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위법·편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1년 12월 1일 개국한 종합편성채널. 이제 개국 1년으로 평가가 되어야할 시간이다. 하지만 평가할 거리가 없다. 시청률 0%대의 채널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재방비율은 50%를 넘어가고 JTBC를 제외하고 나머지 종편채널에서는 자체 제작하는 드라마 1편 없는 실정이다. 미디어스는 종편 개국 1년을 맞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위법채널' 기획을 마련했다. 종편 개국1년,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나.

어떤 매체든, 특히 지상파 방송사업자도 아닌 채널사용사업자(PP)의 성과를 평가하기에 1년이란 기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종편 채널의 1년은 다른 일반적인 채널들과 사뭇 달랐다. 지상파와 동일한 의무전송채널이라는 지위, 소위 황금채널 번호대의 배정, 미디어렙 적용의 유예, 광고규제 완화 등 역대 그 어떤 방송사업자들도 누려보지 못한 전방위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종편 출범 당시, “구시대적인 신문과 방송의 소유 겸영 금지를 허물고 여론 다양성을 고양”한다거나 “지상파의 과점적 지위를 해소”하겠다는 목표가 과연 얼마나 달성되었을까? 아니 이런 숭고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승인 신청서에 적었던 그 수많은 편성 및 제작계획은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이런 평가를 미루더라도 현재 종편 4개사의 시청률과 광고수익 또한 비교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미약한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종편의 평가는 1년 전 기쁨에 겨워하던 방통위와 정권의 장밋빛 전망이나 종편들의 계획이 아니라, 채널사용사업자로서의 기본적인 성장 경로를 제대로 밟아 왔는가의 여부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2012년 개국한 1990년대의 사업자

종편의 개국 축하쇼를 지켜보던 1년 전, 그런 쇼를 언젠가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SBS(당시 서울방송)의 개국 축하쇼였다. 종합편성채널이란 말조차 없던 그 시절 새로운 방송 채널이 생긴다는 것은 분명히 엄청난 이슈였고, 그 방송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정치적 로비의 풍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때였다. 며칠 후 우연한 기회로 보게 된 종편 사업자들의 사업 계획서 역시 또 다른 기억을 불러냈다. 바로 1995년 케이블 출범 당시 대기업들이 자신들 또한 지상파 방송사와 같은 방송국을 갖게 되었다며 막대한 설비투자와 인력채용에 나섰을 때의 기억이다. 15년이 넘은 시절의 풍경이 2011년에 다시 반복되었다는 인상은 조중동 모두가 구시대의 산물이 아닌가라는 의심으로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당시에는 지난 세월 동안 그들에게 “학습효과”가 전무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 1년 전 MBN은 스튜디오와 직접 연결해 종편개국을 알렸으며, 신입아나운서 및 공채개그민들의 인사가 진행됐다ⓒ권순택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종편은 그런 학습효과의 부재를, 조금 과격하게 말한다면 마치 1995년 초창기 케이블 채널과 같은 실패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종편 4개사― 심지어 채널운용의 경험이 있는 MBN까지 ― 모두가 네트워크(망)와 플랫폼, 그리고 콘텐츠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미디어 환경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출범 이전 자신들이 과점적 사업자라고 평가한 지상파 방송사의 지위는 콘텐츠 경쟁력 뿐 아니라 이를 유통시킬 지상파 계열 PP들 및 그 콘텐츠들로 시청률을 보전하는 개별PP들의 존재에 근거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료방송 플랫폼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 경쟁력을 가진 CJ E&M 또한 플랫폼 사업자(CJ 헬로비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지 않았던가. 게다가 유료방송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은 재핑(zapping)을 통해 장르별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선택하여 조합하는 시청습관을 형성해 왔다. 만일 전체 유료방송시장의 경쟁상황을 염두에 두었다면, 어느덧 지상파와 MSP들이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에 오른 2012년의 상황에서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콘텐츠 편성의 차별성은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경쟁력 제고의 기회를 박탈한 전방위적 지원

결국 종편에 대한 지금의 평가는 이들이 본격적인 미디어 자본이 형성된 한국 방송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기본적인 축적 전략이 있었는가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예컨대 플랫폼이라는 개념을 잠정적으로 “네트워크상에서 콘텐츠 사업자와 이용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할 시공간상의 장”으로 정의해 보자. 종편 사업자들이 가진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과연 1990년대 칼부림을 불사했던 배급소 환경에서 얼마나 진전이 있었는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채널 영업의 경우, 도리어 의무전송이라는 혜택으로 플랫폼에 대한 이해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광고 영업은 신문사에서 행하던 비공식적 관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도리어 방통위와 정권이 행한 초유의 전방위적인 지원이 종편으로 하여금 변화된 미디어 자본 시장에 적응하지 못할 구시대적이고 봉건적인 잔재로 남게 한 것은 아닌가?

CJ E&M이나 t-cast와 같은 MPP 사업자들을 제외한 군소 개별 PP들은 지난 시기 나름대로의 생존방법과 운영기법을 쌓아왔다. 채널시간대 임대나 구매 콘텐츠의 활용, 기존 자체 제작물의 재활용 편성, 인포머셜을 통한 수익의 창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종편에게 그런 사업 전략은 자신들의 오래된 명성에 비교할 때 일고의 가치도 없는 천박한 사업수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종편은 다채널을 소유한 MPP의 경영 전략을 따라 갈 수도 없었고, 축적된 콘텐츠를 무기로 가진 지상파를 쫓아 갈 수도 없었다. 요컨대 종편은 21세기 뉴욕에 나타난 봉건 지주와 같은 처지가 된 셈이다.

봉건적 끈을 끊어야 할 종편

종편 1년의 평가는 너무 섣부를 수 있다. 그럼에도 평가를 해야 한다면 그 기준은 매출액이나 시청률과 같은 정량적 지표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종편에 대한 평가는 철저하게 시장에 입각해서 이뤄져야 한다. 즉 종편을 낳았던 정권과 여당의 봉건적 사고, 그리고 그에 부응한 종편의 구시대적 운영 방식이 현재 한국의 미디어 자본 시장에 얼마나 걸맞는지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누군가 내게 종편의 발전방안을 묻는다면 그들이 그렇게 저주하는 ‘종북좌파’들의 필독서 중 한 구절을 추천해 주고 싶다. 바로 <공산주의당 선언>의 그 유명한 구절이다. 과연 종편은 2012년 지금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라는 혁명을 일으켰던 부르주아들처럼 행동하고 있는지 말이다. “상전들에 사람을 묶어 놓고 있던 잡다한 색깔의 봉건적 끈들을 무자비하게 끊어”버리고, “신앙적 광신, 기사적 열정,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외경을 이기적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던져 놓았는지? 아직도 그들은 밤의 대통령이라는 상전과 같은 자만에, 보수라는 신앙적 광신에, 접대라는 속물적 감상에 젖어 있지는 않은가. 차라리 냉정하라. “냉혹한 현금 계산” 이외에는 아무런 끈도 남겨 놓지 않는 것, 그 계산의 결과가 설령 종편 사업의 철수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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