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한겨레 10면. 한겨레는 북한 로켓 발사 예고를 1면에 보도했으나 후속기사는 10면에 배치했다.

북한이 지난 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장거리로켓으로 추정되는 실용위성을 10일에서 22일 사이에 발사하겠다고 예고했다. 내외신은 ‘실용위성’이 대선 전에 발사되게 된다면 남한의 선거판도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안보 위기’에 대해 햇볕정책이 심판을 받을지 강경책이 심판을 받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건대 북한이 뭔가 움직여서 야권에 도움이 된 적은 없었다. 물론 ‘천안함 사태’ 이후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했던 2년 전의 기억은 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은 사건 특성상 북한의 소행임을 모든 유권자에게 납득시키기가 어려웠다. 또한 대통령이 총선 두달 전에 전쟁기념관에서 사태에 관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정권이 지나치게 북풍을 활용하려고 하는 모습도 반감을 샀던 측면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감안하고 보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북한이 대선 직전 로켓을 발사하는 것이 야권에 호재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야권을 지지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라면 여기서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도대체 왜 북한은 선거 때마다 새누리당을 도와주려는 것인가? 혹시 새누리당과 무슨 밀약이라도 체결한 게 아닌가?!?!” 대선 직전 한나라당 후보 측 몇몇 인사가 북한 측 인사에게 판문점 내에서의 총격을 요청한 1997년의 ‘총풍 사건’은 그러한 추측의 심증이 될 것이다. 상식적으로 따져본다면 북한 입장에서도 새누리당 집권이 이로울리 없는데 계속해서 새누리당에 이로운 일을 하고 있으니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들과 주어진 맥락 속에서 구성된 것이다. 물론 새누리당과 북한이 결코 내통했을 리 없다고 단정지을 필요도 없지만, 섣부른 음모론을 쓰기 전에 시선을 돌려 북한의 입장에서 익숙한 사실과 맥락을 고려한다면 전혀 다른 판단이 가능할 수도 있다.

▲ 오늘자 중앙일보 1면. 남은 대선의 변수로 보수대연합, 안철수의 지원, 북한 로켓 발사를 언급하고 있다.

북한이 새누리당 정권을 좋아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정권에게 이득이 되는 선거 전 로켓발사와 같은 이벤트를 한다는 사실에서 상식인은 두 가지 추론을 할 것이다.

1) 북한이 실제로는 새누리당 정권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2) 정책적으로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결국 새누리당이 북한에게 ‘뒷돈’이라도 보내주는 게 아닐까?

그러나 1)과 같은 반응은 야권에 대한 지긋지긋한 색깔론 공세에 대해 ‘사실은 너희가 친북세력이야!’라고 맞받아치고 싶은 욕망을 보여줄 뿐, 별다른 현실적인 근거가 없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정부 10년’의 시기가 이명박 정부 시기보다 편했다는 건 명약관화다. 보수주의자들은 딱 이것만을 논거로 삼고 야권을 친북세력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 경우 야권 지지자가 해야 할 일은 가) 북한 정권에 대한 지원이 북한 인민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다는 것 나) 현 시점에서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것이 결코 남한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엄연한 사실을 뒤집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2)와 같은 반응일 것이다. 이러한 반응의 전제에 깔린 ‘상식’은 두 가지다.

A) 북한이 남한의 선거시기에 로켓을 발사해야 할 별다른 유인이 없다.
B) 북한은 선거시기에 로켓을 발사하는 것이 새누리당에게 도움이 된다고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상식’의 전제들이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공유되지 않거나 명쾌한 것이 아닐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로켓 발사는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필요한 일이다. 대내적으로는 인민들에게 체제의 정당성을 선전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남한 등 국제사회에 대해 자신들을 ‘협상해야만 하는 존재’로 홍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라면 로켓 발사와 같은 행사가 북한의 입장에서 지켜야 할 기념일이나 남한의 선거시기 등에 집중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북한 소식통들은 이 로켓 발사가 대내적으로는 '김정일 1주기'를 겨냥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남한 대선과 미국 신정부 출범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로켓발사의 대내적 필요성을 말할 때 햇볕정책의 옹호자들은 북한의 대남도발은 햇볕정책을 통해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지난 5년 간의 남북관계가 원만했더라도 북한 입장에선 3대세습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북한 정권으로선 남한의 쌀 덕분에 인민이 굶지 않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인민은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굶어서도 체제유지에 불안하지만, 지나치게 잘 먹거나 필요 이상의 자유를 누려도 곤란할 것이다.

즉 북한으로선 남한에서 쌀을 계속 올려 보낸다고 해서 로켓을 발사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그들은 ‘남한에서 쌀을 주는 이유는 이렇게 로켓을 쏘는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그들을 압박하기 때문’이란 정당화 논리를 세우기 위해 로켓을 쏠 필요가 있다. 이런 시선에서 본다면 북측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 상황이 더 큰 대남도발의 위협을 가져올거란 건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얘기지만, 화해협력 정책만으로 모든 종류의 대남도발을 근절할 수 있다는 주장은 별로 개연성이 없다.

사실 북한이 남한과의 교류협력을 하지 않을 때 협상할 창구가 없어 더 큰 무력도발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면, 북한이 교류협력을 통해 다소 숨통이 트일 때 뒷구멍으로 미사일이나 핵개발을 하기가 더 수월해지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결국 강경책이든 교류협력책이든 서로를 ‘냉전꼴통’이나 ‘친북주사’로 몰아붙이기에 앞서 서로의 접근이 가진 딜레마를 인지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외적 필요성의 측면을 말한다면 북한처럼 외교관계도 빈약하고 경제력도 빈약한 입장에선 새누리당의 집권을 저지하는 것 이상으로 국제사회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한 민족이라는 남한 사람들조차 이제는 북한의 존재를 생각하기를 불편해 한다. 요즈음의 남한 사람들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어떤 장쾌한 통일 방안이 아니라 ‘우리 머리 위에 북한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관리해 달라는 것이다. 햇볕정책과 강경책조차도 그 관리의 방안으로서 서로 경쟁하고 있을 따름이요, 그 목표를 실현하지는 못하고 있으니 문제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바로 이 목표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남한 사회는 한 발자국도 진정할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다.

즉 그들로서도 새누리당이 집권하는 것은 불리하고 유감스러운 일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로켓을 쏴야 할 유인을 느끼는 상황에 있다고도 판단할 수 있다. 현재의 진보당이 말하듯 (과거의 통합진보당은 이제 공식적으로 약칭이 진보당이 되었다) 북한의 로켓이 실용위성이므로 나로호와 같은 것이라 주장하기 보다는,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차라리 ‘내재적 접근법’에 가까울 것이다.

▲ 오늘자 조선일보 1면. '진보당'의 북한 문제에 대한 태도를 부각시키고 있다. 만약에 통합진보당이 지난 총선 이후 분열하지 않았어라도 대선 직전에 이런 사건이 생겼다면 논평을 둘러싼 극심한 당내분열을 경험했을 것이다. 또한 논평이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되었다면 이를 활용한 보수언론의 야권연대 전체에 대한 색깔론 공세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앞서 말한 상식적 판단의 전제조건의 B)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자신들이 로켓을 발사하는 게 새누리당에게 엄청난 정치적 이득이 됨을 명백하게 알고 있을까? 우리 상식에는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북한에게도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정치문화의 차이는 현격하고, 그래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영민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회의 상식을 숙지하기는 어렵다.

1950년대 이승만의 대미외교가 소기의 효과를 거둔 이유는 오래도록 미국에 체류하며 정계와 접촉한 이승만이 그 나라 의회의 생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반면 1970년대의 박정희는 훗날 ‘코리아 게이트’로 알려진 미국 정계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를 했으나 이 로비는 그 나라 정치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데에서 나온 '혈세 낭비'에 가까웠고 결국 박정희와 미국의 관계를 파행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현재의 북한은 1970년대의 남한보다도 훨씬 더 전체주의적인 국가다. 그러니 북한의 당국자들은 로켓 발사를 하며 새누리당을 비난하는 논평을 내는 것이 남한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행여 생각이 깨인 어떤 젊은 당국자가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관성에 젖은 상급자를 설득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사실 이는 남한 사회의 관료 조직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북한 사회가 남한의 모습과 전혀 다르며 북한의 당국자들이 남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은 우리가 북한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 전체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햇볕정책의 옹호자들에게는 ‘교류협력이 북한 내부의 온건파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추측 자체가 지나치게 ‘남한 사회의 상식’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또 대남도발에 대한 물샐틈없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믿는 강경책의 옹호자들에 대해서는 남한 사람들이 읽으면 실소나 터트리게 되는 ‘우리 민족끼리’ 계정을 RT했다고 청년들을 수사하고 잡아 가두는 일이 과연 국가 안보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북한은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 잠수함도 피격하고 민가에 대포도 쏴대고 로켓도 발사하는 등 온갖 일을 하지만(혹은 했다고 추정되지만), 이미 정치적 필요가 있을 때에만 각 당파의 입맞에 맞춰 남한 사람의 관점으로 해석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북한이 ‘우리편’의 입맛에 맞춰 행동하지 않는다 분개하기에 앞서 그렇게 된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서글픈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보수세력에게 '친북세력'이라고 비난받는 진보진영의 일각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북한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 내면의 '환상 속의 북한'만을 가꾸어 가며 야권의 발목을 잡고 있단 점도 확인할 수 있다.

▲ 오늘자 조선일보 3면. '김정은 체제'가 로켓을 쏘아 올려야 하는 이유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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