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걷는 것, 산책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걷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산책은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묻는다. 어떻게 산책은 좋아하는데 걷는 걸 싫어할 수 있어요? 글쎄. 나도 그것이 아이러니하긴 하다. 

오래 걷거나 힘들게 걸으면 아름다운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 생긴다. 이미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피로감은 두려움으로 변한다. 체력은 바닥이고 걸어온 만큼 다시 걸어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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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인데 벌써 낮에는 30도를 넘어 한여름처럼 덥다. 30도를 넘는 한낮을 피해 그래도 선선한 아침과 저녁에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걷기 위해 나온 사람이 많이 보인다.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사람들부터 가족 단위로 즐겁게 이야기하며 걷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밤늦게까지 공원 산책로가 북적거리는 것을 보면 걷는 운동을 하는 인구가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운동을 목적으로 걷는 사람들, 걷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사람들, 산책을 운동처럼 하는 사람들. 무슨 목적이든 매일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같이 걸을 사람들을 찾아주는 어플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혼자 걷는 일은 어렵고 고독한 일임은 틀림없다- 장소와 시간을 정해 코스와 걷는 거리를 공지하면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 걸을 수 있는 사람들, 걷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다. 시간이 되면 인사나 통성명 없이 바로 걷기 시작한다. 속도와 거리를 확인하며 걷다 자신이 정한 목표만큼 걸었으면 도중에 자연스럽게 빠지면 된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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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중에도 프로 산책러가 많다. 걷는 것도 좋아하고, 등산도 좋아해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걷고 주말엔 산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걷기 좋은 곳을 서로 묻고 알려주며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도 많다. 

단종이 묻혔다는 영월의 장릉은 나무 그늘이 없어 한창 더운 여름에 가면 힘들고, 무엇보다 뙤약볕 아래 덩그러니 있는 왕릉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에 비해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는 울창한 적송이 많아 덥지 않고 시원하다. 비극적인 슬픔을 안고 있는 곳인데도 적요한 아름다움이 있다. 관광객으로 오가는 사람이 많은데도 높게 솟아오른 적송 아래 작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단종의 처소에서 느껴지는 오롯한 외로움과 슬픔이 손에 닿을 듯 느껴진다. 

특별한 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프로 산책러가 되어야 한다.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걸으며 풀리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가고,

걸으며 아이디어를 얻고, 걸으며 글을 쓰는 힘을 키운다. 

글을 오랫동안 쓰고 싶다면 운동은 필수라고 교수님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운동 중에서도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누누이 말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리와 배의 힘으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다리에서 힘을 끌어다 엉덩이와 허리를 지지하고, 머리가 배에서 에너지를 끌어다 글을 쓰는 데 사용한다고 했다. 글을 오래 쓰려면 운동은 하나 해야 해. 그래도 네게 맞고 가장 좋은 운동은 걷기이다. 꼭 시작해. 교수님은 만날 때마다 이야기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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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나처럼 기초체력이 없고, 운동도 싫어하는 사람에게 좋은 운동은 ‘걷기’라는 것을. 나도 걷기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천천히 걷는다. 같이 걷는 사람이 아, 속 터지네. 할 정도로. 정말 이토록 천천히 걸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천천히 걷는다. 그러니까 나는 운동이며 산책이라고 말하는데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묻는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운동이 산책이라고 했다. 느림의 미학을 몸으로 느낄 수 있고, 몸과 마음이 천천히 회복됨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이다. 좀 더 자신과 자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산책이 휴식과 힐링이 아니라 고된 노동처럼 느껴지는 건 싫다.

나에게 있어 산책의 묘미는 걷는 것보다 보는 것에 있다.

걸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도 봐야 하고,

걸으며 일주일 사이 훌쩍 자란 갈대를 보며 감탄도 해야 한다. 

남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걷는 게 맞냐고 묻지만 나는 아주 바쁘게 걷고 있다. 틈틈이 꼬여있는 글을 풀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지금 걷고 있는 게 맞냐고 산책을 좋아하는 게 맞냐고 남들이 묻는데 나는 분명 걷고 있고 산책은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살포시 꿈을 꾸어본다. 나도, 아주 느리게 걷는 프로 산책러가 되고 싶다는.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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