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섭 씨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 그 상 받으신 분!’이다. 언론연대 후원의 밤, 민주언론상 시상식 등 최근 몇 차례의 만남에서 그는 ‘수상자’였다. 지난 4년 간 언론운동 최전선에서 활약한 덕이다. 언론운동 현장에서 현업 언론인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민이라니,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든지 달려간다. 단 부정하거나 대의에 어긋나는 곳은 불가함’. ‘자유인’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정인섭 씨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그만큼 그의 활동력은 ‘왕성하다’. 19대 총선미디어연대에도 참여했던 그는 KBS 김인규 사장 퇴진 촉구 및 KBS 파업 지지 기자회견, 여의도 희망캠프, MBC 방송문화진흥회 제대로 감사 촉구 기자회견 등 언론 정상화를 외치는 자리에 빠짐없이 나타났다.

그런데도 정인섭 씨는 “다행히 여유가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설 뿐이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미디어스>는 지난달 30일 정인섭 씨를 만나 평범한 시민에서 언론운동 활동가가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자유인’이란 닉네임으로 유명한 언론운동 활동가 정인섭 씨 ⓒ미디어스
언론악법 날치기 때 분노해 거리로 나와

정인섭 씨와 언론운동과의 인연은 지난 2009년 7월 미디어법이 날치기 처리된 것을 보고 분노해 명동에 나오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100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헌법재판소가)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종편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같이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당시 정당, 민주노총, 언론노조, 언소주 등 다양한 주체들이 들어와 매일같이 스무 명 정도가 상주하다시피 서명을 받았다. 저지가 됐으면 좋았을 텐데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해 몇 년 동안 싸우게 됐다”

그래도 직접 현장으로 뛰어드는 일은 쉽지 않았을 터. 정인섭 씨는 이렇듯 적극적인 언론운동 참여의 원동력으로 ‘죄의식’을 꼽았다.

“70년대 동아투위 때 백지원고에 많은 시민들이 호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언론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지만 남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런 일을 할 사람들은 따로 있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뿐이었다. 2009년 7월 22일 언론악법이 강행 처리되면서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되겠구나, 행동으로 옮겨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 가족들은 이런 정인섭 씨의 활동을 격려해 줬다고 한다. 아들과 둘이 지내는 그는 “아들이 물심양면 지원해 준 덕에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의 아들은 ‘아빠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하다’고 응원했다는 것이다. 언론운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정 씨에겐 큰 힘이 된다. 그는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행복하고, 그들의 존재가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전했다. 언론시민단체 사람들과 현업 언론인들과는 이미 ‘가족’ 같은 막역한 사이가 됐다는 정 씨이다.

방송사 사장 선임할 때도 인사청문회 해야

정인섭 씨는 현재 언론노조, 언론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해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는 ‘방송사 소유구조’에 가장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방송사는 정권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돼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노조나 시청자 쪽의 저항권이 없다. 방송사도 사실 공적기능이 100%다. 시청자의 저항권을 찾자는 게 하고 싶은 운동의 방향이다. 시청자협의회를 꾸려 방송사 사장이 제 역할을 못하면 소환하는 ‘사장소환제’도 관철됐으면 좋겠다. 저널리즘에 충실한 사람들을 사장이 지켜주고, 사장이 정치권에 휘둘릴 때는 시민과 노조가 막아 주면 어떨까. 서로 순차적으로 공적 기능이 강화될 수 있는 시스템을 시민이 만들어줘야 한다”

정인섭 씨는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사들은 민영이든 공영이든 국민들에게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부에서 시청자들과 방송사 내부 구성원의 실질적인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시청자위원회’를 제안했다. 또한 방송사 사장들의 인사청문회를 하자는 의견도 내놨다.

“어느 정권이 되더라도 낙하산 사장을 정권에서 내려 보내는 건 있을 수 없다. 방송사 사장을 선임할 때도 인사청문회를 했으면 좋겠다. 인사청문회를 생방송으로 보여주면 국민들에게 이 사람이 적임자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개혁 없는 정권 창출은 기득권 세력의 교체일 뿐”

정인섭 씨는 1시간 반 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언론개혁’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언론의 비판과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정권이 탄생해도 기득권 세력의 교체일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모든 관심이 대선에 쏠려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정치, 경제 등 여타 분야보다 언론개혁을 첫 손에 꼽았다.

정인섭 씨는 대선 후보들의 미디어 정책에 대해 “대동소이하다. 언론 진영에서 각 후보 진영에 전달한 정책을 많이 수용하는 것 같다”면서도 “정권을 거머쥔 후에도 (그 정책들을)실현시킬 건지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서는 “평가할 가치도 없다”고 가차 없이 비판했다.

“종편이 선정적, 선동적인 내용을 방영하는데도 방통심의위나 방통위에서 특별한 규제를 하지 못한다. 아날로그 종료 후 디지털 전환하는 것도 국민들 의사와 무관한 결정이었다. 언론 생태계 파괴다. 도대체 이 정부에 언론정책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 화가 난다”

더 많은 시민들이 언론의 중요성 깨달았으면

정인섭 씨는 지난 6월 여의도에서 희망텐트에서 ‘네 가지 없는 카페’를 운영한 것을 가장 뿌듯했던 기억으로 소개했다. 네 가지 없는 카페는 정인섭 씨 등 촛불 네티즌 5명이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이 외롭지 않게’ 자발적으로 운영한 카페로, MBC 김재철 사장 퇴진 및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서명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네 가지’는 MBC 김재철 사장, KBS 김인규 사장, YTN 배석규 사장, 연합뉴스 박정찬 사장 등 낙하산 사장 4명을 의미한다.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음료수를 가져오거나 후원금을 낸 시민들이 너무 많았다며 감격했다고 전했다. 여러 사정으로 비록 현장에서 함께하지 못해도 ‘공감’과 ‘동의’의 목소리를 내 주는 시민들을 볼 때가 가장 기뻤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민들이 언론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한다”며 더 많은 지지와 호응을 호소했다.

“언론시민단체들의 재정이 너무 열악하다. 시민들이 미디어의 중요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해 자발적인 후원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 같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할 때 그것을 바로 세우려면 시민들이 올바른 언론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교육받지만, 언론의 비판과 감시가 없고서는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정권이 바뀌면 시민 미디어 교육이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