. 이 사건은 실종아동이 체험학습 기간이 종료한 후에도 등교하지 않자 학교에서 실종신고를 하며 알려졌다. 경찰은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률에 따라 실종경보를 내며 아동의 이름과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동시에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의 이름과 사진, 그들이 타고 간 차종과 차량번호 등은 기사를 통해 온라인에서 공유되었다. 그러나 2022년 6월 26일, 실종된 일가족이 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승용차가 완도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언론 보도의 내용은 일가족 실종 사건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을 암시하는 형태로 일제히 전환되었다. 피해 아동의 이름이 붙은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말이다. 2022년 6월 27일, 경찰은 공식적으로 일가족의 사망을 확인하였다. 안타깝게도 아동 실종경보로 시작한 이 사건은 결국 일가족 사망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우리의 언론은 어떤 시선에서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실종 차량 조사하는 경찰 Ⓒ연합뉴스
실종 차량 조사하는 경찰 Ⓒ연합뉴스

언론이 사건의 화제성을 끌고 대중이 기억하기 쉽도록 사건명을 명명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동 사건을 “완도 일가족 실종 사건”이라고 명명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실종경보에 따라 공개된 실종아동의 이름을 후속 보도에서 반복적으로 명명하여 사용하는 것이 정말 불가피했을까? 아직 사건의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 아동이 될 수 있는 실종아동의 이름과 얼굴을 후속 보도에서 계속 반복하여 언급하고 다루는 것이 어떤 점에서 이로울까? 다음은 일가족의 승용차가 발견된 이후 나타난 주요 언론사의 기사 제목 중 일부이다.

“○○, 축 늘어진 채 업혀 갔다... 완도 실종 3가지 미스터리”

“실종 ○○○ 양 가족 차량, 완도 앞바다서 발견”

“코인 투자 실패로 가게 폐업... ○○○양 가족, 생활고 정황”

“○○○양 일가족, 수상한 마지막 모습 포착”

“실종 ○○○양 부모, 여행 전 인터넷서 ‘수면제-코인’ 검색”

2022년 6월 27일 오전, 정작 사건 수사는 승용차를 바다에서 인양 중이었지만, 언론은 이미 사건의 비극적 결말을 단정 짓고 있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이 유력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아직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동안에도 수많은 추측성 기사가 올라왔다.

일가족 중 부모가 실종 전 코인, 수면제 등을 검색했다거나, 집에 체납통지서가 쌓여있다거나, 더 나아가 양육자에게 업혀 펜션을 떠나던 피해 아동의 모습을 “축 늘어진 ○○○양”이라는 제목과 함께 실제 감시카메라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근 큰 논란을 가져온 루나 코인 사태와 관련짓는 듯한 뉘앙스는 코인 투자 실패로 인한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우리는 왜 일가족의 실종이 사망으로 강하게 추측되는 상황에서도 이들의 안전보다 자극적 소재에 매몰된 기사 제목을 마주해야 할까? 아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이 실종아동의 사진과 이름을 자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러한 언론의 행태가 진정한 언론의 자세인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마주하는 비극적인 사건에서 피해 아동의 이름이 시민에게 슬픔과 분노로만 각인된다면, 우리는 그 문제의 발생 구조를 파악하고 개선 방향을 도모하는 여론을 조성할 수 없다. 사건의 실체보다 피해 아동의 얼굴과 이름으로만 사건의 이미지가 감정적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이번 완도 일가족 실종 사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사건을 명명하는 “완도 일가족 실종 사건”이라는 네 단어를 읽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 피해 아동의 이름과 얼굴만이 스쳐지나가지 않았는가? 만약 후속보도가 잦아든다면, 혹은 내가 너무 바빠 사건의 후속에 대해 찾아보지 않는다면 당신의 기억 속 이 사건은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사건이 발생한 원인, 그리고 이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연대의 의지이다. 이것은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통해 클릭 수 경쟁에 매몰되어가는 언론이 기억해야 하는 단 한 가지의 원칙이다. 그 원칙을 잃었을 때, 우리는 또 다시 아이들의 이름을 기사에서 만나야 한다.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61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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