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시작에서 그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우상과 이성> 머리말

르몽드의 언급처럼 리영희 선생은 ‘사상의 은사’였다. 19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삶을 시작한 리 선생은 진실을 무기로 우상에 맞서 성역 없는 보도를 했다. 리 선생은 베트남 파병에 대해 비판적 논조의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조선일보에서 쫓겨났고 이후 합동통신에서도 해직됐다. 그의 책 제목처럼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 그는 오직 진실과 균형의 날개로 이념에 저항했다.

리영희재단(이사장 박우정)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관에서 ‘해직 언론인 복직 촉구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많은 언론인들이 ‘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것은 진실’이라던 리영희 선생의 말처럼 공정언론을 외치다 정직, 감봉, 해직 등의 탄압을 받았다. 이날 토크 콘서트는 ‘오늘의 리영희들’인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을 소망하는 자리였다.

“리영희 선생, 못 보던 것을 보게 해 준 분”

‘해직 언론인, 해직 언론인을 얘기하다’는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리영희 선생의 지인들이 생전의 리 선생을 추억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1부 ‘해직 언론인, 해직 언론인을 얘기하다’에서는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이 진행을 맡아 신홍범 조선투위 위원과 리영희 선생 부인 윤영자 여사와 담소를 나눴다. ⓒ김수정

노종면 전 위원장이 대화에 앞서 “기자 노종면이라는 사람이 이런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해직 당했다는 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각별히 해직이라는 선물을 주신 각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2년 전 리영희 선생의 연결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했던 신홍범 조선투위 위원은 리영희 선생을 “사고방식을 바꿔 옛날에는 못 보던 것을 보게 해 준 분”이라고 추억했다. 신 위원은 “일에는 굉장히 엄격하고 사람에겐 따뜻하고 자상하신 분”이라면서도 “리 선생님을 따라 외신부에 가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리영희 선생 부인 윤영자 여사는 “(리영희 선생은)뭐든지 자기 스스로 먼저 개척하고 남보다 열심히 산 사람”이라고 말했다. 윤 여사는 “(해직 언론인을 포함한)지금 젊은이들도 열심히 정직하게 꿋꿋하게 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며 “앞만 보고 가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37년째 해직 중인 어느 선배 기자의 이야기

▲ 최승호 MBC PD는 70~80년대에 활동했던 선배 해직언론인들과 대담을 나누었다. 뒤로 보이는 배경은 당시의 보도 검열 지침.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최승호 PD, 표완수 경향신문 해직기자, 성유보 동아일보 해직기자 ⓒ김수정

사회 전반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검사와 스폰서’ 편을 만든 <PD수첩> 최승호 PD는 2부에서 엄혹한 군사정권 시대를 버텨낸 선배 언론인과 대담을 나눴다.

성유보 동아일보 해직기자는 “당시 신문들은, 정치문제는 군사독재 폭력이 무서워서 사회문제는 돈 먹어서 못 쓰는 사이비언론으로 불렸다”며 “보도에 금지되거나 통제되는 성역이 없도록 자율 편집권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10·24 동아자유언론수호실천선언’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많은 기자들이 해직됐고 성 기자 역시 37년째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표완수 경향신문 해직기자는 “조선일보가 한국 농촌이 무너진다는 기획기사를 쓸 때 경향신문은 이튿날 ‘장밋빛 농촌’을 다뤘다”며 “보고서를 옮기는 것에 그치는 보도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경향신문 기자들이 1차 농성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표 기자는 “좋은 신문을 만들자는 취지 아래 ‘좋은신문 만들기 모임’을 했지만 정부는 국보법을 뒤집어 씌워 (해직기자를)고통 받게 했다”고 말했다.

두 원로 기자는 후배 언론인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성 기자는 “제3의 민주화 운동은 언론자유운동이 될 테니 힘내시라”라고 격려했다. 표 기자는 “리영희 선생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언제나 외롭고 힘들다고 얘기했다”며 “우리가 시민들을 더 일깨우고 굳은 신념을 갖고 나아가자”고 응원했다.

“기자다움 지키려는 움직임은 계속될 것”

3부 ‘해직 언론인, 언론현장을 얘기하다’의 주인공은 이번 정권 들어 특히 억압받았던 현업 언론인들이었다. 이근행 전 MBC 본부장, 이정호 전 부산일보 편집국장, 양승동 전 KBS 사원행동 대표, 공병설 전 연합뉴스 지부장이 무대에 섰다.

▲ 3부 ‘해직 언론인, 언론현장을 얘기하다’에서는 현업 언론인들이 그간의 투쟁과 해당 언론사의 현재 상황을 들려주었다. 왼쪽부터 이근행 MBC 전 본부장, 이정호 전 부산일보 편집국장, 양승동 전 KBS 사원행동 대표, 공병설 전 연합뉴스 지부장 ⓒ김수정

이근행 전 MBC 본부장은 “김재철 사장으로 추악한 권력의 맨얼굴을 봤다면, 내부 투쟁을 하며 사내에서 인간의 밑바닥도 다 보았다”고 말했다. 이 전 본부장은 “이는 MBC 안에 권력과 영합하는 집단이 생겼다는 것”이라며 “그들은 대선 국면에서 시쳇말로 ‘빤스를 벗고 뛰는 상황’”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이 전 본부장은 “빤스 벗고 뛴 모든 이들을 청소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워왔지만 결국 국민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양승동 전 KBS 사원행동 대표는 “수십 명이 해직당하고 백 명 넘게 정직당하며 싸워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며 “보도 및 제작 부문의 국장 직선제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병설 전 연합뉴스 지부장은 ”연합뉴스는 파업했던 사업장 중 가장 행복했던 곳”이라며 “현 사장 퇴진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해직자도 없었고 파업 후 사내 민주화, 공정보도 시스템 마련 등의 성과를 올렸다”고 말했다. 좌담에 참석한 네 명 가운데 가장 희망적인 소식이었고 <부산일보>에서 해직된 이정호 부산일보 전 편집국장은 “부럽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정호 전 편집국장은 “부산일보는 미래 권력인 박근혜 씨와 직접 연관돼 있어 강고한 싸움을 1년째 하고 있는데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편집국장은 “정수재단 기사 하나 가지고 신문 발행이 중단됐다”면서 “권력의 언론 장악이 얼마나 철저하고 집요하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편집국장은 “권력의 언론 장악 시도가 계속될지라도 기자다움을 지키려는 언론인들의 움직임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해직 언론인의 복직을 소망하는 자리이긴 했으나 이날 토크 콘서트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지만은 않았다. 재치 넘치는 해직 언론인들의 언사에 관객들은 큰 웃음과 환호를 보냈고, 가수 권진원 씨와 강허달림 씨의 무대에는 아낌없는 박수로 ‘응답’했다.

▲ 한겨레 평화의 나무 합창단. 원래는 토크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시간이 지연돼 3부 시작 전에 공연했다. 첫 곡으로 ‘사람의 노래’를, 두 번째 곡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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