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확실한 ‘지지’표명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확실한 의사 표시였는지도 모른다. 대선후보에서 사퇴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진심캠프 해단식에서 ‘자기 정치를 하겠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사퇴 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넘어서는 문재인 지지 표명이나 정권교체를 위한 향후 계획은 밝히지 않은 채 ‘진심캠프’를 해산했다.

▲ 진심캠프 해단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는 안철수 전 후보ⓒ뉴스1

'안철수스러움' 보여준 진심캠프 해단식

대선 후보 사퇴 이후 열흘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안 전 후보의 발언은 이른바 ‘안철수스러움’ 그 자체였다. ‘소극적 지지’와 ‘전격적 지지’ 여부 사이에서 정치적 언어들이 난무하던 상황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안 후보는 정제된 언급과 일관된 메시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흡사, 그것은 안철수의 ‘새정치’란 상황 논리에 따라 행동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은 ‘구태’라는 선언과도 같게 느껴졌다.

최대 관심사였던 문 후보 지지 여부에 대해 안 후보는 “지난 11월23일 사퇴 기자회견 때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 단일후보 문재인 후보를 지원해 달라 말씀드렸다”며 “저와 함께 새 정치와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 오신 지지자들이 큰마음으로 제 뜻을 받아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단일후보는 문재인’이라는 점이 불변하다는 입장이라는 입장만 다시 밝힌 셈이다.

대신, 안 후보는 현재 대선판에 대한 비판을 구체적으로 했다. 안 후보는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시대정신은 보이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고 싸우고 있다”며 양 후보를 싸잡아 비판하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 인신공격이 난무한다”고 기존 정치권 모두와 선을 그었다.

지지하되, 어떤 지지자 '멘붕' 만드는 안철수의 의도는?

희비는 명확히 엇갈렸다. 문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거나, 정권교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을 기대했던 이들은 ‘멘붕’적 상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나 민주당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안 전 후보의 기자회견 직후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안 후보의 말씀 감사드린다”고 말하며 “반드시 정권교체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대단히 무난하고 평범한 반응이다. 하지만 거기서 드러난다. 지지 의사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끈한 감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심캠프의 해단식이 예정된 3일, 언론들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일제히 민주당이 안철수의 지원 없이는 이기기 힘들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안 후보의 지지 의사 표명을 ‘변수’가 아닌 하나의 ‘상수’로 상정하며, 지지 정도에 따라 대선 판세를 재규정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성격이 짙었다. 어차피 지금 발표되고 있는 여론조사들이 대체로 10% 남짓의 응답률에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지도가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는 다분히 ‘기획’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의 ‘안철수 상수화’는 충분히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비록 사퇴했지만, 안철수는 이번 대선에서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고, 속된 말로 팔리는 대상이다.

안 후보의 발언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야권 지지자들의 생각 역시 이러한 맥락에 기대고 있다. 기존 정치 문법에 들어맞는 뭔가 확실한 언급과 행동이 나와야 판세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그렇잖아도 지금의 단일화를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고 읽고 있는 흐름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는 문 후보가 반전을 도모하기 위해선 사실상 ‘장외의 승리자’로 군림하고 있는 안 후보의 화끈한 지원이 필요하단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함께 유세차에 올랐으면 좋겠다”는 구체적 바람을 밝히기도 했었는데, 이는 통상적인 정치 문법에서 ‘지지’란 그런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야권 지지자들이 ‘소회를 밝히거나, 누구를 지지한다고 말해도 된다’는 선관위의 유권 해석을 오전 내내 부지런히 퍼 날랐던 것도 다 이런 기대 심리의 소산이었다.

▲ 사퇴했지만, 그는 여전히 언론의 폭발적 관심속에 여론의 중심에 서있다. 이번 대선의 승자가 누구이건 그는 이미 '장외의 승리자'로 대접받고 있다. ⓒ 뉴스1

모두의 예상 벗어났지만, 자신의 일관성에는 충실

하지만 안 후보는 다시 한 번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자신의 일관성에 만큼은 충실한 화법을 택했다. 지금껏 안 후보는 자신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후보단일화를 이룰 것이란 약속에는 후보 등록 전 전격적인 사퇴로 응답했고, 단일후보를 지지하겠단 말은 지지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증명해왔다. 그래서 안 후보 측 관계자들은 고비 때마다 “우리 후보만큼 예상 가능한 정치인은 없다. 전에 했던 말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말한 만큼, 그 이상 안 후보는 움직이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다.

어찌되었건, 안 후보의 기자회견은 야권 지지자들에게 뭔가 맥이 빠진 상황으로 소구되고 있지만, 이건 안 후보의 책임이 아니다. 트위터 등 SNS 상에서 안 후보에 대한 비난 멘션이 자제를 요청받고 있는 까닭 역시 그것일 것이다. 안 전 후보에게 뭔가를 더 하라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요구는 ‘물에서 건져주니 짐 꾸러미 내놓으라’는 것과 다름 없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안 후보에게 ‘출마했으니, 단일화해라’, ‘단일화를 한다고 했으니, 룰을 양보해라’, ‘양보했으니, 선거운동해라’ 수준의 반응과 요구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애당초 그건 안철수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민주당 측의 일방적인 요구였을 뿐이다.

여전히 '변수'로 남은 안철수, 하지만...

안 후보는 여전히 ‘변수’로 남았다. 한 트위터리안의 말처럼 ‘확실히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상 지지하지 않은 것’ 같은 심리 상태는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민심의 평가는 어떠할까? 해단식에서 밝힌 입장만 보면, 민주당이 기대하는 수준의 선거 운동 결합은 아예 이뤄지지 않거나 이뤄지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민주당 측의 엄청난 삼고초려가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민주당은 사퇴 회견 이후 안 전 후보를 끌어내는데 실패했고, 안 전 후보는 본인이 생각한 만큼만(단일후보 양보), 딱 그 정도만 이번 대선에서 ‘상수’로 존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물론, 캠프 해단식이라고 하는 행사의 성격상 자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정적 메시지' 이상의 언급을 하기 어려웠으리란 점도 인정된다. 사퇴 이후 첫 공식행보이니 만큼 일단 지지층을 위무하고 이후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재언급하는 것이 순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딱 16일이다. 다시 안 후보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지만, 이제 이 선거의 몫은 오롯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게로 환원되는 양상이다. 계속해서 안 후보만 쳐다볼 순 없는 노릇이다. 안철수는 없는 것처럼, 민주당만의 비전, 문재인만의 능력만으로 이 선거를 끌고 가야한다. 스스로를 ‘다음 물결’로 규정지은 안철수에게 더 ‘이번 물결’에 섞여달라고 요구하면, '그렇다면 왜 출마했냐'는 회의론에 침몰할지도 모른다. '안철수에, 안철수에 의한, 안철수의' 상황에서 문재인의 도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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